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청주와 청주 사람들

알나리깔나리 쟤들 좀 봐 -구룡산 장승공원에서-

느림보 이방주 2022. 7. 15. 20:32

알나리깔나리 쟤들 좀 봐

-구룡산 장승공원에서-

 

이방주

 

문의면 하석리 장승공원이 궁금하다. 2005년 6월에 구룡산에 장승을 세우고 장승축제를 열었을 때 참석했던 기억이 났다. 당시 매우 뜻 깊은 행사라고 감탄하며 이 행사를 주도한 오효진 군수님에게 감사하기도 했었다. 장승공원은 구룡산성 서쪽 기슭이다. 청주시내에서 가려면 현암사를 지나 대청호 공원으로 건너가는 다리 쪽으로 좌회전하기 직전에 오른쪽 골짜기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간다. 거기에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에 구룡산 등산로 안내판이 커다랗게 걸려있다.

가파른 등산로를 타고 오르면 무너진 구룡산성 돌더미가 나온다. 돌길을 따라 등마루를 밟으면 바로 정상인 삿갓봉이다. 이 봉우리는 군사정권 시절 청남대를 지키는 초소가 있어서 아무나 오를 수 없었다. 여기서 바라보면 옥천 환산, 대전 식장산까지 다 보인다. 대청호반과 부근의 풍광이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시원하다. 여기서 구룡산 서쪽 사면을 따라 하석리로 내려가면서 장승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다.

2005년 당시에는 설해목이지만 금방 깎아서 세웠기에 매우 아름다웠는데 이제 비바람을 맞아 소나무의 고왔던 결이 퇴색되어버렸다. 대장군의 자랑스럽던 성기도, 여장군의 아름다운 젖가슴도 시꺼멓게 변하여 딱하기만 하다.

석장승이나 목장승이나 사실은 생명의 근원인 성기 숭배사상에서 나왔다고 한다. 특히 구룡산 장승은 이러한 원형성을 잘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때로 사찰 소유의 토지 경계를 나타내기도 하고 이정표 구실을 하면서 마을 수호신 노릇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모양이 다양하고 용도가 다양한 만큼 장승은 전국에 분포한다.

구룡산 장승은 남녀의 성기를 해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나 성행위의 모습을 묘사한 것이 많다. 사람들에 따라서 선정적이라고 비판할 수도 있으나 볼수록 웃음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 낯이 뜨거워지기 전에 웃음이 앞서게 마련이다. 출산율 저하와 농촌 인구의 감소에 대한 현도면민의 근심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솟구치는 생명력으로 다시 인구 폭주를 걱정해야 할 만큼의 새 생명이 현도면에 넘쳐나기를 기원해 본다.

구룡산 장승은 주로 주민들이 합심 협력하여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들 약속을 새겨 넣은 것이 많았다. 또 환경의 보전과 농업 생산성과 각 마을의 화합을 비는 것도 있었다. 남녀의 성기를 솜씨 좋게 새겨낸 민중의 진솔한 해학적 표현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장승은 보통 남녀로 쌍을 이룬다. 남상은 머리에 관모를 쓰고 전면에 ‘하대장군(天下大將軍)’, ‘상원대장군(上元大將軍)’이라 새긴다. 여상은 관은 없고 전면에 ‘지하대장군(地下大將軍)’, ‘지하여장군(地下女將軍)’, ‘하원대장군(下元大將軍)’이라 쓴 것이 많다. 그런데 구룡산 장승의 남상은 관모를 쓰지 않고 머리를 남성의 귀두의 모양을 묘사했다. 어떤 것은 귀두 모양이면서도 나무결을 살려 빙긋이 웃는 모습이다. 나뭇가지를 그대로 살려 성기와 젖가슴을 형상하는 솜씨에 감탄할 정도이다.

장소에 따라 채색, 형상, 크기 등이 다르다. 모양은 괴상하면서도 엄숙하고, 엄숙하면서도 해학적이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 민족의 삶의 단면을 보여 주는 듯하다. 어려움 속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던 조상의 슬기가 눈에 보이는 듯하다. 또한 삶의 고통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것을 생각하면 생활 자체가 예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승 하나에도 고난을 달관하는 겨레의 모습이 담겨 있는 것을 보면 이러한 해학적이며 괴엄한 모습은 전국의 대부분 장승이 마찬가지일 것으로 짐작된다.

장승에 쓰인 장군명에는 민속적인 신명(神名)이 등장하는데 현도환경장군, 선동리, 죽전리, 죽암리, 우록리, 시목리, 등 각 부락의 이름을 딴 장군명도 보였다. 특히 동방청제축귀장군(東方靑帝逐鬼將軍), 서방백제축귀장군(西方白帝逐鬼將軍), 남방적제축귀장군(南方赤帝逐鬼將軍), 북방흑제축귀장군(北方黑帝逐鬼將軍) 등 전통적인 이름들도 보여서 장승에 대한 연구와 고증을 통해서 만들었음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축귀하는 민간 신앙의 성격을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장승을 서낭당, 산신당, 솟대와 동등한 것으로 인정하며, 액운이 들었을 때나 질병이 전염되었을 때에는 제를 올렸던 옛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

정상인 삿갓봉에는 해돋이를 맞이하는 제단이 마련되어 있고, 제단 양편으로 해돋이 여장군과 해돋이 대장군이 세워져 있다. 해돋이 여장군의 모습은 미스코리아 뺨칠 정도의 미끈한 몸매를 자랑하고 있다. 그러나 해돋이 대장군은 장승의 전형적인 모습인 사람 좋은 아저씨 그대로여서 대조적이다.

정상까지 가파른 길이 더 숨 가쁘다. 장승의 해학적인 모습과 그들의 적나라한 미모에 반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마도 문민이 정치했던 조선의 정치가 이랬을 것이라는 뿌듯함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 나는 요즘 문단에 대해서 정치가 문학을 본떠야 하는데, 문단이 정치를 따르고 있다고 아픈 말을 한 적이 있다. 여기서 정치가 문학을 따르면서 주민을 계도하고 주민에게 감동을 주는 모습을 목도하였다.

동제를 지내는 일이나 성황당은 생산성 없는 미신이라고 부숴버렸던 과거 폭력 정치를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동제의 예술성과 전통성, 그리고 거기에 담겨있는 마을의 화합과 공동체 의식을 함께 깨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그런 폭력 속에서도 이런 해학과 예술혼이 숨어 있다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보면, 눈에 보이지 않고, 과학으로도 증명할 수 없는 민족혼은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 믿어진다.

멀리 오가리 강에 수많은 골짜기에서 흘러들어온 물이 괴어 호수를 이루듯 장승으로 비는 소박한 민중의 소망이 다 이루어지기를 빌었다. 장승에서 솟구치는 생명의 울력으로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만 보였다. 이만한 울력으로도 밤에 대한 자신감이 솟는 것이 마음뿐이 아니길 빌면서 서둘러 페달을 밟았다. 육체는 늙어도 영혼은 늙지 않는 것, 다만 성장할 뿐인 것을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