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제 14회 충북수필문학상 시상식

느림보 이방주 2007. 12. 21. 11:51

2007년 12월 18일

제 14회 충북수필문학상 시상식 날이다

수상작은 <이제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젓가락 하나>이다. <이제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는 이름에 대하여 우리 민족이 지닌 의식을  담으려고 쓴 글이다. <젓가락 하나>는 우리의 젓가락 문화에 담겨 있는 생활의 정서와 문화적 의미를 새겨 본 글이다.

 

  <축 읽는 아이> 이후 나는 주변의 일상의 토로에서 벗어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당시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내 글을 출판할 수 없는 이유로  '문장은 아름답고 군더더기 없이 훌륭하여 쉽게 읽혀지며 재미는 있지만, 글이 개인적 체험에 그쳐 역사와 문화, 우리 민족의 의식세계가 녹아 들어가지 않았다. 문장이 너무 아깝다. 그래서 애석하다.'라고 했다. 그 때 나는 뼈 아프게 후회했다. 내용 없는 글에 대하여 부끄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럼에도 책이 나오자 남들이 부드럽고 군더더기 없다는 그 문장 때문에 반응은 좋았다. 그래도 그런 일상의 기록에 한정된 작품이라는 인상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쳤다. 그러나 쉽게 거두어지는 성과는 아니었다.

 느림보 이방주(답사)

 

  상을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마는 나도 이 상을 언젠가는 받아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그러나 금년에 바로 이렇게 상을 받게 될 줄은 몰랐다. 그리고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상을 받기 위하여 서두를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충북수필문학상을 받음으로써 나의 영광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충북의 수필문학의 발전적 변화로 보여질 때 받고 싶었다. 문인들의 생각에 "맞아 이제 그의 차례야! "하는 평이 아니라, "어! 충북수필이 변했네!"하는 평을 받고 싶었다. 그러니 아직 때가 아닌 것이다. 내 글은 아직은 멀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정하고도 내내 궁금했다. 내 생각에 분명 차례는 아닌데 회원들이 발전적 변화로 생각할지 어떨지에 대하여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등단한지 10년이 안 되었고, 충북수필에서 5년간 주간을 본 것 밖에 기여한 바가 없다. 게다가 그 5년 중에서도 도중에 1년은 도중하차하여 문학회에 피해를 입힌 적도 있다. 또한 충북수필의 운영 과정이 내 맘에 들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하여 늘 심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거기다 2007년에는 2월에 한 번 모임에 나가고는 회비만 송금하였다. 아직 상을 받지 않은 등단 선배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상을 받는 일이 편하기만 한 일은 아니었다. 몇 번 사양했지만 사양이 가식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고, 지나친 사양은 오히려 오만이 될 수 있다는 어느 선배의 충고를 들었다. 받기로 마음을 먹고 나서도 가장 두려운 것은 선배들에게 민망한 일이다.  작품을 보내고 약력을 요약하여 보내고 심사평을 기다리면서도 '나는 정말 받아야 하나'하는 일에 대하여 확신이 서지 않았다.

  참석해주신 분들

  

  그런 중에 날짜는 자꾸 다가왔다. 이왕 행사를 치룬다면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여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너무 많이 모여도 참석자들에게 또 거부감을 갖게 할  것이다. 나는 누구를 초대할 것인가에 대하여 고민했다. 어떤 선을 긋기가 참으로 어려웠다. 내가 좋아하는 분들을 모두 초대하면 오백 명도 더 와 줄 것 같았다. 그런 중에도 나는 내륙문학회 행사 준비로 겨를이 없었다.

 

  우선 우리학교 선생님들을 모시기로 했다, 또 내가 최근에 써서 충북수필 23집에 올린 '아침 햇살 같은 고독'이란 글에서 나의 고독의 공간을 채워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써 넣은 사람들만을 모시기로 했다. 그들이 바로 '좋은 사람들의 모임' 잉꼬 부부모임, '노가리 친구들' '백만사의 이효정선생님 내외분' '초등학교 친구' 사랑하는 후배' 그 분들 중에서 참석 가능한 분들을  모셨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내륙문학 동인들 몇 분에게만 이야기 했다. 가족 중에서도 시를 쓰는 형님과 처남 내외분에게만 말했다.  아내의 친구들도 테니스 회원중에서 고등학교 동문만 5,6명 알리기로 한다. 그렇게 줄여도 40명 정도 될 것 같았다. 아쉬움은 남았다. 더 초대하고 싶은 분들이 있었지만 장소가 한정되어 있다. 오시기로 한 분들은 다 참석했다. 그런데 좋은 사람들의 모임만 세 분으로 그쳤다. 나는 세 분으로 그친 좋은 사람들의 모임에 대하여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화환만을 큰 것으로 보내고 참석은 안한 이유가 무얼까? 아마도 내게 부담을 준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회원들에게 부담을 드린 것이 아닌가하여 불안했다. 식장이 꽉 들어 찼다.  넘치지도 않고 헐렁하지도 않아서 좋았다. 출판회 때처럼 음식이 모자라지도 않았다 

 좋은 사람들의 모임에서 보내준 화환

 

 꽃다발(백합 같은 양준목 시인)

   초대의 전화를 할 때, 나는 어떤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해서 또 많은 고민을 했다. 그런데 내 걱정처럼 오는 분들이 모두 그냥 오면 마음이 편할 텐데 꽃을 가져왔다. 꽃바구니가 무대를 충분히 장식할 수 있었다.  한국수필작가회에서 꽃바구니가 왔고, 통정공파 종회, 초등학교 때 여자 친구인 태희와 병숙, 학교, 노가리회, 아내의 친구들, 등 꽃바구니가 무대를 채웠다. 또 오는 사람마다 다 꽃다발을 들고 왔다. 꽃을 주고받는 일은 아주 기분 좋은 일이지만 참으로 쑥쓰럽다. 그런데다가 꽃다발을 주는 분들이 대부분 여자분들이라 악수하기도 그렇고, 그냥 웃기도 그렇고 몸을 어디다 어떻게 두어야 할 지를 몰랐다. 양준목 시인, 김은숙 시인, 제자인 박미애 동화작가, 한혜선 행정실장, 김혜식 주간, 후배 이유숙선생님, 이정희 선생님, 처남 내외분, 목소리가 예쁜 내륙의 박경희 시인, 잉고 모임의 총무이신 이재량 선생님, 테니스회 등 이루 말할 수 없다. 어떤 수필가는 아주 귀한 만년필을 선물로 가져 오셔서 나를 당황하게 했다. 꽃은 우리를 많이 쑥쓰럽게 한다. 한 번에 가져오신 꽃을 다 쓸어안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생애에 이렇게 꽃을 많이 받아 본 일은 처음이다. 꽃다발을 바라보니 생애의 최고의 날로 여겨도 될 것 같았다.

 

  꽃 얘기를 먼저하니까 순서가 바뀐 것 같다. 꽃은 사람을 참 기분 좋게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꽃을 좋아하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사람답다고 해야 할까. 나 같은 멋없는 남자도 꽃에 둘러 싸이니 대단한 사람처럼 생각되고 훨씬 괜찮아 보였다. 수상작이라고 내놓은 작품이 '이제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라는 것도 우연이 아니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의식이 시작되었다. 의식은 유인종 사무국장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그는 참으로 차분한 목소리로 그윽하게 사회를 보았다. 정말 점잖고 품위있는 사회였다. 유인종 선생님은 나보다도  연상이다. 그런데도 그런 티를 내지 않는다. 그의 무게 있는 사회는 당연히 장내를 엄숙하게 사로잡았다. 충북수필문학회는 국기에 대한 경례부터 시작한다. 처음 문단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대부분의 문학회가 국기에 대한 경례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참 놀라웠다. 내륙문학회는 그런 형식적인 의식은 생략한다. 

 수상 장면

  내빈 소개는 회장이 하고, 수상자 약력소개는 사무국장이 하는 식으로 홀기가 되어 있었다. 그래서 나는 가족소개는 내가 하겠다고 했다. 내륙에서는 수상자 약력 소개는 부회장이 하고 내빈소개는 사무국장인 사회가 했다. 그걸 두고 말하는 이가 있긴 했으나 시상식의 주인공은 수상자이고 문학회이다. 또 우린 모두 동인이다. 사무국장과 회장에 높낮이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맡은 일이 사무국장이고 부회장이고 회장이며 총무라는 생각으로 나는 동인회 임원을 대한다. 그러나 각 모임마다 전통이 있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따질 일은 아니다. 나는 품위있는 목소리로 정중하게 소개하는 유인종 선생님으로부터 소개 받는게 참으로 좋았다.

 

   유인종 사무국장

  회장 인사와 시상 순서가 끝나고 꽃다발을 받았다. 꽃다발 얘기는 앞에서 했으니 생략하고 김홍은 교수님께서 심사평을 했다. 나는 속으로 이런걸 보고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하는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내놓은 작품은 '이제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와 '젓가락 하나'이다. 이 작품을 내놓은 것은 중앙 문예지에 게재된 작품 중에서 고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사실은 등단 처음에 내 작품을 누가 중앙지에 실어주지도 않을 때 쓴 작품들이 나는 더 마음에 든다. 그러나 '꽃이 되고 싶다'나 '젓가락 하나'라는 작품도 그렇게 흠이 많은 작품은 아니다. 

 

  김교수께서는 '꽃'에 중점을 두어서 축 읽는 아이에 실린 작품까지 두루 평을했다. 작품에 비해서 과찬의 말씀을 많이 한 것 같다. 말미에 다른 사람을 위해서 소중함을 가져다 주는 기쁨의 꽃이 되는 존재 의미를 삼고 싶다는 말을 강조해서 이야기 했다. 작품에 내용 즉 작가가 지향하는 가치 있는 삶의 세계 같은 것에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 같다. 표현방법이라든지, 구성이라든지, 세상을 바라보는 수필가로서의 시선이나 관점이라든지, 수필문학의 문학성 제고를 위한 작품의 가치 같은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작품에 대한 심사평(김홍은 교수님)

 

 축사를 하러 나온 사람은 김효겸 부교육감이다. 부교육감께서 축사를 읽는 동안 나는 김천호교육감을 생각했다. 교육계에 윗 사람을 생각하는 성격이 아니면서도 그 순간 김교육감님이 많이 그리웠다. <축 읽는 아이> 출판기념회에 나와서 의례적인 축사가 아니라, 평소의 얘기까지 곁들여 아주 부드럽게 축사를 해 주었었다. 그 분이 특별히 나는 생각해 준 것도 아니고, 나에게 어떤 혜택을 베푼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이방주'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나의 작품집이 '축 읽는 아이'라는 것도 기억하는 유일한 교육감이었다. 그분을 따로 만나면 어뜻언뜻 내 작품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내 글을 그래도 몇 편이라도 읽고 기억에 담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중에 부교육감의 축사가 다 끝이 났다.

 

 

 김효겸 부교육감님

   다음에는 내륙문학의 김효동 시인이 축사를 하셨다. 나는 그 분의 거침없는 성격을 좋아한다. 그 거침없는 대화 중에 모든 진실이 다 들어있다. 그 분은 내 글을 읽고 충북의 수필 문학이 일상사에서 이제 지적이고 사색적인 수필, 문화를 생각하는 수필로 한 단계 올라섰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정말 축하한다는 말씀으로 나의 작품을 칭찬했다. 나에 대하여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대부분 축사에서 주인공의 개인적인 생활을 건드리면서 듣기 좋게 말하는데 그게 아니라 기분 좋았다. 농담 비슷하게 내일 14대 교육감 선거가 있는데 14회 수필문학상을 타는 걸 보니  15대 교육감이 될 수도 있겠다고 해서 하객들이 다 웃었다. 나는 웃지 않았다. 목구멍 저 아래 그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신념의 실타래가 미늘에 걸어 끌려 나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축사하시는  김효동 시인

   작품 낭독은 김정렬 수필가가 했다. '이제는 그의 꽃이 되고 싶다'를 낭독했다. 동화구연가이기도 한 그는 목소리가 참으로 좋다. 조금씩 동화 읽기의 어조가 나오기도 했지만, 읽기가 수월하지 않은 글인데 나름대로 훌륭하게 읽어냈다.

 

  내 차례가 돌아 왔다. 마지막 인사를 하면 식사 시간이다. 시계를 보니 그 때까지 한 오십 분쯤 걸린 것 같았다. 사람들이 모두 식사를 기다릴 것이다. 내 이야기는 그냥 형식적으로 하면 5분이면 된다. 그러나 나도 모인 분들 가운데 나를 잘 모르는 분들에게는 감동적인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그것도 좋은 작품을 쓰는 것 만큼 중요한 일이다. 내가 하고 싶은 인사보다 가족 소개를 하라고 하기에 가족 같은 친구들을 소개하겠다고 하고 나를 축하해 주러 오신 분들을 차례로 소개하기로 했다.

 

  나는 먼저 우리 연풍중학교를 소개했다. 우선 연풍중학교는 교사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만나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방법을 서로 익히는 큰 집이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우리 선생님들을 정말 사람 같은 아이들을 만나는 분들이라고 소개했다. 휴식 시간에 학생들이 교무실에 놀러오는 학교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싶었지만 시간도 많이 가고 다른 학교에서 교사를 하는 분들이 많이 와 있어서 생략했다.

  다음에 잉꼬부부모임을 소개 했다. 잉꼬부부모임이란 이름이 좀 느끼한 감이 있어 요즘 사람들이 들으면 닭살이 돋는다고 하겠지만 우리는 그 유치하기 짝이 없는 이름을 누구나 자랑하고 산다는 말로 대신했다.

  다음 좋은 사람들의 모임을 소개했다. 우리는 절대적으로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서로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충북수필 23집에 <아침 햇살 같은 고독>에 좋은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이 모임을 생각만 해도 나의 고독은 물거품처럼 가라앉는다.

  사람들은 내 여자 친구 두 명을 소개할 때 가장 재미있어 했다. 내 작품집에 수록된  '단발머리'의 주인공과 아내와 이름이 같은 친구인 송병숙을 소개하면서 더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본인들에게 누가 될까봐 참았다.

  가장 사랑하는 후배 두 여선생님을 소개했다. 나는 솔직하게 그 두 분이 젊고 아름답기에 사랑한다고 했다. 사실 그 중에 이유숙 선생님은 귀여운 심술이 있기는 하지만 정말 마음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또 우리 막내 딸애와  동갑인 이정희 선생님도 정말 이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 두 분은 나를 동료 교사로만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냥 '선생님'하고 부른다. 마지막으로 노가리를 얘기했다. 노가리는 대학 대 노가리 안주와 막걸리의 인연으로 만든 모임이고 이름이다. 그리고 내륙 동인들과 가족을 소개했다. SBS 스포츠에 근무하는 아들이 참석하지 못해서 많이 섭섭했지만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에 참석할 수가 없다는 말을 했다. 한국 대학신문에 근무하는 딸애가 마감 때문에 무리를 해서 눈에 병이 나서 그 이야기도 아주 재미있게 했다.

 

  사람들은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어 했다. 분위기도 약간 누그러져 화기애애하게 변했다.  그런데 아내의 친구들을 소개에서 빠뜨렸다.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소개할 말까지 다 생각하고 올라갔는데 그만 빠뜨린 것이다.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준비했는데 말이다.

  인사 말씀은 수상 소감을 그대로 말했다. 수필에 대한 나의 생각, 수필문학의 독자성에 대한 나의 생각 같은 것을 을 차례로 말했다. 특히 심사를 하는 자리에서 최초로 나의 이름을 떠올려준 위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연풍중학교 교직원

  충북수필 문학회원

 

 잉꼬부부와 백만사

 좋은 사람들의 모임

 내륙문학회

 아내의 친구들

 가장 오랜 친구 단발머리와 보송

 노가리 친구들

 우리 가족

 

  처음부터 끝까지 사진은 차은량 수필가가 찍었다. 딸아이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아직 보지 못했다. 우리학교 막내이면서 행사 때 사진 담당인 강호기 선생님이 부탁도 드리지 않았는데 카메라를 가져와서 사진을 찍었다. 모두 사진이 예쁘게 나왔다. 두 분에게 참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나는 식사를 하면서 모두에게 한 잔씩 술을 따랐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사람들은 한 분 두 분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이제 정말 글을 신중하게 써야겠다. 사람들은 이런 일을 치루면서 조금씩 조금씩 성장한다. 모임에 참석한 분들이 돌아가서도 전화 메시지를 주기도 하고, 이멜을 보내기도 하고 직접 전화를 하기도 했다. 인사 전화도 몇 분에게 드렸다. 주형식 장학사가 학교로 화분을 보냈다. 사람들이 내게 보내는 정이 고맙다. 나 자신을 돌아보면 사실은 이런 과분한 정을 받을 만하게 그 분들에게 베풀지 못했다. 나에게는 관대하고 남에게는 용서할 줄 모르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도 남들은 다 내게 대하여 관대하다.

 

  모든 분들에게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겠다. 내가 그들에게 베푼 것보다 그들로부터 받은 것이 정말 이렇게 많을 수가 없다. 이제는 내리막길, 다른 은혜를 베풀어준 많은 이들의 손을 잡아야 한다. 이제 내가 그들의 손을 잡고 세상으로 내려가야 한다.

 

  마냥 이런 대접만 받고 있다가는 정말 자신이 뭐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 것으로 착각할 것만 같다. 이제는 그의 꽃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모두 나의 꽃이라고 오만해질까 두렵다. 눈을 똑바로 뜨자. 착각하지 말자. 이튿날 문경의 운달산을 내려 오면서 아내가 한 말이 내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겸손하게 살아요. 말도 아끼고, 너무 잘난 체 하지 말고요."  아내의 그말 이 얼마나 힘들게 나온 충고의  말인지 나는 잘 안다. 그런 말을 애써 해주는 아내의 두께를 알 수 없는 정이 한없이 고맙다.

  그래 맞아. 잘난 체 하지 말자. 말을 아끼자.

(2007.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