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학교 칼럼> 교정의 매화

느림보 이방주 2009. 2. 5. 23:05

교정에 매화가 피었습니다.
눈처럼 하얀 꽃잎이 한없이 깨끗해 보입니다.
가시인지 가지인지 모를 만큼 날카로운 가지들 사이로
하얀꽃이 신비스럽습니다.
 
한겨울 동안
꽁꽁 얼어 붙은 대지에서
그 거친 가지들은 언 하늘을 바라보면서 봄을 기다렸겠지요.
땅이 녹아 작은 물기라도 흐르기만을 기다렸겠지요.
 
그 거친 가지들은
봄을 기다려 어떤 꿈을 꾸고
대체 땅 밑에서 어떤 물을 길어올렸기에
그렇게 청순한 꽃을 피웠을까요.
 
아마 뿌리에 스며든 물은 새하얀 꽃을 피울 수 있을 만큼
그렇게 깨끗하지만은 않았을 겁니다.
때로 더러운 물도 스며들고
때로 기름 때로 스며들고
때로 강아지똥도 스며들고
때로 험악한 사람의 오줌도 스며들었을 테지요.
 
봄을 맞아 하얗게 다섯잎으로 세상을 밝힌 꽃송이는
더럽고 험한 것들을 다듬고 삭이어서
고고하게 피어났을 겁니다.
 
이제
가을이 되면
꽃이 피어난 자리에
새큼한 맛의 매실이 열릴 테지요.
 
세상의 온갖 소리와 온갖 빛과 온갖 물을 빨아들여
정말로
신산한 맛의 매실을 매달겠지요.
 
우리 산남의
큰애기들은 너의 봄을 맞아
어떤 꿈을 꾸고
어떤 빛을 받아
어떤 다듬이질을 하여
어떤 꽃을 피우고
어떤 열매를 맺을 작정인가요?
 
이 사회를 위하여
인류의 고급스런 문화를 위하여
어떤 맛을 내는 열매가 되겠습니까?
 
교정의 매화를 바라보며
그 순결한 모습이
꼭 우리 산남의 큰애기들을 닮아
조용히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2008. 4. 12. 산남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