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엉겅퀴에게 물어봐

느림보 이방주 2018. 7. 24. 13:32

엉겅퀴에게 물어봐

 

2018615

미동산에서

 

엉겅퀴꽃을 발견했다. 길 아래 비탈에 여기저기 자주색으로 피어 있다. 큰 소나무 아래에서 한 번 쉬고 다시 걷다가 출발점에서 한 7km쯤이다. 억새를 비롯한 키 큰 풀들이 무성한 틈을 비집고 올라와 닭의 무리에 서 있는 고고한 한 마리 학처럼 뚜렷한 제 색깔로 꽃을 피웠다. 먼데서 바라봐도 예쁘다. 바라보면 엉겅퀴꽃인데 혹 뻐꾹채일 수도 있다. 둘은 아주 닮은 꽃이다. 자줏빛이 진한 것으로 보아 엉겅퀴가 분명하다


미동산 둘레길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계속 두 시간 쯤 걸으면 원점으로 돌아오게 된다. 숲이 짙어서 그늘을 지어주므로 한여름에도 걷기에 좋다. 우리는 함께 걸으며 역사 이야기, 세계 종교 이야기, 생태계 이야기, 문학 이야기, 꽃 이야기 등 이야기 주제에 한계가 없다.

나는 이야기를 슬슬 거들면서 길가에 핀 들꽃 들풀을 찾는다. 요즘에는 금은화로 불리는 인동덩굴 꽃도 피었고, 산수국이나 다래덩굴꽃도 찾았다. 꽃을 찾으면 즉시 스마트 폰으로 접사를 한다. 각시붓꽃이나 꿀꽃 같은 키가 작은 꽃들은 거의 땅에 엎드려서 찍어야 한다. 때로는 가시덤불을 헤치고 풀숲으로 들어갈 때도 있다.

사진을 찍으려면 허리까지 올라오는 억새는 물론 며느리밑씻개 같은 가시 돋친 덩굴을 헤치고 언덕을 한 20m정도 내려가야 했다. 길가에 피어도 되는데 왜 이렇게 험한 곳에 피었을까. 나는 바짓가랑이를 감고 놓아주지 않는 며느리밑씻개 덩굴을 떼어내며, 억새풀을 잡다가 손을 베어가며 엉겅퀴 꽃대가 올라온 풀숲으로 내려갔다. 가까이서 보니 더 곱다. 가시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엉겅퀴이다. 화심으로 들어갈수록 짙은 자줏빛이 신비롭다. 겉이 예쁜 것들은 속까지 예쁘다. 어떻게 이런 빛깔을 낼 수 있을까. 다 같은 땅에서 다 같은 물을 길어올려 하나의 태양을 바라보며 피었는데 이렇게 신비로운 자줏빛을 낼 수 있는 자연은 누구일까. 보면 볼수록 더 아름답다. 자줏빛 바늘잎이 보드라워 손바닥으로 쓸어 보고 싶었으나 참았다. 상대가 예쁠수록 고귀해 보일수록 함부로 손을 댈 일이 아니다.


엉겅퀴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다. 아름답기에 범접하기 어렵고 가시가 있어 가까이 하기 더 어렵다. 함부로 범접할 수 없으니 꺾어 소유할 욕심은 감히 내지 못한다. 어눌한 영혼으로 아름다운 엉겅퀴에게 말을 건넨다. 아니 사랑을 고백한다. 나는 너의 아름다움에 빠졌노라. 너의 손을 잡고 싶고, 너를 가슴에 안고 싶고, 너에게 입맞춤을 주고 싶다. 달콤한 꿀물을 길어주랴, 자주색 황홀한 공기를 찾아주랴. 세상 귀한 것을 다 찾아 너에게 안겨주고 싶으니라. 나는 네게 뭐든 주는 것이 기쁨이라. 내겐 그것만이 사랑이고 생명이라.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만큼 너는 내 사랑을 받아만 다오. 네 주위에서 난 다른 아무것도 찾을 수 없다. 아마도 내 시선이 뭉개졌나 보다. 투명한 자수정처럼 투명한 네 꽃송이 외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느니라.


스마트 폰으로 접사를 시도한다. 카메라를 더 갈 수 없을 만큼 가까이 대어본다. 꽃 그림 한가운데 빨간색 동그라미가 흔들리다가 어느새 초록으로 바뀌었다. 이때다. 검지로 콕 찍으니 찰카닥찍혔다. 나는 이미 아름다운 너를 가져버렸다. 너를 소유한 것이다. 도망하지 못하게 꼭꼭 주머니에 넣고 돌아온다. 그러나 영혼까지는 움켜쥐지는 못했을 것이다.


엉겅퀴꽃은 자주색으로 예쁘게 피었어도 요염하게 보이지는 않는다. 그냥 예쁘고 색깔이 고상하다. 이 꽃은 한 줄기에 서너 송이 정도 필뿐이지 여러 송이가 소담하게 피지 않는다. 흐드러지게 피었다는 말이 이 꽃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고고하다. 꽃이 욕심이 없어 보는 사람의 검은 욕심까지 헹구어낸다.


엉겅퀴꽃은 절대 쉬워 보이지 않는 여인 같은 꽃이다. 이념이 견고하다. 잎새에 드뭇하게 돋은 가시는 도도하다. 자줏빛 나는 꽃이나 바늘처럼 돋아난 꽃잎이 근엄하다. 그러나 나는 그 여인을 사진으로만 모셔왔을 뿐 마음을 갖지는 못했다. 나의 고백은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아니 너무 아름다워 마음까지는 욕심내지도 못했다. 거죽만 가져오면서 사랑을 묻고 싶었으나 묻지도 못했다. 아니 묻지 않은 것이 나았을지도 모른다. 아마 나았을 것이다. 허공을 바라보니 바람 한 점 없이 독한 땡볕만 내리쬔다.

세 친구는 아직도 텃밭에 빠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