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하늘이 침울하다. TV에서는 점잖은 기자가 나와서 '서울 아무개초등학교가 스승의 날 휴업을 한다더니 14일에 행사를 했다.'면서 고급 승용차와 꽃다발이 쌓인 교사들의 책상 그림과 함께 눈을 치뜨며 흥분하고 있다.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정말이지 한 25 년쯤 되돌아가고 싶다. 문을 열면 아카시아 향기가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묻어나던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스승의 날 아침, 교실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을 맞으면 때묻은 손으로 건네는 삶은 감자나, 싸구려 담배 한 갑에까지 아카시아 향은 묻어 있었다.
오늘 아침, 바람이 매봉산에서 휘몰아오는 아카시아 향기만은 그래도 옛날 못지 않다. 그래서 스무 해 전 결혼식 때 맸던 넥타이를 매 보았다. 오선생님도 '비라도 왔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쉰다. 정말 아침만이라도 비가 내려줬으면 좋겠다. 차안에서 모두가 말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가슴에 달아
주는 꽃을 매달고 있어야 하는 것이 걱정인 것이다.
사창동 사거리를 지날 때는 유리창을 닦아야 할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모두 환호를 올렸다. 쏟아지던 비는 진천이 가까워질수록 약해지더니 잣고개를 넘으니까 그쳐버렸다.
나는 모범 학생 시상 준비를 하고, 학생부장은 학생회 회장 부회장으로부터 스승의 날 기념식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라고 우기는 이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교직은 초가집 처마에 위태롭게 매달린 뒤웅박 신세이더니, 1년이 지나고는 예상대로 봉당에 떨어져 박살이 나버렸다.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가난한 정부가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온 교단의 알량한 권위를 초토화시키는 데 최대한 짧은 시간에 성공하는 초능력을 보여 주었다.
학생들은 그런 분위기를 읽고 있는 듯했다. 나는 어제 의식 진행에 미숙한 그들을 위해서 시나리오를 정리해 주면서 '선생님, 사은사도 없고, 스승의 날 노래도 없는 스승의 날 기념식이 어디 있어요?' 하는 부
회장 정은이의 불평을 들어야 했다. '그건 그런게 아니다. 선생님들은 기념식도, 꽃다발도, 사은사도, 스승의 은혜 노래도 모두 쑥스러워 하거든…….'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거부할 이유도 없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운동장에 이미 정렬해 있다. 우리들은 교장 교감 선생님을 따라 현관을 나섰다. 확성기에서 반주가 흘러나오자 지휘도 없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른다. 내가 잡아야 할 사회대의 마이크를 부회장인 정은이가 잡고 있다. "지금은 선생님들께 꽃을 달아 드리는 시간입니다."하고 말하자, 남녀 학생들이 현관까지
뛰어와 선생들에게 꽃을 달아 준다. 내게는 래형이가 뛰어 왔다. 좀 쑥스러웠지만, 래형이 등을 좀 쓰다듬어 주면서 '고맙다. 래형아! 네가 와서 더욱 좋다'고 빈말인 듯 참말을 했다. 그리고 오늘의 감격 때문에 하마터면 그를 포옹할 뻔했다. 그러나 참았다. 사실은 아이들에게는 참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범학생 표창, 해군 참모총장기 쟁탈 카누대회 금메달 학생 표창이 끝나고, 학생회장이 '다짐이 글'을 낭독했다. 학생회에서 정한 열 가지 다짐의 글은 '은사님께 대하여, 선후배간에, 스스로를 위하여'의 순서로 비교적 짜임새 있게 정리되어 있다. 상투적으로 읽었던 학생회장의 '사은사'의 낡은 울먹임보다 신선하고 힘이 있었다.
오늘날 학교를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고맙다. 영재란 바로 이런 것인가? 스승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입에 담지 않는 아이들이 '석가가 꽃을 들어 보이자 빙그레 웃었다는 가섭'을 만난 것같이 가슴 뿌듯하게 했다.
교장 선생님의 요즈음의 교직에 대한 가슴 아픈 회한의 말씀과 순박한 우리 학생들에 대한 칭송이 있었다. 40 여 년 교직 생활에 이렇게 순박하고 진실에 넘치는 스승의 날 행사는 처음이라고 칭찬했다. 특히 묵묵히 교단을 지켜온 유능한 원로 교사들이 단지 나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쫓겨나는 현실에 대한 말씀에 이르러서는 잦은 헛기침을 했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고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한동안 박수를 쳤다.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비가 그쳐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면서, 아침의 기우를 후회하듯 우리는 웃는 얼굴로 서로 마주보며 교무실로 향했다. 우리가 막 현관에 들어서자 무대에 막이 내리듯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몇몇 늑장 피우는 아이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교실로 뛰어들어가는 소리도 즐겁게 들렸다.
교무실에 들어갔다. 이건 또 웬 떡인가? 책상마다 놓인 작은 접시에는 절편, 참외 한 쪽,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 몇 알씩 예쁘게 담겨 있다. 학생회 간부 아이들과 샴페인을 정말로 기분 좋게 터뜨리며 아이들에게 고마워했다. 이제 명예퇴임을 몇 달 남겨놓은 백발 동안(白髮童顔)의 아직도 청년인 교감 선생님의 눈에는 물기가 묻었다.
아이들은 서둘러 정리하고 교실로 갔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뜻이겠지. 교실에 가니 몇몇 꾀보 아이들이 '스승의 날이니 하루라도 쉬셔요', '선생님 넥타이 정말 멋있어요.'하면서 꾀를 부렸다. 나는 '너희들이 해준 기념식에 너무 감동해서 한 순간도 쉴 수 없어' 하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불평 없이 따랐다.
한 시간 수업을 마치고 교장실 앞을 지나면서 이제 1 년 남은 정년을 못 마치고. 8월 말 '당연 퇴직'이란 해괴한 이름으로 교단을 마무리하실 그 분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위로를 드렸다. '선생을 마치는 날, 우리에게는 명예도 공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 보셨지요. 우리 아이들은 반드시 그런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뭐란들 무엇이 대수랴, 여기 이렇게 순박한 아이들이 있는 것을 ……. 명예가 없다한들 무엇이 대수랴, 여기 이렇게 슬기로운 가섭의 미소가 있는 것을 ……. 슬픔이 닥쳐온들 무엇이 대수랴, 여기 이렇게 샴페인의 경쾌한 폭음이 있는 것을 …….
(1999. 5. 15)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정말이지 한 25 년쯤 되돌아가고 싶다. 문을 열면 아카시아 향기가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묻어나던 그 옛날로 돌아가고 싶다. 스승의 날 아침, 교실에서 코흘리개 아이들을 맞으면 때묻은 손으로 건네는 삶은 감자나, 싸구려 담배 한 갑에까지 아카시아 향은 묻어 있었다.
오늘 아침, 바람이 매봉산에서 휘몰아오는 아카시아 향기만은 그래도 옛날 못지 않다. 그래서 스무 해 전 결혼식 때 맸던 넥타이를 매 보았다. 오선생님도 '비라도 왔으면 좋겠다'며 한숨을 쉰다. 정말 아침만이라도 비가 내려줬으면 좋겠다. 차안에서 모두가 말이 없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이들이 가슴에 달아
주는 꽃을 매달고 있어야 하는 것이 걱정인 것이다.
사창동 사거리를 지날 때는 유리창을 닦아야 할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모두 환호를 올렸다. 쏟아지던 비는 진천이 가까워질수록 약해지더니 잣고개를 넘으니까 그쳐버렸다.
나는 모범 학생 시상 준비를 하고, 학생부장은 학생회 회장 부회장으로부터 스승의 날 기념식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었다.
'국민의 정부'라고 우기는 이 정부가 들어서고나서 교직은 초가집 처마에 위태롭게 매달린 뒤웅박 신세이더니, 1년이 지나고는 예상대로 봉당에 떨어져 박살이 나버렸다.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가난한 정부가 겨우겨우 명맥을 이어온 교단의 알량한 권위를 초토화시키는 데 최대한 짧은 시간에 성공하는 초능력을 보여 주었다.
학생들은 그런 분위기를 읽고 있는 듯했다. 나는 어제 의식 진행에 미숙한 그들을 위해서 시나리오를 정리해 주면서 '선생님, 사은사도 없고, 스승의 날 노래도 없는 스승의 날 기념식이 어디 있어요?' 하는 부
회장 정은이의 불평을 들어야 했다. '그건 그런게 아니다. 선생님들은 기념식도, 꽃다발도, 사은사도, 스승의 은혜 노래도 모두 쑥스러워 하거든…….'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거부할 이유도 없고, 아이들은 저희들끼리 운동장에 이미 정렬해 있다. 우리들은 교장 교감 선생님을 따라 현관을 나섰다. 확성기에서 반주가 흘러나오자 지휘도 없는데 아이들이 일제히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른다. 내가 잡아야 할 사회대의 마이크를 부회장인 정은이가 잡고 있다. "지금은 선생님들께 꽃을 달아 드리는 시간입니다."하고 말하자, 남녀 학생들이 현관까지
뛰어와 선생들에게 꽃을 달아 준다. 내게는 래형이가 뛰어 왔다. 좀 쑥스러웠지만, 래형이 등을 좀 쓰다듬어 주면서 '고맙다. 래형아! 네가 와서 더욱 좋다'고 빈말인 듯 참말을 했다. 그리고 오늘의 감격 때문에 하마터면 그를 포옹할 뻔했다. 그러나 참았다. 사실은 아이들에게는 참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모범학생 표창, 해군 참모총장기 쟁탈 카누대회 금메달 학생 표창이 끝나고, 학생회장이 '다짐이 글'을 낭독했다. 학생회에서 정한 열 가지 다짐의 글은 '은사님께 대하여, 선후배간에, 스스로를 위하여'의 순서로 비교적 짜임새 있게 정리되어 있다. 상투적으로 읽었던 학생회장의 '사은사'의 낡은 울먹임보다 신선하고 힘이 있었다.
오늘날 학교를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어도 그들은 우리를 알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고맙다. 영재란 바로 이런 것인가? 스승의 아픔을 이해하면서도 입에 담지 않는 아이들이 '석가가 꽃을 들어 보이자 빙그레 웃었다는 가섭'을 만난 것같이 가슴 뿌듯하게 했다.
교장 선생님의 요즈음의 교직에 대한 가슴 아픈 회한의 말씀과 순박한 우리 학생들에 대한 칭송이 있었다. 40 여 년 교직 생활에 이렇게 순박하고 진실에 넘치는 스승의 날 행사는 처음이라고 칭찬했다. 특히 묵묵히 교단을 지켜온 유능한 원로 교사들이 단지 나이 많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능'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쫓겨나는 현실에 대한 말씀에 이르러서는 잦은 헛기침을 했다.
간단한 의식이 끝나고 아이들은 이유도 없이 한동안 박수를 쳤다. 아이들이 우르르 교실에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비가 그쳐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를 생각하면서, 아침의 기우를 후회하듯 우리는 웃는 얼굴로 서로 마주보며 교무실로 향했다. 우리가 막 현관에 들어서자 무대에 막이 내리듯 하늘에서 비가 쏟아진다. 몇몇 늑장 피우는 아이들이 갑자기 쏟아지는 비 때문에 소리를 지르며 교실로 뛰어들어가는 소리도 즐겁게 들렸다.
교무실에 들어갔다. 이건 또 웬 떡인가? 책상마다 놓인 작은 접시에는 절편, 참외 한 쪽,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 몇 알씩 예쁘게 담겨 있다. 학생회 간부 아이들과 샴페인을 정말로 기분 좋게 터뜨리며 아이들에게 고마워했다. 이제 명예퇴임을 몇 달 남겨놓은 백발 동안(白髮童顔)의 아직도 청년인 교감 선생님의 눈에는 물기가 묻었다.
아이들은 서둘러 정리하고 교실로 갔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겠다는 뜻이겠지. 교실에 가니 몇몇 꾀보 아이들이 '스승의 날이니 하루라도 쉬셔요', '선생님 넥타이 정말 멋있어요.'하면서 꾀를 부렸다. 나는 '너희들이 해준 기념식에 너무 감동해서 한 순간도 쉴 수 없어' 하면서 수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불평 없이 따랐다.
한 시간 수업을 마치고 교장실 앞을 지나면서 이제 1 년 남은 정년을 못 마치고. 8월 말 '당연 퇴직'이란 해괴한 이름으로 교단을 마무리하실 그 분에게 마음속으로 이렇게 위로를 드렸다. '선생을 마치는 날, 우리에게는 명예도 공명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로 인해 많은 아이들이 영향을 받아 좋은 사람이 되어서, 더 많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됩니다. 오늘 보셨지요. 우리 아이들은 반드시 그런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세상이 뭐란들 무엇이 대수랴, 여기 이렇게 순박한 아이들이 있는 것을 ……. 명예가 없다한들 무엇이 대수랴, 여기 이렇게 슬기로운 가섭의 미소가 있는 것을 ……. 슬픔이 닥쳐온들 무엇이 대수랴, 여기 이렇게 샴페인의 경쾌한 폭음이 있는 것을 …….
(1999.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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