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큰아빠

느림보 이방주 2010. 1. 10. 20:02

 

병실 문을 여니 다롱이는 수술한 다리를 높은 곳에 올려놓고 누워 있다가 나를 보고 “선생니임―”하며 우는소리를 한다. 쌍둥이 언니인 아롱이가 놀라며 “큰아빠다.” 한다.

하얀 붕대로 친친 감은 다리를 만져 보았다. 아픔을 억지로 참고 있는 모습도 예쁘다. 아이들 엄마와 함께 앉아있던 중년의 여인이 ‘큰아빠’란 말에 나를 쳐다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선다. 아롱이가 ‘큰엄마 모셔다 준다.’며 따라 나선다. 순간 좀 머쓱해졌다. 아이들의 진짜 큰엄마 앞에서 옛 선생인 내가 큰아빠라 불렸기 때문이다.

 

쌍둥이 자매인 아롱이, 다롱이를 만난 것은 시내 어떤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한꺼번에 문학동아리와 학교신문동아리 지도를 맡게 되었는데, 아롱이는 신문동아리 회장을, 다롱이는 문학동아리 회장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신문동아리보다 문학동아리에 눈길이 갔다. 자연스럽게 동생인 다롱이가 더 나를 따랐다.

 

쌍둥인데도 두 사람의 성격은 많이 달랐다. 언니는 목소리부터 작고, 몸가짐이 다소곳했다. 웃을 때도 하얗고 가냘픈 손이 먼저 입으로 갔다. 그러나 동생은 나를 보면 먼데서도 쫓아와서 대뜸 팔짱부터 끼면서 어리광을 부렸다. 언제나 덜렁대며 큰 소리로 웃었다. 다른 아이들이 보거나 말거나 뒤에서 끌어안기도 하고, 연구실까지 쫓아와서 안마를 해준다고 난리를 피웠다. 뭐가 그렇게 좋으냐고 물으면 자기 아빠 다음에 선생님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농담으로 그러면 큰아빠라고 하라 했더니, 돌아가신 큰아빠가 살아오기라도 한 듯이 좋아했다. 그때부터 나는 그 아이들의 큰아빠가 되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쌍둥이들은 아빠 엄마를 모시고 조문을 왔다. 나는 굴건제복 차림으로 그 애들의 아빠와 첫인사를 나누었다.

“아이들이 큰아빠라니 제게는 형님이 아니십니까? 형님이 상을 당하셨는데 인사 오는 게 당연하지요.”

말은 그렇다. 그러나 마음이 당연하니 말로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때부터 나는 ‘형님’도 되었다. 그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나도 시숙 노릇을 해야겠기에 문병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롱이, 다롱이 자매는 이름보다 심성이 더 고왔다.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그들의 올곧은 마음씨는 아이들 같지 않았다. 사내처럼 덜렁대는 동생 다롱이는 여자중의 여자인 언니의 언니노릇을 했다. 자상하고 따뜻하게 언니의 하루를 끊임없이 챙기고 또 챙겨 주었다. 언니 아롱이는 동생 다롱이가 없으면 홀로 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동생 다롱이는 언니인 아롱이가 없으면 사는 맛도 잃을 것 같았다. 둘은 이름처럼 아롱다롱 붙어 다녔다. 자매임에도 다른 아이들이 질투를 느낄 만큼 우애가 깊었다.

 

고3 때 아롱이, 다롱이는 이름을 바꾸어 혜진이, 주현이가 되었다.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아롱이’, ‘다롱이’는 예쁘기는 하지만 ‘아롱다롱’이 한 낱말이니 떼어 생각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둘은 바뀐 이름처럼 독립했다. 언니는 청주에서 대학에 가고, 동생은 아주 멀리 해안 도시에 있는 해양대학에 입학했다. 다롱이가 말로는 언니에게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지만, 집을 떠날 때 수없이 뒤를 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아롱이는 혼자서도 대학을 아주 잘 다니고,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

 

그 애들은 어느새 완전히 따로 선 둘이 되었다. 대학에 다니면서 나를 찾아올 때도 따로따로 왔다. ‘아롱이 다롱이’가 아니라 ‘혜진이, 주현이’이기 때문에 붙어 있을 필요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대학을 졸업하고 언니는 대학병원의 간호사가 되었다. 하얗고 예쁜 얼굴에 하얀 가운을 입고 간호사 캡을 쓴 그 아이를 생각만 해도 흐뭇하다. 동생은 해양대학을 졸업하고 학사 장교로 입대하여 여군 소위가 되었다. 평생 꿈이 군인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쌍둥이인 그 아이의 해연만큼 깊은 마음을 잘 안다.

 

사관학교에서 유격훈련을 하면서 삐끗한 발목을 이번에 수술 받은 것이다. 언니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이제는 언니의 간호를 받는 동생을 보면서 변하지 않는 우애에 감명을 받았다.

 

동생이 없는 나는 ‘형’이란 부름도 ‘오빠’라는 부름도 들어보지 못했다. 누군가 ‘큰아빠’라고 불러준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아롱이, 다롱이의 만남이 하늘도 내주지 않은 ‘큰아빠’라는 부름을 내게 선물한 것이다. 아롱이, 다롱이 덕으로 큰아빠가 되었을 뿐 아니라 형도 되고 시숙도 되었다.

 

다롱이는 장교로 임관되어 처음 나를 찾아왔을 때 ‘충성―’하고 깜짝 놀랄 만큼 커다랗게 구호를 붙여 경례하던 낯선 군기는 어디 가고, 여고 때 소녀로 돌아와 병상에 누워 있다. 내가 가져간 피자를 먹는 아이들이 조카딸만큼 가까워 보였다. 돌아올 때는 아빠가 따라와 자기 형님에게 하듯 정중하게 승강기 문을 열어 주었다. 병원을 나오니 앞산 솔숲이 어제보다 더 깊고 푸르다.

(2010. 1.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