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최인호 -대중을 문학의 세계로-

느림보 이방주 2013. 9. 27. 13:03

최인호의 죽음

-대중을 문학의 세계로-

 

최인호가 세상을 떠났다.  나는 한번도 인간 최인호를 만난 적이 없다. 그러나 작가 최인호는 늘 곁에 두고 살았다. 그를 곁에 두고 산 것은 문학성도 문장의 화려함도 아니다. 대중의 품격을 높게 만들어 문학으로 끌어 들였다고 그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문학의 대중화가 아니라 대중의 문학화란 말이다.

 

최인호를 만난 것은 『별들의 고향』이다. 나보다 일곱살 많은 해방동이인 최인호는 내가 고등학교 때 이미 『별들의 고향』으로 세상을 사로잡았다. 당시 조선일보인지 하는 신문 소설로 연재된 이 작품 때문에 시골까지 우편으로 배달되는 신문을 기다렸다. 70년대 통속소설이란, 그 때를 살아본 사람은 대충 그 내용이나 수준일 이해할 것이다. 문학을 모르던 나는 『별들의 고향』에서 약간의 통속적인 재미와 함께 사랑의 아름다움, 계급을 초월한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어렴풋이 짐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학이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 사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리고 그가 나보다 일곱 살밖에 더 많지 않다는 사실이나 고등학교 때 이미 소설가로 등단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믿지 못하면서도 은근한 가능성을 기대하기도 했다.

 

 이렇게 어린 시절『별들의 고향』을 통하여 최인호를 알고 난 다음부터 그의 다른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고래사냥』『깊고 푸른 밤』등 몇 작품을 읽으면서 그의 작품에서 문체적 언어적 재미를 느꼈다. 우연한 기회에 70년대 중반부터 월간 『샘터』라는 자그마한 잡지를 정기 구독하게 되었는데 거기에 최인호의 『가족』이란 소설이 연재되었다. 자신의 가족을 모델로 한 소설이라 한결 흥미 있고 실재감이 있었다. 최인호의 가족들은 『가족』과 함께 태어나서 성장하고 변화되어 왔을 것이다. 그만큼 『가족』의 연재는 오랫동안 지속되었다. 『가족』때문에 계속해서 샘터를 정기 구독하였다. 아마 나 말고도 이 작품 때문에 『샘터』를 구독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내가 샘터를 정기구독을 그만 둔 다음에도 연재는 계속되었다. 그리고 『가족』연재가 중단된 것은 그의 암과의 싸움이 더 격렬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작품들이 영화나 드라마로 각색되어 대중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마도 『별들의 고향』이 영화로 상영되었을 때 최인호 문학이 동기가 되어 영화가 흥행을 하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영화가 흥행하니 『商道』나 『해신』같은 작품들이 방송 드라마로 방영되었다. 이렇게 해서 대중이 최인호를 알게 되고 대중이 문학을 알게 되고 영화를 먼저 본 이들이 소설을 읽게 된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영상물을 먼저 접한 다음 소설을 읽는데는 상상력이 제한 받는 문제점이 있기는 하지만 안 보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이다. 영화를 먼저보고 소설의 맛을 안 이들이 이번에는 소설을 먼저 읽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상도 3나이를 먹고 삶이 더 바빠지고 속된 삶에 더 많이 빠지면서 최인호의 작품을 잊고 살았다. 그런데 지난해 우연히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읽게 되었다. 어린 시절 읽었던 『별들의 고향』 같은 작품들이 감성적인 문체로 우리 영혼을 사로잡았다면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는 소외 의식을 토대로 한 현대인의 고뇌를 다루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작품을 읽으면서 관심에서 멀어졌던 최인호가 암투병 중이라는 것을 알았다.

 

최근에 조정래의 『정글만리』를 읽고 나서 언뜻 서가에 꽂혀있는 『商道』를 발견하였다.  그냥 읽기 시작했는데 첫페이지부터 빠져버렸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이 나이에 소설을 읽느라 밤을 새우기도 했다. 그러면서 앞서 읽은 『정글만리』와 『상도』를 대조해 보려는 생각이 들 때쯤, 즉 1권을 읽고 2권을 시작하는 즈음에서 최인호의 부음을 들었다. 그리고 상념에 잠기게되었다.

 

 이렇게 치열하게 문학을 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위하여 그리 할까? 나는 무엇인가? 나는 어떻게 문학을 했다. 그냥 "나는 문학합네"하는 말을 하려고 이러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 맞아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책이나 일고 있듯이, 정말로 책이 필요해서 읽는 것이 아니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책을 읽듯이 그렇게 문학을 하는 것이 아닌가? "열등의식이나 무능의 도피처" 그것이 아닌가? 이런 회의에 빠지게 되었다.

 

최인호의 죽음, 그것을 계기로 나는 내가 늘 주장했던 문학이 대중에게 달려가서 대중을 끌어 안아 문학의 뜨락 위로 업어 올려 놓은 장본인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다. 

고인은 병마와 싸우면서 극복의지를 다지면서 산문집을 냈다고 한다. 『최인호의 인생』에 이런 말도 있다니 한 번 읽어보고 싶다.

 

"강이 범람하여 홍수가 나지 않으면 대지는 황폐화된다. 기름지고 비옥한 땅이 되기 위해서는 강의 홍수로 땅이 뒤집혀야 하는 것이다. 태풍이 바닷물을 엎어버리지 않으면 플랑크톤은 사라지고 물고기들의 먹이 사슬은 끊어진다. 바다가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태풍이 몰아쳐야 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인간다워지기 위해서는 병의 홍수와 태풍을 견디어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역설이다. 그는 카톨릭교도이면서도 이렇게 불교적인 역설적 사고를 지니고 살아왔다. 스스로 불교적 카톨릭교도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대중에 가까이가서 대중화되는 것이 아니라 대중에게 문학적 물들이기를 성공한 것이다. 기막히다. 나보다 일곱살 많으면서 50년 문단 생활을 한 그는 짧은 인생에 크나큰 그림자를 문단과 우리 현대사에 남긴 큰 사람이다.

 

최인호는 짧지만 굵게 살았다. 그의 죽음이 그의 서점가에서 그의 소설이 26배나 더 팔린다고 한다. 69세, 그의 사고방식대로 역설을 쓴다면 그가 이쯤해서 죽은 것은 참으로 복을 받은 것이다. 삶과 죽음이 한가지라면 잘 살아 왔기에 잘 죽은 것이다.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나는 삶이 단 한번 뿐이기에 그렇게 치열한 삶이 부럽고 그렇게 짧은 삶이 부럽다. 아니, 내가 어찌 감히 그를 부러워할 수가 있겠는가? 

(2013. 9.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