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을 시작하려고 막 책을 펼쳤다. 한 학생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이다. ‘뭔데?’하고 눈짓으로 물었다.
“선생님 토가 나오려고 하는데 수업 중에 갑자기 나가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뭐가 나온다고?”
“토가 나와요.”
토가 나오는 것이 뭘까? 못 알아듣는 내게 다른 학생이 토할 것 같다는 말이라고 일러준다. 속이 안 좋아 토할 것 같다는 말을 토(吐)가 나온다고 말한 것이다. 누가 이렇게 가르쳤을까? 이럴 때는 ‘구역질이 난다.’든가 ‘토할 것 같다.’, ‘욕지기가 난다.’라고 해야 맞는다. 어릴 때부터 들어서 습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젊은 세대들은 그런 말을 일반적으로 쓰고 있었다.
어떤 방송 면담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 같다’, ‘너무 좋아’, ‘완전 ~하다’, ‘열나’, ‘짱나’를 자랑삼아 계속 섞어 말한다. ‘어떤 느낌이 오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까지는 참을 만한데,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맛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감각을 불신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퍼붓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야 참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불확실성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답답하다.
‘어떤 기대나 한도를 넘어서서 지나치게’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너무’라는 부사가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이 너무 많이 쓰인다. 특히 ‘굉장히’, ‘매우’와 혼동해서 쓰거나 대신해서 쓰는 것은 잘못이다. 미용실에 다녀오는 친구에게 ‘너무 예쁘다.’라거나, 자녀의 성적이 많이 오른 친구에게 ‘너무 좋겠다.’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들 성적이 올라서 너무 좋아하다가 그만 미쳐 버렸다.’든가 ‘그 여자는 너무 예뻐서 바람이 났다.’와 같이 지나침의 의미가 있을 때만 쓰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어법에도 어긋나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이 있다. 바로 ‘완전 맛있다.’, ‘완전 좋겠다.’ 등이다. 이 말은 ‘완전 점검’, ‘완전 정복’처럼 일부 명사 앞에 놓여서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앞에 예로 들은 말은 적절하지 않다. 아마도 ‘너무’의 후속으로 나온 말이 아닌가 한다.
엄청나게 많거나 상황이 굉장할 경우 ‘열나다’라는 어휘가 있는데 신세대들이 ‘열나’로 줄여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아무개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다.’라고 할 말을 ‘열나게 열심히 한다.’라고 했다가 ‘열나 열심히 한다.’라고 표현한다. 좋은 표현이 아니다. 더구나 튀어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열나’가 ‘욘나’로 바뀌더니 ‘존나’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공부를 존나 열심히 한다.’라고 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제 ‘열나’, ‘존나’는 어른들도 쓰고 있다. 그들의 말을 흉내 내어 신세대와 소통하려는 어른들은 ‘열나’를 쓰다가 이제 ‘존나’, ‘존나게’까지 따라 쓴다. ‘존나게 짜증난다.’, ‘존나게 덥다.’에서 심지어는 ‘우리 아버지 존나 고생하신다.’라고 말하는 젊은이도 있고, 여성들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을 쓴다. ‘존나’의 어원이 ‘좆 나게’라는 욕설이라는 것을 알면 도저히 쓸 수 없을 것이다. 튀고 싶은 사람들은 어법을 어기더니 이제는 비속어도 태연하게 쓴다.
고백하면 나도 젊은 시절엔 ‘니미랄’, ‘씹팔’과 같은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냥 느낌을 강하게 표현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시원하게 표출해 버렸다. 물론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패륜아를 욕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봉산탈춤 공연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봉산탈춤 4과장 노장춤에서 먹중 하나가 ‘아 네미를 붙을 놈들은 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 하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등장한 어떤 먹중이 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니미랄’은 ‘네미를 붙을 놈’에서 연유된 말이라는 것을 여기서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너의 어머니를 붙을 놈’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말을 생각 없이 써온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더 말하기 민망하지만 ‘씨발’, ‘씹팔’, ‘씨팔’ 같은 웬만한 사람들의 입에 밴 욕들이 모두 기본적으로 ‘너의 어머니를 붙을 놈’에서 연유된 말이라면 모두 놀랄 것이다. 어원을 알고 보면 자신에게는 물론 누구에게도 쓸 수 없는 말이다.
판소리나 탈춤을 보면 우리 선인들은 참으로 욕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선인들에게 욕은 신분제도가 뚜렷한 사회에서 내적 갈등이나 힘겨운 생활을 해학으로 극복하거나 감정을 정화하는 기능을 했다. 곧 카타르시스의 미학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연예술에서나 대신 보여주고 우리는 관객이 되어 간접적인 해소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 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튀어 보이고 싶은지 수식어들이 지나치게 튀고 있다. 어법에 맞는 말은 그의 교양이고, 고운 말은 그의 인품이다. 입에서 나온 말은 곧 그의 얼굴을 교양과 인품의 무지갯빛으로 곱게 가꾸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튀고 싶은 대로 마구 튈 일은 아닌 것이다. 좋은 말에만 좋은 얼굴이 따르게 마련이다.
(2011. 6. 16)
좋은 말 좋은 얼굴
<에세이 뜨락> 이방주
2011년 06월 23일 (목) 21:13:35 지면보기 11면
김미정 기자 mjkim@jbnews.com
수업을 시작하려고 막 책을 펼쳤다. 한 학생이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치이다. '뭔데?'하고 눈짓으로 물었다.
"선생님 토가 나오려고 하는데 수업 중에 갑자기 나가더라도 이해해 주세요."
나는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 다시 물었다.
"뭐가 나온다고?"
"토가 나와요."
토가 나오는 것이 뭘까? 못 알아듣는 내게 다른 학생이 토할 것 같다는 말이라고 일러준다. 속이 안 좋아 토할 것 같다는 말을 토(吐)가 나온다고 말한 것이다. 누가 이렇게 가르쳤을까? 이럴 때는 '구역질이 난다.'든가 '토할 것 같다.', '욕지기가 난다.'라고 해야 맞는다. 어릴 때부터 들어서 습관이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보았더니, 젊은 세대들은 그런 말을 일반적으로 쓰고 있었다.
어떤 방송 면담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 같다', '너무 좋아', '완전 ~하다', '열나', '짱나'를 자랑삼아 계속 섞어 말한다. '어떤 느낌이 오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까지는 참을 만한데,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 '맛있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것은 자신의 감각을 불신하는 것 같아 안쓰럽다. 퍼붓는 장대비를 바라보며 "야 참 비가 많이 내리는 것 같아."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 불확실성시대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답답하다.
'어떤 기대나 한도를 넘어서서 지나치게'라는 의미를 나타낼 때 '너무'라는 부사가 쓰인다. 그런데 이 말이 너무 많이 쓰인다. 특히 '굉장히', '매우'와 혼동해서 쓰거나 대신해서 쓰는 것은 잘못이다. 미용실에 다녀오는 친구에게 '너무 예쁘다.'라거나, 자녀의 성적이 많이 오른 친구에게 '너무 좋겠다.'라는 표현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들 성적이 올라서 너무 좋아하다가 그만 미쳐 버렸다.'든가 '그 여자는 너무 예뻐서 바람이 났다.'와 같이 지나침의 의미가 있을 때만 쓰는 것이 좋다.
요즘에는 자연스럽지도 않고 어법에도 어긋나는데 젊은이들 사이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이 있다. 바로 '완전 맛있다.', '완전 좋겠다.' 등이다. 이 말은 '완전 점검', '완전 정복'처럼 일부 명사 앞에 놓여서 필요한 것이 모두 갖추어져 모자람이나 흠이 없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그러므로 앞에 예로 들은 말은 적절하지 않다. 아마도 '너무'의 후속으로 나온 말이 아닌가 한다.
엄청나게 많거나 상황이 굉장할 경우 '열나다'라는 어휘가 있는데 신세대들이 '열나'로 줄여서 말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아무개가 공부를 매우 열심히 한다.'라고 할 말을 '열나게 열심히 한다.'라고 했다가 '열나 열심히 한다.'라고 표현한다. 좋은 표현이 아니다. 더구나 튀어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인지 '열나'가 '욘나'로 바뀌더니 '존나'로 탈바꿈했다. 그래서 '공부를 존나 열심히 한다.'라고 해서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이제 '열나', '존나'는 어른들도 쓰고 있다. 그들의 말을 흉내 내어 신세대와 소통하려는 어른들은 '열나'를 쓰다가 이제 '존나', '존나게'까지 따라 쓴다. '존나게 짜증난다.', '존나게 덥다.'에서 심지어는 '우리 아버지 존나 고생하신다.'라고 말하는 젊은이도 있고, 여성들까지도 아무 생각 없이 이 말을 쓴다. '존나'의 어원이 '좆 나게'라는 욕설이라는 것을 알면 도저히 쓸 수 없을 것이다. 튀고 싶은 사람들은 어법을 어기더니 이제는 비속어도 태연하게 쓴다.
고백하면 나도 젊은 시절엔 '니미랄', '×팔'과 같은 욕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그냥 느낌을 강하게 표현하거나 불편한 감정을 시원하게 표출해 버렸다. 물론 좋은 말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패륜아를 욕하는 말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봉산탈춤 공연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봉산탈춤 4과장 노장춤에서 먹중 하나가 '아 네미를 붙을 놈들은 백구야 껑충 나지 마라 하는데'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등장한 어떤 먹중이 욕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인데, '니미랄'은 '네미를 붙을 놈'에서 연유된 말이라는 것을 여기서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너의 어머니를 붙을 놈'이라는 의미이다. 그런 말을 생각 없이 써온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더 말하기 민망하지만 '×발', '×팔', '씨×' 같은 웬만한 사람들의 입에 밴 욕들이 모두 기본적으로 '너의 어머니를 붙을 놈'에서 연유된 말이라면 모두 놀랄 것이다. 어원을 알고 보면 자신에게는 물론 누구에게도 쓸 수 없는 말이다.
판소리나 탈춤을 보면 우리 선인들은 참으로 욕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선인들에게 욕은 신분제도가 뚜렷한 사회에서 내적 갈등이나 힘겨운 생활을 해학으로 극복하거나 감정을 정화하는 기능을 했다. 곧 카타르시스의 미학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공연예술에서나 대신 보여주고 우리는 관객이 되어 간접적인 해소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말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이 시대 사람들은 누구나 튀어 보이고 싶은지 수식어들이 지나치게 튀고 있다. 어법에 맞는 말은 그의 교양이고, 고운 말은 그의 인품이다. 입에서 나온 말은 곧 그의 얼굴을 교양과 인품의 무지갯빛으로 곱게 가꾸어 가는 것이다. 그러니 튀고 싶은 대로 마구 튈 일은 아닌 것이다. 좋은 말에만 좋은 얼굴이 따르게 마련이다.
▶'한국수필' 신인상(1998), 충북수필문학상(2007) 수상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내륙문학회원, 충북수필문학회원
▶충북수필문학회 주간 역임, 내륙문학회장 역임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맛', 칼럼집 '여시들의 반란, 편저 '우리 문학의 숲 윤지경전'
▶충북고등학교 교사
▶nrb2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