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꽃은 향을 말하네
마로니에 시공원에서
2018년 9월 25일
산책길에서 쑥꽃을 만났다. 참 많이도 피었다. 쑥꽃을 누가 꽃이라 여길까. 다들 그냥 지나치기가 십상이지. 화사하지도 못하고 큰 소리로 '나는 꽃'이라 말하지도 않는다. 더구나 꽃대는 이른 봄에 싹이 트는 여린 싹이랑은 전혀 다르다. 여린 쑥잎에서 그야말로 '쑥'하고 올라와서는 어렸던 올챙이시절의 앙증맞은 모습은 다 잊어버리고 나무줄기처럼 굵고 억센 대궁에서 수없이 많은 가지가 나오고 가지마다 소복소복 꽃이 피어난다.
살며시 가지를 당겨 냄새를 맡아본다. 짙은 가을 향기가 난다. 쑥의 생명력은 알아주어야 한다. 거친 모래흙과 돌 틈에 뿌리를 내리고, 그 메마른 땅에서 지난여름 지독한 가뭄을 견뎌내고도 이만큼 키가 컸다. 그리고는 가을볕 가을바람을 비빌 언덕으로 삼아 꽃을 피웠다. 가뭄도 바람도 초가을 홍수까지 우주의 섭리로 여겨 다 담아내어 꽃으로 피웠다. 쑥향은 고난의 향기이다. 쑥꽃은 화사한 빛깔로 요염하게 제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다만 향기로 말할 뿐이다. 향기의 언어가 다르기에 사람마다 듣는 것도 다르다.
이쯤 해서 設香 선생이 생각났다. 내가 만난 설향 선생은 꽃차향을 찾아 사는 사람이다. 꽃이 말하는 향의 의미를 알아듣는 사람이다. 꽃을 찾아 設法하듯 향을 말하는 사람이다. 그녀는 연풍면 원풍리 조령관 아래 조령산자연휴양림에서 꽃차 카페를 운영한다. 밖에서 보면 찻집이 아니라 버섯찌개나 곤드레비빔밥을 파는 산골 음식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른꽃잎에서 나는 향이 은은한 카페이다. 간판을 자세히 읽어야 찻집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최근에 아내랑 토요일마다 갔으면서도 차향을 맛볼 수 있는 카페인 것은 눈치 채지 못했다. 그만큼 설향 선생은 차를 팔아 돈을 사는 일에는 관심이 없는 분처럼 보였다. 이름처럼 향을 말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었다. 쑥차를 한잔 따라 놓고 계속 쑥차 향을 설법한다. 백두대간 험한 산줄기를 타면서 목란을 따고 다래꽃을 찾는 이야기 속에서 삶의 향이 묻어났다. 그의 쑥꽃차에서는 차향뿐 아니라 대간을 따라 내려온 백두의 향을 뿜어냈다.
설향 선생은 꽃차향을 말하는 신선처럼 보였다. 새재 궁벽한 백두대간 험한 산을 헤매며 들꽃들풀을 찾아 꽃차를 덖으며 스스로 차향이 되어가는 듯했다. 나는 진열된 수많은 꽃차를 돌아보다가 함박꽃차를 발견했다. 유리병 속에 담긴 함박꽃은 차로 덖어 마른 모습이면서도 제 모양을 잃지 않았다. 하얀 꽃잎도 보랏빛 화심도 나무에 매달려 땅을 향하여 피어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너무나 반가워서 내가 쓴 <칠보산 함박꽃>이야기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들꽃들풀을 찾아 설화를 찾는 나랑 통하는 점이 있었다. 들꽃들풀을 찾아 수필을 쓰는 느림보는 설향의 차향이 긴요하고, 백두대간 꽃을 찾아 차향을 말하는 설향은 느림보의 이야기가 소용될 것 같았다. 향으로 말하는 설향과 글로 말하는 느림보는 道伴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향을 말하던 그녀, 그의 쑥차향이 생각났다. 설향에게서 가져온 쑥꽃차가 떠올랐다. 새벽 산책은 대충이다. 쑥향이 먼저다. 산책은 그만두고 얼른 돌아온다. 설향의 쑥꽃차를 우린다. 쑥꽃차 한 모금에 온몸이 더워진다. 새벽 가을 하늘빛이 곱다. 노랗게 우러난 찻잔에 어젯밤 한가위 달이 보인다. 꽃차향을 말하는 설향 선생의 미소가 보인다. 취한 듯 꿈속인 듯 향을 말한다. 하늘의 빛깔도 가을의 향기도 찻잔에 가득하다. 차가웠던 마음까지 훈훈해지는 것 같다. 쑥꽃 향기 은은한 가을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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