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과 서재/완보 칼럼

<학교 칼럼> 산남고, 여기는 청주의 강남이 아니랍니다

느림보 이방주 2009. 2. 5. 23:04

산남고등학교
산남고
청주의 강남
 
청주의 강남
산남고
산남고등학교
 
청주의 강남
듣기에 따라서는
참 듣기 좋은 말입니다.
 
산남고는
청주의 강남에 있어요.
무심천 남쪽에 있으니까요.
 
아, 그 말이 맞아요.
왜냐고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모두가 예쁘니까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모두가 착하니까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모두가 웃으며 인사할 줄 아니까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교복이 예쁘니까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저고리 단추를 풀고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게다가
산남고 큰애기들은 공부를 열심히 하니까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좋은 책을 많이 읽으니까요.
산남고 큰애기들은 테마가 있는 쉼터에서 좋은 그림도 보고, 좋은 시도 외고, 세상 바라보기도 하고, 가지가지 잡지도 읽으니까요.
 
산남고에는 정원에 가지 늘어진 소나무가 있고, 늘푸른 대나무도 있고
산남고에는 생강나무꽃이  노랗게 피어나더니, 이어서 벚꽃이 피고, 목련이 피고, 양지쪽에 하얀 매화가 망울을 터뜨렸어요.
계단에는 먼지 하나 없고, 음악이 흘러나오는 깨끗한 화장실, 깨끗한 세면대, 모자람 없이 갖춘 교실,
게다가 정말 정말로 자랑하고 싶은 것은
아이들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다는 것이지요.
선생님을 진정으로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은 모두 선생님을 존경하고
선생님들은 모두 아이들을 사랑하고
아이들끼리는 서로 사랑하며 어른들 존경하는 법을 깨닫고
선생님들은 서로 존경하며 아이들 사랑법을 깨닫는 학교
이 세상에 이런 배움의 낙원도 있을까요?
"행복한 배움터, 좋은 학교"
이 말이 말 뿐이 아니지요.
 
그런데
청주의 강남
되세겨어보면 되세겨어볼수록 좋은 말만은 아닌 것 같아요.
옛날 풍수에서도 길지를
산남 강북(산의 남쪽 강의 북쪽)으로 알았어요.
그래서 산지남 강지북(山之南 江之北)을 길지로 양(陽)이라 했어요.
서울도 삼각산의 남쪽 한강(漢)의 북쪽(陽)이라 해서 한양(漢陽)이 된 것이지요.
더구나 우리는 산의 북쪽이 아니라 남쪽인 산남이잖아요.
 
강남이라면
어쩐지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지혜로운 사람들의 터전이 아니라
물질적 풍요와 현실적 욕구에 충실한 허영의 땅이란 느낌이 들어요.
우리 학교는 그런 곳이 아니잖아요.
우리 아이들은, 우리 아름다운 큰애기들은
돈 많은 집 큰애기들이 모여 사치와 허영으로 휘감고 다니는 그런 아이들이 아니잖아요.
검소하고, 자제할 줄 알고, 남의 아픔을 먼저 생각할 줄도 알며
자신을 다듬어 새로 태어날 줄도 알고
제가 모자란 게 뭔지 다 알아서 찾아 공부할 줄 아는 그런 아이들이잖아요.
예쁘고 착하다고 해서
학교가 아름답고 깨끗하다 해서
강남은 아니잖아요.
현실이 풍요롭다고 해서
거기에 안주해서도 안되고
그렇게 머물러버릴 큰애기들도 아니잖아요.
우리 큰애기들은 지성과 덕성을 겸비한 지혜로운 사람이잖아요.
 
아주 쉬워요.
따져볼 것도 없이 우리는 산남이예요.
우리는 현재에 머물지 않아요.
여기서 공부하는 큰애기들은 큰애기로 머물지 않아요.
더 먼 곳에 시선을 두고 있어요.
우리 큰애기들은 다소곳한 여성으로 성장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우리 큰애기들의 시선은 세계에 머물러 있어요.
이 고장과, 이 나라와, 이 지구촌의 품격 높은 문화를 위하여  큰 일을 해낼 인재들이거든요.
혹여 거친들판에 떨어진다하더라도 우리는
인재로 자라나야 하거든요.
 
산남고
산남고등학교를
청주의 강남이라 부르지 마셔요.
우리는 강남이 아녜요.
꿈이 더 먼 곳에 있어요.
저기,  저 멀리, 아주 먼 세계, 우리들의 이상 세계,
거긴
강남이 아니라, 영원한
'산남'입니다.

 

(2008. 4. 6. 산남고등학교 홈페이지 학교 칼럼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