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월곡의 문향

느림보 이방주 2005. 8. 14. 08:31

8월 5일 월곡회에 참석했다. 월곡회는 '월곡고전문학연구회'의 약칭이다. 한국교원대학교대학원 국어교육학과에서 최운식교수님으로부터 지도를 받은 석,박사들과 그 과정 이수자들로 된 모임이다. 이번 모임에 참석해 보니 금년에 막 입회한 신입회원의 회원번호가 194번이다. 실로 엄청난 모임이다.  나는 영원히 변치 않는 45번을 달고 있다.

 

석사과정에 이수 중에는 이 모임에 열심히 참여하지만, 학위를 받고 나서 박사과정 이수에 뜻이 없는 사람들은 약간 느슨해지거나 아예  참석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 회원들은 월곡회의 잔잔한 감동을 잊지 못하여 참석하게 된다. 우리들에게 월곡회는 학문의 고향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한 5,6십명 정도가 참석한 것 같다. 

 

박사과정에 입학하지 않았으면서도 끈질기게 참석하는 회원이 몇 있다. 서울의 박온화 선생님, 박호준 선생님 부부, 포항의 박창원 선생님, 등이 그런 분들이다. 박온화 선생님은 나와 같은 연배인데 벌써 3,4년 전에 어느 초등학교 교감이 되었다. 그런데도 월곡회의 귀엽고 소중한 꽃이다. 걸어 다니는 노래방이라 할 만큼 대중가요의 백과사전이다. 당연히 분위기를 주도할 수밖에 없다. 키는 나보다 작지만 우리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따뜻하고도 넉넉한 가슴을 가지고 있는 여자 중의 여자이다. 박창원 선생님은 포항의 변두리 한 시골의 사립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다. 나보다 몇 살 아래인데 성격상 학교를 자기학교로 생각하고 있으면서 학교가 탈이 날까봐 안달하는 교사 중의 교사이다. 교무부장을 맡고 있었는데 지금쯤  교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 분은 중학교 교감이라는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 보다 포항 문화의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포항에 숨어 있는 문화를 발굴하기 위해 하도 돌아다녀서 몸에 살이 붙을 날이 없다.

 

그들에 비하면 나는 아무런 내세울 게 없다. 내가 참석하면 회장이나 선생님께서 인사 소개할 때 참으로 난처할 것이다. 소개할 내용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다만 최운식 선생님께서는 보잘것없는 나를 대단한 수필가라고 추켜올리시고, 퀴퀴한 냄새가 날 정도로 옛날 얘기인 나의 석사 논문 '윤지경전 연구'에 대하여  아직도 이 논문을 넘어선 연구가 없다느니 하시면서 유별나게 과장하여 소개를 하신다. 선생님께서 나를 소개할 때가 가장 고통스러우실 것이라는 생각에 이제 그만 참석할까도 생각한 적이 많다. 그러나 박창원선생님이나, 박온화선생님, 박호준,  유혜련 선생님 부부를 만나기 위해서는 참석해야 한다. 또 내 글을 인정해 주는 눈치인 최명자 박사, 내가 좋아하는 시인 장인수 선생도 보고 싶기는 마찬가지이다.

 

모임은 대개 금요일 3시나 4시에 집합하여 바로 세미나에 들어간다. 1부에서는 그 해 박사학위나 석사학위를 받는 분들의 논문 발표를 한다. 박사는 한 두 분이지만 석사는 많을 때는 열 두셋까지 될 때도 있다. 참으로 진지하다. 이미 인준을 받은 논문이 여기 와서 공연히 두들겨 맞는 경우도 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웃기는 일이 아닌가? 인준을 받아 학위를 받고 인쇄되어 나온 논문을 두고, 과정에 있는 이나 겨우 석사학위를 가진 이들에게 두들겨 맞아야 된다는 것이 말이다. 그만큼 월곡회는 학문과 연구에 관하여 열린 모임이다.

 

2부에서는 석사과정에 막 들어온 회원들의 논문 구상 발표, 그 보다 한 학기 위에 있는 회원의 논문 계획 발표, 또 그 보다 한 학기 위 회원의 논문 중간과정 발표로 이어진다. 모두 긴장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 모임에서 논문 구상 발표자들이나 다른 발표자들이 얼마나 발갛게 달구어 벼리어지는가는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가 거친 과정도 그랬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월곡회 회원에게서는 서툰 논문이 나올 수 없다.

 

나는 이 모임을 통해서 얻은 것이 참으로 많다. 우선 선생님께서 그토록 자랑하시는 윤지경전에 관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이 그것이고, 인터넷 교과서인 '고등학교 한국어'의 수필 부문을 집필하게 된 것도 선생님의 추천이고, 종문화사에서 추진하고 있는 '꼭 제대로 읽어야할 우리 고전'시리이즈의 집필에 참여하여 우선 윤지경전을 고쳐 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것도 선생님의 추천 덕택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이 모임에 오면 스승을 존경하고 선배를 대하는 법, 제자를 사랑하고 후배를 아끼는 법을 배운다는 사실이다. 또 학문하는 동료끼리 동지애, 학문하는 자세, 사람사는 도리를 묻혀올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사람이 이렇게까지 향기로울 수 있음을 깨닫고, 그 향기가 밴 몸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거기서 얻은 논문을 내려 놓으면, 손끝과 옷깃에서 문향이 솔솔 피어나는 듯해서 월곡회의 반기를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대개 보충학습 기간이어서 참석하기가 참 어렵다. 그런데 이번에 쉽게 참석을 결정할 수 있었던 것은 청주에서 가까운 쌍곡에서 모임을 가졌기 때문이다. 모임 장소인 예당은 떡바위에서  군자산 쪽으로 한참 내려가  칠보산 아래에 있다. 나는 집에서 궁싯거리다가 늦게 출발했다. 솔직히 말하면 논문 구상이나 계획을 발표하는 사람에게 선배로써 한 마디 하도록 선생님께서 채근하시는 것이 두려워서였다. 덕분에 발표 논문을 한 편도 얻지 못했다. 이런 태도가 결국 이렇게 사고를 녹슬게 하는 것이겠지만------ .

 

농협 물류센터에서 청주의 명산 대추술을 좀 사가지고 갔다. 대개 모든 발표가 끝나면 12시 쯤 되는데,  이 날은 발표자가 적었는지 9시부터 3부 행사를 하고 있었다. 모든 세미나를 마치고 여흥으로 우정을 다지는 시간이다. 모든 광고나 모임 운영에 관한 협의가 끝나고, 내가 도착하자마자 건배를 할 차례였던 모양이다. 회장인 천안대학교 김기창 교수께서 나더러 건배 제의를 하라고 했다. 나는 칠보산, 군자산, 쌍곡의 전설, 등을 얘기하고 건배를 제의 했다. 박온화선생님이 사회를 보면서 어린 아이 같은 게임을 하였다.  나는 박창원 선생님의 사모님과 파트너가 되었다.  이런 행사가 제일 쑥스럽다. 재미있게 해 드리지 못해서 파트너가 된 사모님에게 미안했다. 박선생님은 선생님 사모님과 한 파트가 되어 매우 즐겁게 따라 하고 있었다.

 

4부는 마당의 평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추술이 많이 남아 있었다. 이 술맛에 익숙하지 않은 이들 덕분에 우리가 마실 양이 충분히 남아 있었다.  선생님과 월곡회의 옛 동지들이 한자리에 앉아서 맑은 공기를 안주 삼아 물소리를 풍악삼아 새벽까지 술을 마셨다. 괴산으로 돌아오는 길에 몇 번이나 깜빡 깜빡 비틀거렸는지 모른다. 긴장 탓인지 집에 도착하니 술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허전하다. 가장 중요한 걸 잊었다. 월곡회에 참석하고 돌아오면 며칠간 서재에 묻혀서 읽을 수 있는 논문을 얻어 왔는데 이번에는 늦게 가는 바람에 한편도 가져오지 못했다.  나도 나이를 먹었나 보다. 그들의 정에만 취했던 모양이다. 옷자락마다  은은한 향기만 물씬물씬 피어 올랐다.

(2005. 8. 6)



건배 제의 "이상은 높게, 가슴은 뜨겁게, 사랑은 깊게"
 
 

대추술과 함께 새벽을 맞으며(4부), 왼쪽부터 장인수 시인, 변우복박사,

월곡의 영원한 스승 의재 최운식 박사님,  종문화사 임용호사장, 회장 김기창교수, 박온화교감(안경만 보임), 나, 포항문화의 지킴이 박창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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