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서리와 햇살(교단)

욕 가르치기

느림보 이방주 2005. 10. 6. 22:24

   욕 가르치기


계발활동(클럽활동) 시간에 한 여학생이 교무실에 내 옆자리에 와서 쭈뼛거린다. 분명 뭔가 잘못한 일이 있어서 다른 선생님께 불려온 눈치다. 예쁘고 착하게 생긴 아이다.

“뭐야?”

“구아무개 선생님께서 가 있으래요.”

“아무 일도 없이 그냥?”

“아니요. 잘못했어요.”

“…….”

“무슨 잘못인데? 선생님한테 얘기해 주면 안 돼? 내게 얘기해 주고 뉘우치면 선생님께 잘 말씀드려서 용서해 주라고 말씀드려 줄게.”

“…….”

말이 없다. 이런 때는 은근히 협박하면 순진한 아이들은 다 넘어간다.

“그럼 그만 두든가. 그냥 선생님께 야단맞아야 더 확실하게 배울 거라는 생각이지? 구선생님 자리는 저쪽이니까 선생님 자리 옆에 가서 꿇어 앉아 있으면 되겠네.”

이런 말은 아이들에겐 절망이다. 더 달래 달라는 눈치다. 눈빛에 미련과 함께 동정과 구원을 구하는 눈물이 핑 돈다.

“아가, 이리와 봐. 무슨 잘못인가 말해 줄래?”

“욕했어요.”

“아, 그래.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말 못하는 거 보니까 착한 학생 같은데. 누구한테 했는데? 선생님한테 했을 것 같지는 않고.”

“친구한테요.”

“아아 그렇겠지. 뭐라고 했는데?”

이제 가르쳐야겠다는 생각보다 궁금증이 앞선다. 뭐라고 욕을 했기에 신사중의 신사인 구선생님 귀에 거슬렸을까? 계발활동 시간이 자유스럽기는 하지만 아이들이 좀 심했나 보다. 참으로 이럴 때 속눈썹 너머에 숨어있는 궁금증을 아이들에게 들키면 교육이 안 된다. 이 순진한 아이가 했을 만한 욕을 다시 한 번 예상해 보면서 나의 궁금증을 감추기에 여념이 없다.

“아가, 무슨 욕했어? 말을 해야 선생님이 그 욕이 무슨 욕인지 가르쳐 주지. 왜 해서는 안 되는 욕인지 알아야 네가 안 할거 아냐. 그지? 그렇지? 욕하면 욕먹는 사람보다 욕하는 사람 입이 더 더러워지는 건 알고 있지? 그지?”

“아이 선생님 꼭 말해야 돼요?”

“그럼, 말해야지. 말해야 욕의 뜻을 알려주지. 그래야 다시는 안하지. 선생님은 그거 가르치는 사람인데.”

“…….”

말을 할 듯 말 듯 입을 오물거린다. 곧 입이 열릴 듯하다. 그러나 또 망설인다. 점잖은 자리에서 돌을 씹은 것처럼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는 겸연쩍은 웃음과 난망한 울음이 작고 예쁜 얼굴에 가득하다.

“아가, 말해봐. 그럼 내가 그만 포기할까? 그럴까?”

“할게요. ‘열여덟놈아’ 했어요.”

“열여덟놈? 남자 애들이 너희 동아리에 열여덟 명이야?”

무슨 욕을 했는지 짐작한 대로다. 그러나 나의 장난기는 그 귀여운 입에서 ‘씹할놈’을 하고야 말게 만들고 싶었다. 짓궂은 장난만은 아니었다. 그것이 얼마나 입 밖에 내기 힘든 말인가를 체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런거야?”

“아니요. ‘씹할놈’이라고 했어요.”

“남자 친구였어?”

“아니 여자 친구요.”

“얘 여자친구한테 ‘씹할놈’이 뭐니? ‘씹팔년’이라고 해야지. 얘는 욕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안 그래?”

“ 아니 그냥 그랬어요.”

“아가, 너 그런데 그게 무슨 뜻인지 아니?”

“아니 몰라요.”

“먼저 ‘씹할놈’은 ‘네미 씹할놈’의 준말이거든. 네 어머니를 씹 할 놈이란 말이야. 네 친구한테 그런 욕을 했다면 네 친구가 자기 어머니를 강간할 패륜아란 말이지. 씨팔놈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야. 씨를 팔 놈 이니까 옛날에 씨내리나 남창을 이르는 말이야. 남자도 순결이 얼마나 소중한데 씨내리나 남창은 순결을 판다는 말이니 얼마나 나쁜 말인지 알겠지?”

이 녀석이 그 작은 눈을 동그랗게 뜬다. 그런 뜻이 있었는지는 정말 몰랐다는 표정이다.

“네 친구 중에 그런 패륜아가 있었으면 좋겠어? 그런 애가 우리 학교에 있다면 우리 학교의 불행이고, 우리나라에 있다면 우리 모두의 불행이지? 그렇지? 이왕 한 김에 한 번 더 해봐.”

“아녜요. 다시는 안할래요.”

“여자 친구들한테 ‘씹팔년’은 써 먹을래? 그건 ‘씹을 팔년’ 매춘부가 될 사람이란 뜻인데 그건 괜찮지? 네 친구 중에서 매춘부가 한둘 있는 건 괜찮잖아? 의미를 알고 쓰면 더 실감이 날 테니 한 번 해봐.”

“아녜요 선생님 다시는 욕 안할게요. 정말 못하겠어요. 정말 다시는 못하겠어요”

“정말? 뜻을 아니까 못하겠지? 그러면 욕하고 싶을 때 어원을 생각해봐. 그리고 욕을 해. 어떤 때는 욕을 확 해대면 속이 후련하잖아 그지?  욕의 어원을 알고 싶으면 선생님한테 와. 가르쳐 줄게.”

“선생님 잘못했어요. 정말 알고는 못하겠어요. 안할게요.”

“정말? 그러면 구선생님께 말씀드려 봐. 잘못했다고 하고, 지금 있었던 일도 말씀드리고. 용서해 주실거다.”

“선생님 다시는 욕 안할래요.”

“그래? 착하구나.”

그래서 또 한 명의 어린 천사에게 욕의 의미를 가르쳤다. 정말 그런 욕만은 평생 안할 것으로 믿는다.

(2005. 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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