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세배

느림보 이방주 2010. 2. 16. 10:35

 

 

 

세밑에 해마다 세배를 오던 제자에게서 이번 설엔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과 함께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내심으로 부담스러웠지만 제 깐에는 삶을 힘들어 한다기에 그러라고 했다. 지난여름 우연히 한 번 만나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덩치만 컸지 애기나 다름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소망하는 덕담이 될까?


내가 그 나이쯤 되었을 때, 아버지는 이웃마을의 선영이네 집에 세배를 가라고 재촉하셨다. 우리 집안과 세배를 주고받는 사이도 아니었는데 아버지의 재촉은 단호하셨다. 형제가 많은 우리집을 부러워한 선영이네가 우리 부모님을 수양부모로 삼았다. 그러니 그 댁 형이 우리 부모님께 세배를 오는 것이 옳았다. 처음에는 부당한 아버지의 채근에 투덜거리면서 고개를 넘어갔다.


그런데 어른들은 마치 내가 수양아들이나 되는 것처럼 반가워했다. 세뱃돈도 주고 맛깔스러운 세찬도 내오셨다. 나보다 세 살 위이고 대학생인 형의 방으로 건너가서 함께 설술을 마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형이 이야기해 주는 대학생활은 나에게는 꿈과 같았다. 그럴 때는 나보다 한 살 아래인 선영이도 들어왔다. 선영이는 나를 ‘오빠’라 불러 주었다. 형제들과 터울이 큰 나는 형이나 선영이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말할 수 없이 즐거웠다. 또 여동생이 없는 나를 오빠로 불러 주는 선영이가 예뻐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 후로는 설을 기다려 스스로 고개를 넘어갔다. 세배를 드리고 나면 세뱃돈보다 더 넉넉한 반기가 내게 돌아왔다. 형과의 푸근한 대화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3년 미래의 세계를 미리 생생하게 맛볼 수 있었다. 꿈, 학문, 문학, 민주주의, 사랑과 연애 등 화제는 무궁무진했다. 더구나 어른들 묵인 아래 술을 마실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형은 으레 볼일이 있어서 나갔는데, 그러면 선영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같은 또래였지만 서로에게 궁금한 일이 참으로 많았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서로의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했다. 또 당시 고등학생이 많이 읽던 이광수의 ‘무정’이나 ‘사랑’ 같은 소설 이야기도 하다가 화제가 궁해지면 손목 때리기 화투를 쳤다. 그럴 때면 때리는 것도 맞는 것도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단둘이 있는 것이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그것도 잠시 우리는 친 남매처럼 가까워졌다. 선영이 어머니도 약과나 식혜 같은 음식을 자꾸 내오면서 나를 붙잡아 저녁을 먹여야 놓아 주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는 세배를 통하여 몸과 마음의 양식을 내게 내려 주신 것이다. 경험하기 어려운 일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하신 것이다. 아무리 명절 때라도 식구가 많은 우리는 넉넉하지 못했던 세찬을 거기서는 마음 놓고 먹을 수 있었던 것은 물론이고, 터울이 큰 형들에게서 얻을 수 없었던 미래를 발견할 수도 있었다. 더구나 남녀유별이라는 관념의 울타리를 벗어버리지 못했을 때, 선영이와 가까이 만나 엷고도 아득한 호기심을 풀어낼 수도 있었다.


나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세배를 받기 시작했다. 한 이십년 전, 동기동창끼리 결혼하는 제자들의 주례를 맡은 일이 있었는데, 그 때부터 자연스럽게 제자들의 세배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해가 지날수록 세배 오는 제자들이 늘어났다. 종가도 아닌데 아내는 설맞이를 하느라 해마다 분주하다. 가래떡을 뽑고, 사골을 고고, 부침을 마련한다. 미나리향이 솔솔 풍기는 나박김치도 담근다. 나는 마음으로 아내에게 미안해 하지만, 아내도 그렇게 귀찮아하는 눈치는 아니다.


초이튿날은 세배 오는 제자들로 집안이 북적거린다. 처음에는 신혼부부가 오더니, 다음에는 아기를 업고 왔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따라오지 않게 되었는데, 어떤 제자가 맏딸이 여고에 입학하게 되었다고 데리고 왔다. 큰아기가 하도 예뻐 옆에 앉혀 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랬더니 엄마아빠의 선생님이라 할아버지인 줄 알았다고 해서 웃었다. 어느덧 제자들도 불혹의 나이가 되자 함께 술잔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이야기도 할 수 있고, 내 삶의 푸념도 들어줄 수 있게 되었다.


내게 세배를 오고 싶은 덩치 큰 아가에게 무슨 얘기를 해주어야 하나? 몸이나 마음이나 걷잡을 수 없이 성장하는 큰아기들이 굶주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옛날에 아버지께서 나의 굶주림을 다 들여다보셨듯이 큰아기들의 엄마들도 자식의 주림을 알고 있을까? 그래서 내게 어떤 기대를 걸고 있을까?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름에 만났을 때보다 훌쩍 커버린 큰아기는 내 습관대로 ‘아가’라고 부르기에는 모든 것이 차고 넘쳤다. 학교생활도 열심히 하고 성적도 괜찮은 이 아이가 주린 것은 별게 아니었다. 엄마아빠의 사랑만으로는 건질 수 없는 그 너머의 것으로 생각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엄마아빠가 자랑할 만큼 훌륭한 옛 선생 노릇을 제대로 했는지는 가늠할 수 없다. 소망만큼 화려하지 못한 덕담이 제자의 속 깊은 자식 사랑 법에 옛날 나의 아버지의 그것만큼 영양 높은 양식이 되었는지 정말 가늠할 수가 없다.

 

(2010. 1.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