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원초적 행복(맛)

젓가락 하나

느림보 이방주 2007. 5. 31. 07:34
  

양식집에 갈 때마다 난처한 일이 있다. 밥 한 번 먹는데 사용하는 그 많은 도구들의 쓰임새를 갈 때마다 혼동하기 때문이다. 쓰임새뿐만 아니라 왼손으로 잡아야 할지 오른손으로 잡아야 할지 몰라 당황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서 포크와 나이프를 오른손 왼손으로 번갈아 쥐면서 부산하고 어색하게 식사를 마친다. 이제는 아예 오른손에 나이프를 잡고 죽 썰어 놓은 다음에 또 오른손으로 쿡쿡 찍어 입에 올리는 나만의 방법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예법에 맞는 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다.


이에 비하면 우리의 한식은 숟가락과 젓가락만 있으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 때로는 젓가락만 있어도 얼마든지 훌륭하게 식사를 마칠 수 있다. 학창 시절의 도시락에는 아예 젓가락만 넣어 가지고 다녔었다. 젓가락 하나만 있으면 밥이나 반찬을 집어 먹는 일뿐만 아니라, 생선 가시를 바르는 일, 커다란 배추김치를 찢어 먹는 일도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과일을 먹거나 과자를 먹거나 젓가락만 있으면 된다. 심지어 국도 먼저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저 먹고 국물을 후루룩 마시면 된다. 이처럼 우리의 젓가락은 식사 도구로서 만능이다.


젓가락은 두짝이 하나가 되어 협력해야 임무 수행을 온전하게 할 수 있다. 젓가락에게서 백짓장도 맞들면 나은 협력의 미덕을 배운다. 그러나 사람은 둘인데 젓가락이 하나뿐일 때도 다정하게 한 짝씩 나누어 가지고 찍어 올리면 된다. 혼자서도 이루어낼 수 있다는 독립의 의지이다. 둘이서 젓가락의 가운데를 쥐고 양쪽으로 번갈아 먹는 모습은 더 다정해 보인다. 젓가락에는 입을 대지 않고 음식만 받아먹는다면 수백 명이 젓가락 하나로 얼마든지 위생적으로 해결할 수도 있다. 젓가락은 나누어 먹고자 하는 마음만 있으면 자연스럽게 나누어 먹을 수 있는 도구이다. 젓가락은 우리 민족의 본성인 나눔의 인정에서 나온 나눔의 문화이다. 나눔으로써 공동체가 된다는 역설의 논리를 실현한 정신문화의 산물이다.


“까짓 거 젓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될 걸”이라는 말이 있다. 잔치에 초대 받지 못한 사람이 섭섭함을 토로하는 말이다. 잔치를 준비하는 사람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초대하지 못한 아쉬움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 말은 크게 격식을 갖추어 대접하지 않아도 되지만 함께 있으면 좋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누가 하는 말이든 나눔의 인정을 놓친 아쉬움을 드러내는 말이다. 나는 직장에서 맡은 보직의 특성 때문에 ‘젓가락 하나’가 된 적이 많다. 직장 내의 업무에 따른 회식 자리에 젓가락 하나가 되어 날이면 날마다 불려 다녔다. 피곤하기는 했지만 직장 내의 부서별 업무를 조율하여 매끄럽게 추진되도록 하는 윤활유 역할이라는 좋은 의미를 갖는 일이었다. 젓가락 하나는 음식만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라, 업무도 나누어 맡고, 그럼으로써 정을 나누는 뜻 깊은 일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젓가락 하나가 이루어내는 나눔의 인정은 이 사회의 조율사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젓가락은 내 것을 덜어 남에게 줄 때도 쓰고, 남의 것을 덜어 내게 가져 올 때도 쓴다. 젓가락으로 하나씩 들어 올려 먹다가도 정이 가면 얼마든지 남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래도 거부감은 없다. 우리 민족이 젓가락을 사용하는 식생활을 시작한 것은 이미 내 것을 덜어 남에게 나누어 줄 준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또 남의 것을 덜어 함께 먹을 준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먹는 것에 관한 한 내 것이 네 것이고 네 것이 내 것이다. 젓가락으로 식생활을 시작하는 순간 공동체적 삶을 시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럿이 식사하는 자리에는 한두 사람쯤 더 온다 하더라도 걱정이 없다. 젓가락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 것이다. 덤으로 온 사람이 미안할 것도 맞이하는 사람이 부담될 것도 없다.


양식으로 식사할 때 포크로 찍어 올리는 동작과 한식으로 식사할 때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동작을 가만히 대조해 보면 예사롭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네 발이 달린 포크는 그 날카로운 부분을 밖으로 하여 ‘쿡’ 찍어 위로 쳐들었다가 거꾸로 돌려 입으로 가져간다. 찍는 동작이 다분히 도전적이고 잔인하다. 음식물을 찍는 순간 살생의 마음이 꿈틀거린다. 입으로 가져 오는 동작은 남의 것을 내게로 당겨오는 모습이다. 당겨오는 순간 엷은 도심(盜心)이 발동한다. 포크로 찍은 음식을 남의 입에 넣어 주는 동작을 생각해 보라. 아마도 상대가 기겁을 할 것이다. 공격의 도구이기 때문이다. 먹는 동작 자체도 섬세하거나 별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더구나 포크를 크게 확대하여 상상해 보면 끔찍하기 짝이 없다. 포크는 도전과 탈취 문화의 산물이다.


반면에 젓가락으로 집어 올리는 동작은 매우 섬세하다. 위로 쳐드는 자세가 아니라 다소곳이 아래로 돌려 입으로 가져간다. 겸손하고 은근하며 양보의 동작이다. 언제든지 상대의 입에 넣어 줄 수 있는 자세이다. 일단 집어 올린 음식은 상대의 입으로 가져가거나 내 입으로 가져오거나 어떤 동작이라도 어색할 것이 없다. 또 젓가락으로 도토리묵이나 두부를 들어올리는 동작을 상상해보라. 음식을 금지옥엽처럼  애지중지하는 마음이 아니면 입까지 가져갈 수조차 없다. 집어 나르는 순간, 겸양과 경애의 마음이 일어난다. 묵과 같이 부드러운 음식이든, 고기 같이 질긴 음식이든, 콩자반 같이 작은 음식이든, 빵이나 고구마 같이 큰 것이든, 그에 맞추어 손가락이 힘을 조절한다. 섬세하고 세련된 기술이 필요하다. 다음에는 젓가락을 확대하여 그 모양을 상상해 보라. 땅에 쿡 박아 세워 놓고 등을 기대어 먼 하늘을 바라보고 싶을 것이다. 젓가락은 안정과 평온의 심성을 가꾸어 온 민족 문화의 숨어 있는 꽃송이다. 이렇게 젓가락은 나눔의 인정에서 나온 품격 높은 문화의 산물이다.

 

시대와 문화가 변화하여 양식으로 식생활을 바꾸는 집안이 많아진 것 같다. 아침에는 빵을 손으로 뜯어 먹고 우유 한잔 마시고 출근했다가, 저녁에는 레스토랑에서 고기를 썰어 포크로 찍어 먹는 생활이 일상화 되고 있다. 이러한 식생활 습관 때문에 젓가락을 쓰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심지어 밥이나 김치를 먹는 것도 포크가 편하다는 아이들도 있다. 무엇을 먹든 음식이란 생활의 활력소만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식생활의 변화로 인하여 우리의 나눔의 문화, 나눔의 인정이 점점 퇴색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2007. 5. 30.)

문예비전 2007. 9,10 월호(통권 48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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