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白髮童顔, 영원한 학문의 벗

느림보 이방주 2012. 9. 26. 16:05

 

白髮童顔, 영원한 학문의 벗

 - 청남 김기창 박사 정년을 맞이하여-

 

이방주 (수필가)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論語 學而-

  

학문하는 기쁨과 이루어가는 과정을 짧고 극명하게 깨우치는 공자의 말씀이다. 배움과 ‘時習’의 기쁨도 그렇지만, ‘有朋自遠方來’의 기쁨은 그 의미를 이해하기조차 어려운 말이다. 벗이라 하여 다 같은 벗은 아니다. 공자는 학문의 동지를 벗이라 했을 것이다. 학문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의리와 태도를 '朋'이란 명쾌한 촌철(寸鐵)로 사로잡은 것이다. 제자도 벗이고 후배도 벗이다. 학문의 뜻을 같이하여 제자나 후배가 되려고 아주 먼 곳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오니 그 기쁨이 어떨까 짐작이 갈만한 일이다. 기쁨으로 찾아갈 스승이 있고 선배가 있다면 그 또한 얼마나 기쁜 일이겠는가?

 

나는 한국교원대학교 대학원 석사과정에 입학하였기에 청남 김기창 박사님을 만날 수 있었다. 학문의 동지가 되는 스승이나 선배를 만나는 일은 그렇게 단순하고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도 석사과정에 입학한 목적은 다른 데 있었다. 대학 시절에 관심을 가졌던 훈민정음의 제자 원리와 철학적 바탕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학기 출석 수업에 참여하고 나서 수필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현대 수필을 공부하려면 고소설이나 설화문학이 바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의재 최운식 교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기로 하고 연구실로 찾아갔다. 나는 교수님 앞에서 평생 학문의 동지가 되기로 선서를 하고 선생님께 논문 지도를 받기로 했다. 그런데 의재 선생님께 논문 지도를 받는 사람은 모두 월곡고전문학연구회에 입회했다. 월곡회 정기 모임에 처음 참석하고는 정말 탁월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다. 의재 선생님의 세심한 지도와 회원들의 학문적 열정을 만난 것은 물론이고 거기서 청남 선생을 만난 것이다. 

 

처음에는 백발에 불그레하면서 남달리 피부가 고운 얼굴로 가부좌를 하고 학회를 이끌어가는 청남 선생이 다소 어색하게 보였다. 특히 후배들에게 마치 제자들 다루듯이 마구 지시하는 모습은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청남 선생은 지루해 하는 재학생들을 꼼짝 못하게 잡아 놓고 밤이 깊어 새벽이 될 때까지 토론회를 이끌어 갔다. 눈빛 한 번 흐트러짐 없는 독재에 가까운 자세는 논문 구상 단계에서 첫발을 띠는 회원을 주눅 들게 했다. 그러나 때로 해학을 섞어가면서 토론 내용을 조율하고 종합하면서 모든 회원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느라 진땀을 빼는 모습이 점점 그를 믿음직스럽게 했다. 의재 선생님은 옆에서 미소만 짓고 계시면서 가끔 핵심을 찌르는 말씀을 해주셨다. 

 

후배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스승인 의재 선생님을 넘어서는 연구를 해야 된다는 말도 거침없이 했다. 월곡회에서는 스승도 선배도 후배도 닫힘 없는 학문의 동지였다. 이런 청남 선생은 내게 한 5년 정도 선배이지만 사형(師兄)이라 할 만큼 아득하게 보였다. 석사과정에서 내가 연구해야 할 과제를 정하고 막막하기만 했었는데, 첫 모임을 참석하고 두려움에서 오솔길나마 찾은 것은 바로 청남 선생이 회장으로 있는 월곡회 덕분이었다. 그 후 오솔길에 잡목이 우거져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마다 전화를 했다. 그때마다 친절하고도 자상하게 잡목을 거두어 주었다. 길만 일러주는 게 아니라 자료를 찾아 주고, 어떤 자료는 어떤 벗에게 부탁하면 된다는 식으로 길을 가르쳐 주었다. 스승보다 선배가 만만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래서 학계에 연구의 바탕이 미미했던 <윤지경전>에 대하여 나름대로 실적을 쌓은 것은 모두 의재 선생님의 지도를 받고 청남 선생의 도움을 얻은 덕택이었다. 의재 선생님을 영원한 스승으로 청남 선생을 영원한 선배로 생각한다면 두 분은 나에게 '有朋自遠方來'의 기쁨을 안겨주신 분들이다.

 

석사과정을 마치고도 두 분과 有朋自遠方來의 기쁨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내 삶을 윤택하게 해 준 일이다. 가장 보람 있는 일은 함께 주식회사 대교에서 하는 우리 고전의 숲을 집필한 일이다. 좋은 책이 나올 수 있도록 친절하고 자상하게 안내하고 이끌어 준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주시내 신설학교인 산남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이다. 평소 믿음직스러운 제자가 찾아와서 장래에 특수교사가 되어 특수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겠으니 대학을 안내해 달라고 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청남 선생이 계신 백석대학교 특수교육과를 추천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드렸더니 학생을 바꾸어 달라고 했다. 자상하고 친절한 안내를 받은 제자는 교수님이 이렇게 친절할 수가 있냐며 바로 백석대학교 특수교육과로 원서를 제출하겠다고 했다. 면접 보는 날 전화를 드려보라 했더니 연구실로 불러 친히 따뜻한 차를 끓여주고, 여러 가지 특수교육과의 장래에 대한 자료를 준비해 놓았다 일러 주었다고 한다. 청남 선생은 배우고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인지 가리지 않고 벗으로 맞이하는 이 시대에 아직도 남아 有朋自遠方來를 기쁨으로 생각하는 학자 중의 학자이다. 이 학생은 지금 백석대학교에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있고 머지않아 훌륭한 특수교사가 되어 어려운 사람에게 청남 선생 닮은 사랑을 베풀 것이라 믿는다.

 

나는 시골에서 보잘것없는 문인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그런데도 청남 선생에게는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 졸작을 모아 처음으로 수필집<축 읽는 아이>를 내고 출판기념회를 할 때 직접 오셔서 축하해 준 것은 물론, 끝까지 꼼꼼하게 읽고 만날 때마다 소감을 이야기해 주었다. 뿐만 아니라 자당님께서도 매우 좋아하신다고 했다. 나는 다른 세상에 가 계신 나의 어머니께 책을 보내드리는 것만큼 기쁜 마음으로 <축 읽는 아이>를 한 권 더 보내드렸다. 자신의 글을 읽고 글로써 알아주는 벗을 만나는 기쁨을 어디다 비기랴. 청남 선생은 보잘것없는 나의 수필을 알아주는 몇 분 안 되는 소중한 독자 중의 한 분이다. 이렇게 학문의 동지로서의 정을 다 주신 분이다.

 

나는 의재 최운식 선생님을 영원한 스승으로, 청남 김기창 박사를 영원한 사형(師兄)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두 분은 나의 영원한 학문의 벗이다. 학문의 벗이기에 아무리 먼 곳이라도 기쁨으로 찾아갈 것이다. 우리네 삶을 운명적인 만남과 의지에 의한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면, 청남 선생과의 만남은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의 복을 누리게 된 소중한 삶의 한 여정이었다. 

 (2012. 9.28.) 

청남김기창 교수 정년 기념 문집 <내 잔이 넘치나이다>에 게재

 

김기창교수 원고 청탁서.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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