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그리움의 꽃 겹삼잎국화

느림보 이방주 2018. 8. 2. 17:32

그리움의 꽃 겹삼잎국화

 


2018년  8월  2일

주중리에서

 


주중리 가는 길에 길가 어느 담장 아래에서 겹삼잎국화를 발견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지나는 사람들이 남의 담장 아래에서 흔한 꽃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이상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이 꽃이 반갑다.

한여름 꽃이 귀할 때 사랑채 앞뜰에 소담하게 피었다. 커다란 감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꽃은 흐드러졌다. 비가 내리는 날 사랑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처마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세고 있노라면 빗물에 겨워 휘청거리던 모습이 선하다. 감나무 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나 함석지붕에 떨어지는 빗소리가 더 거세지면 노란 꽃은 더 힘겨웠는지 거센 바람에 보리가 쓰러지듯 그렇게 쓰러지기도 했다. 비가 그치고 해가 나오면 겹삼잎국화는 다시 일어나 샛노란 꽃을 자랑했다. 꽃을 한 송이씩 잡고 들여다보면 깊은 노랑색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그래도 흔하디흔하니까 그렇게 좋은 대접을 받는 꽃은 아니었다.

봄에 새싹이 돋으면 연한 새싹을 솎아내어 살짝 데쳐 무쳐 먹으면 야릇한 맛이 좋았다. 아버지가 특히 그 나물을 좋아하셨다. 그렇게 새싹을 몇 번씩 솎아내도 싹은 처음보다 더 많이 돋아나고 그해 꽃은 더 흐드러지게 피었다. 그만큼 생명력이 강했다. 생명력이 강한 만큼 여름 내내 두고두고 피다가 가을이면 소리 없이 시들어버린다. 겸삽립국화도 다른 꽃들처럼 제 할 일은 다 한 것이다.

그때는 그냥 큰키 개나리라고 불렀다. 큰 키를 빼고 그냥 개나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개나리가 따로 있는데 노란 색깔 빼고는 개나리와 전혀 닮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부르는 게 이상했지만 그냥 그렇게 불렀다. 국화란 그 이름이 설어 지금도 그리 부르고 싶다. 이제 시골에도 겹삼립국화는 그렇게 흔하게 피는 꽃은 아니다. 아니 남의 집 담장 아래에서 핀 꽃이 어떻게 옛 사랑 마당에 핀 꽃만 하겠는가. 지금 그 이름이 그립고, 야릇한 그 맛이 그립고, 비 맞고 서서 노랗게 핀 꽃이 그립다. 아니 겹으로 소복한 꽃잎 사이사이에서 키질하던 어머니가 그립고, 번뜩이던 아버지 안경알이 그립고, 누님들의 웃음소리가 그립고, 꽃을 유난히 사랑하던 큰 형님이 그립다.

자전거에 다시 오르며 꽃을 바라보니 겹삼잎국화는 한 삼일 쯤 흠뻑 내리는 비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