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레골에 동백꽃을 심은 뜻은
이방주
실레골 김유정 문학관에 도착했다. 생가 마당은 비를 맞아 한결 싱그럽고 「봄봄」이나 「동백꽃」내용을 형상한 구조물이 재미있게 배치되어 있다. 작품을 읽은 학생들은 더 재미있어 할 것이고, 어린이들에게 엄마가 설명하기도 편할 것 같다. 담장 아래 동백나무를 심어 마치 김유정 문학의 전부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작품 「동백꽃」에 의하면 동백나무는 이렇게 집안에 있으면 안 되는 배경이다. 나는 문학에서 배경의 의미를 말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황순원의 「소나기」에서 ‘시내 건너 동산 위’와 아울러 「동백꽃」에서 ‘동백꽃 숲’을 예로 든다. 특히 ‘동백꽃 만발한’이라는 배경은 소설에서 매우 복합적인 공간 의미를 지니고 있다.
프로이드는 인간은 세계로 솟구치는 욕구를 지니고 산다고 했다. 세계가 인간의 욕구를 다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자아와 세계는 충돌하게 마련이다.「동백꽃」에서 열일곱 청춘의 치솟는 사랑은 세계가 만들어 놓은 규범에 부딪친다. 그것이 바로 계급이다. 소작의 아들이라 해서 어찌 사랑을 억제할 수 있겠는가? 마름의 딸이라 해서 어찌 소작의 아들을 안을 수 없단 말인가? 그러나 소작의 아들은 억울한 청춘을 억제해야만 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바보 같은 사슬이다.
소작의 아들이나 마름의 딸은 사슬을 풀고 모순된 규범으로부터 도망하고 싶다. 소작의 아들이라는 운명은 제가 선택한 것도 제 게으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마름의 딸이라는 것도 원망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생의 딸을 사랑한 이몽룡은 양반으로 태어난 것이 얼마나 원망스러웠을까? 계급이라는 굴레는 젊음의 혈기를 풀어주지 않는다. 그러한 모순에서 잠시이지만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동백꽃 숲속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어 사랑을 분출한다. 동백꽃 숲 속이라는 그들만의 이상세계에서 목마른 사랑을 행동으로 실현한다. 알싸한 향기를 생강나무의 향기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것은 두 사람의 성애의 향기라고 단정하고 싶다. 생각나무는 상처를 입지 않으면 향기가 없다. 동백꽃 숲 속은 인간 해방을 암시하는 그들만의 카오스이다. 규범의 칼날이 번득이는 마당에 동백나무를 심은 것을 처음에는 김유정 문학에 대한 미흡한 이해라고 생각했다.
인간은 늘 현실과는 다른 세상을 꿈꾸며 산다. 모순투성이인 ‘여기’에서 벗어나 ‘저기’를 꿈꾼다. ‘김유정 문학에서 ‘저기’에 대한 소망은 어느 작품에나 나타난다. 「봄봄」에서 머슴인 ‘나’는 점순이가 영원한 ‘저기’였다. 「만무방」에서 만무방으로 낙인찍힌 인물이 지향하는 ‘저기’는 사람대접을 받는 일이었을 것이다. 뇌성마비인 사람이 정신까지 마비된 것이 아니듯이, 벙어리는 영혼까지 벙어리가 아니다. 소작이라고 하여 어찌 꿈까지 소작이겠는가? 하층 계급이라고 해서 영혼까지 저급한 것은 아니다.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지식과 판단만을 고집하는 편견에 얽매어 있다. 무식한 권력자일수록 더 심하다.
김유정은 가난한데다가 병중에 있었다고 한다. 서른을 넘기지 못하고 세상을 버렸지만 꿈은 있었을 것이다. 실레골에 머물면서 그가 일구어낸 꿈은 무엇일까? 그의 문학은 단순한 농촌 소설이 아니다. 계급간의 꿈이 대립하는 모습을 이렇게 가슴 아프게 표출한 문학은 없다. 그의 해학은 그저 웃음이 아니다. 가슴으로부터 피눈물이 솟구치는 해학이다. 모순의 현실을 해학으로 드러냈다고 해도 웃음만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적나라한 고발이고 치열한 저항이다. 그는 그렇게 못 가진 자의 편에 있었다. 영혼의 계급은 영원한 소작이다. 그러기에 늘 지청구의 대상이었던 청소년의 억제할 수 없는 사랑을 이해하는 가장 인간적인 사랑을 표출한 것이다. 그는 실레골 마을에서 짧은 문학 인생을 살면서 샘물을 퍼내듯이 자신의 영혼을 토해 놓았다.
동백꽃 숲 속은 그냥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동백나무는 산등성이에서 살면서 봄 햇살이 한 줌만 내려와도 노랗게 꽃을 피운다. 봄을 맞아 제일 먼저 피어나는 노란 동백꽃은 열일곱 풋사랑의 신호탄이다. 동백꽃 피어난 숲은 공간만이 아니라 풋사랑이 샘솟는 계절을 의미한다. 춘향전이 광한루의 봄으로 사랑의 계절을 말했다면 김유정은 동백꽃 숲으로 사랑의 공간과 시간을 다 말해 버린 것이다.
김유정이 말하는 동백꽃 숲은 마을로 내려오면 안 된다. 저 깊은 산등성이에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규범이라는 사슬을 버리지 않는 한 동백꽃 피어나는 숲은 마을로 내려올 수 없다. 마을은 언제나 규범이 있는 세계이고 규범은 계급을 바탕으로 한다. 이 사회에서 권한을 위임 받은 모든 ‘마름’들은 계급과 규범을 전제로 한다. 오늘도 수많은 형상의 마름들이 사회를 오도하고 있다. 그들이 쏟아내는 편협한 언행이 힘없는 소작들을 멍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김유정이 지금까지 살았다면 어떤 소설들이 나왔을까? 신경림 시인처럼 “가난하다고 해서 왜 사랑을 모르겠는가?” 이렇게 하소연했을까? 그렇게 탄식만 하고 있었을까? 아니면 김정한이나 최서해처럼 도끼로 지주의 머리를 찍어 죽이고 마름의 집을 불태웠을까?
동백나무를 뜰에 심은 뜻은 요절한 작가에게 카오스를 만들어 주고 싶은 사람들의 착한 소망이라고 생각해 두자. 얼마나 기특한 일이냐. 나까지 마음이 편안하다. 생가 텃밭에 도라지꽃이 한창이다. 도라지꽃은 보랏빛이거나 희거나 어찌 그렇게 처절하게만 보일까? 꼭 가난하던 어머니의 치맛자락 같다. 병마에 시달리던 김유정의 젊음을 바라보는 벗의 눈길 같다.
문학관을 나오며 돌아보니 마을을 감싸 안고 있는 동산이 포근하다. 나지막한 저 산길을 걸으면 김유정이 가졌던 문학에 대한 꿈이 마을에도 내려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2013. 9.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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