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래꽃 깊은 사랑법
2018년 6월 4일
미동산수목원에서
미동산수목원에 갔다가 다래꽃을 만났다. 입안에 침이 돈다. 백두대간 장성봉 올라가는 깊은 계곡에서 맛본 달달한 다래가 생각난 것이다. 입에 넣고 톡 터뜨리면 새콤달콤하다. 열매가 이렇게 달달한데 꽃은 또 얼마나 예쁠까. 깊은 산에서나 봐야 할 다래꽃을 수목원에서 본다. 처음이라 더 신비롭다. 다래꽃은 깊은 산에서나 피고 때를 맞추어야 하기에 아무에게나 쉽게 보여주지 않는 꽃이다. 꽃은 아침 햇살이 반짝이는 잎사귀 뒤에 숨어 소복소복 땅을 향해 피었다. 쉽게 내어주지 않는 얼굴이라 더 예쁘다. 꾸밈도 없고 티끌도 한 점 묻지 않았다. 청초하단 말이 맞을 것 같다.
꽃잎 다섯 장은 연두색을 띤 흰색이다. 다섯 장 꽃잎 안으로 꽃술이 소복소복 까맣다. 열매를 앞니로 싹둑 잘랐을 때 과육 속에 씨앗이 동그랗게 박혀 있던 모습 그대로다. 신비스러운 다섯 장 꽃잎이 까만 수술을 에워싸고 있다. 어, 그런데 암술이 없다. 암술이 없으면 그건 미래가 없는 것이다. 암컷이 없는데 어찌 미래를 기약할 수 있겠는가.
꽃 더미를 두리번거렸다. 다른 줄기에서 조금 더 옅은 옥색 꽃이 보였다. 그런데 꽃잎 속에 연두색 작은 대추 모양 씨방이 있고, 그 위에 여남은 꽃술이 마치 용접 불꽃 튀듯이 터지는 꽃을 발견했다. 그건 분명 암술이다. 다래덩굴은 암꽃과 수꽃이 따로 있구나. 꽃으로부터 덩굴 밑동까지 따라 내려가 보았다. 다른 나무이다. 다래덩굴은 암나무 수나무가 따로 있다. 식물도감에서 다래나무를 찾아보니 정말 그렇다. 꽃을 보다가 별걸 다 알게 되었다.
다래꽃은 꽃말이 ‘깊은 사랑’이라고 한다. 꽃말의 연유가 재미있겠다. 다래덩굴은 한도 끝도 없이 하늘을 향하여 덩굴손을 내민다. 사랑의 손짓이다. 달래라는 처녀는 자신의 신분을 잊어버리고 양반집 도령을 사랑했다. 도령도 달래를 사랑했다. 사랑은 운명처럼 다가왔다. 어리고 예쁜 달래는 마음 놓고 도령을 사랑할 수 없었다. 나이가 들자 도령이 공부에 파묻혔다. 아니 부친의 명에 묶여 더 이상 달래를 만날 수 없었다. 달래는 그만 그리움에 지쳐 상사병으로 죽고 만다. 신분이라는 사회규범이 사랑을 가로 막은 것이다. 사회제도나 계급이 청춘 남녀의 아름다운 꿈을 주저앉혔다. 전설은 그렇게 주인공을 파멸시킨다. 여린 달래의 꿈을 방관만 하던 마을 사람들도 그때서야 도령의 문 옆에 묻어 주었다고 한다. 죽은 다음에서야 어여쁘게 여기는 얄궂은 정서를 전설에서 본다. 이듬해 달래의 무덤에서는 덩굴 줄기가 돋았다. 담을 타고 올라가 공부하는 도령의 창을 향하여 덩굴손을 뻗었다. 달래의 깊은 사랑이다. 높은 창에서 청초하고 예쁜 꽃을 피웠다. 달래는 도령을 사랑하는 마음을 달콤한 열매에 담아서 전하고 싶었을 것이다. 절실한 사랑은 어떻게든지 이루고야 만다. 사람들은 달콤한 열매를 다래라고 이름 지었다. 이름조차 달콤하다. 슬픈 사랑이라서 열매가 더 달콤한지도 모른다.
다래꽃 전설은 다래덩굴이 암수가 따로 있고 암꽃과 수꽃이 따로 피는 자연의 이치를 받아서 지어낸 우리 겨레의 사랑이야기이다. 슬픈 사랑을 담은 이야기지만 깊은 사랑은 결국 죽어서라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가르침을 담고 있다. 맞다. 암꽃 수꽃도 사랑이 깊으면 열음을 이룰 수 있다.
김시습의 소설 <이생규장전>은 다래꽃 전설과 서사구조가 꼭 닮았다. 그와 같은 사랑 모티프가 겨레의 공동 심의였나 보다. 낮은 신분 여성인 달래가 양반인 도령을 사랑했다면 이생규장전에서는 남성인 이생이 최낭자를 사랑한다. 이들은 모두 양반댁 재자가인이다. 이생이 남몰래 담을 넘어 최낭자와 정을 통하고 사랑을 이룬다. 달래가 담을 넘어 사랑의 열매를 전하듯 이생은 최낭자에 대한 사랑을 담 너머로 전한다. 이생은 당시 통념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적극적이었고 최낭자도 거리낌 없는 행동으로 사랑을 받아들인다. 몰래하는 사랑은 다래처럼 달콤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몰래하는 사랑을 부정하게 여기는 사회규범에 부닥친다. 그래도 그들의 진한 사랑은 철벽같던 부모를 감동시켜 허락을 받아낸다. 그런데 최낭자가 홍건적의 난을 만나 어이없는 죽음을 당한다. 다래꽃 같은 사랑은 혼란의 역사에 막혀 안타깝게 막을 내린다. 이생의 깊은 사랑은 결코 최낭자를 포기하지 않는다. 최낭자는 영혼으로 돌아와서 둘의 사랑은 다시 이어진다. 깊은 사랑이 이른바 인귀교환人鬼交歡을 이룬 것이다. 이 소설은 깊은 사랑은 담도 넘고 생사의 벽도 넘어서 향하는 곳이 진실이라는 새로운 관념을 우리에게 심어주었다.
암나무 수나무가 따로 떨어져 서로 다른 꽃을 피우는 다래덩굴이 안쓰럽다. 암꽃은 수꽃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도령을 그리다가 죽은 달래만큼 그리웠을 것이다. 수꽃은 또 암꽃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꽃이나 사람이나 절절한 사랑은 쉽게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암수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리움은 깊어지고 깊은 그리움일수록 사랑의 덩굴손을 있는 힘을 다해 뻗어간다. 깊은 사랑은 결국 가루받이를 이루고 열매를 맺는다. 인간의 사랑도 깊이만큼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수꽃이나 암꽃처럼 바람 부는 대로 사랑이 향하는 대로 꽃가루를 날리면 안 되는 것일까. 이생규장전 가르침처럼 윤리의 울타리에서 뛰쳐나와 다래꽃 사랑법을 이루었으면 좋겠다.
다래꽃이 멀리서 암수 따로 핀다 하여 안쓰럽게 생각하지 말자. 다래덩굴은 온 산을 뒤덮으며 얼크러져 깊은 사랑을 이루어내니 말이다. 반상班常도 빈부도 없이 사람들에게 자연 사랑법을 깨우치고 있다. 아무리 사회가 막아버린다 해도 깊은 사랑은 좌절하지 않는다.
사랑은 꽃을 피우게 마련이다. 꽃이 피어도 깊은 사랑이 없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규범이나 역사의 혼란이라는 담장을 넘어서지 못하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꽃은 미래가 없다. 자연도 사람도 깊은 사랑 없이는 열매도 없고 열매 없이는 존속할 수 없다. 사랑은 깊어야 할 일이지 규범에 좌절할 일은 아니라는 게 하늘의 가르침이다.
다래꽃, 볼수록 예쁘다. 깊고 아름다운 사랑 생태계의 축소판이다. 한여름 가뭄도 비바람도 넘어서 가을을 기약하는 깊은 사랑이 저렇게 열매를 닮아 있다니 우주의 원리는 알아볼수록 신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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