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에필로오그 (고향의 맛)
돌아오는 날 우리는 동강을 지나오기로 했다. 영춘에서 영월 하동면의 맛밭을 거쳐 옥동리 김삿갓 계곡 입구를 거쳐 녹전, 신동읍의 아리랑 학교, 남면의 민둥산 입구, 동면의 몰운대, 소금강, 화암약수, 화암동굴, 석공예단지를 들러 정선에서 하루를 묵은 다음, 아침에 북평면의 능선에서 바로 떨어지는 기이한 백석폭포, 노추산에서 발원한 양수인 송천과 임계면의 백봉령 등의 태백 준령에서 발원한 음수인 골지천이 어우러지는 아우라지, 오장산의 물을 모아 내던지는 듯한 200m의 오장 폭포의 장관과 주변의 경관을 본 다음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정선 오일장에서 주로 먹자거리를 돌면서 정선에 면면이 끊이지 않는 음식문화를 하나하나 접하며 우리 살아온 슬기에 공감하였다. 동강을 지나 신동읍으로 들어서 처음의 가던 길 녹전중학교 앞에서 갈 때처럼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이로써 나의 애마 무소는 정선에 한 바퀴 원을 그린 것이다.
동강을 지나며 산과 물의 아름다움에 감탄하였지마는, 정선의 물은 그렇게 맑은 것은 아니라는 아쉬움을 남겼다. 석회암 지대에서 흘러내리는 물이라 그런지 물이 더럽지는 않으나 흐려서 강바닥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절벽과 폭포, 합수되는 곳이 많고 거기마다 그야말로 절경을 이루었다. 그 중에서 아우라지는 양과 음의 어우러짐으로 이해하고 있어서 그 의미가 깊다. 결국 자연이란 양과 음의 어우러짐이라는 설렘과 짜릿함으로 생성의 발자국을 남기는 것이 아닌가? 인간도 자연의 법칙을 넘어설 수는 없는 법, 아우라지에서 어우러지는 두 물줄기의 징검다리를 열일곱 아이들처럼 뛰어 건너면 흐릿한 안개 속에서 김유정의‘동백꽃’의 결말 부분을 읽으면 느낄 수 있을 것 같은 향기 없는 성애(性愛)의 짜릿한 향이 감도는 듯했다. 이 골 저 골에서 뗏목을 타고 어우러져 만나면서 정선 사람들은 자연과 하나가 되고 이웃과 하나가 되고 자신을 산과 물과 하나로 생각하는 문화를 심고 가꾸어 꽃피워 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정선 사람들의 얼굴에는 산이 있고 물이 있고 그윽한 삶의 흔적이 담겨 있는지도 모른다.
녹전에서 하동으로 내려오면서 1주일 전에 하루를 묵었던 김삿갓 계곡의 노루목이 또 그리웠다. 방랑시인인 김병연이 무덤이 있어서 김삿갓 계곡이라는 어색한 이름이 붙었지만 내게는 그냥 노루목이다. 노루목에 가면 옛날 내가 가르친 종칠이 아버지의 가게가 있다. 포실포실한 고랭지 감자를 넣고 아주 맵게 끓인 오리 전골이 일품이다. 노루목에서 고개 하나를 넘으면 충북이며 의풍이다. 용소에 차를 세우고 산그늘이 내려온 물가의 반석에 누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30분 정도 죽은 것처럼 잠들었다. 600km 운전의 피로가 완전히 가시는 것 같다. 초임지인 이 의풍의 하늘 밑, 의풍의 산그늘, 의풍의 물은 내 심신을 안양(安養)에 들게 하는 것만 같다.
친구는 장연 느릅재에서 찰옥수수 한 자루씩 사주었다. 느릅재를 넘으면 무심천이 보일 것 같이 다정하다. 하루만 떠나 있어도 내 살던 울타리는 그리운 것인가 보다.
괴산에서 올갱이국으로 저녁을 먹었다. 차부올갱이국집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내 입맛에 맞고 내가 잘 찾아가는 집이다. 집은 허름하지만 국 맛은 그 허름한 것만큼 깊다. 문경에서 태조 왕건을 촬영할 때 촬영진이나 배우들이 여길 많이 찾아온 모양이다. 벽에 그들의 흔적이 재미있다. 된장은 역시 고향의 것이 제 입맛에 맞는 것인가 보다. 내 집도 아니면서 그 맛이 정겹다. 장연의 대학찰옥수수나 괴산의 올갱이국 맛을 보면 역시 신토불이란 말은 피할 수 없는 진리이다.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청주의 들머리에서 그동안의 운전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심신이 푸근해짐을 느꼈다. 청주는 제 사람이 나갔다 돌아와도 호들갑떨며 반가워 할 줄 모른다. 신었던 버선을 벗어들고 뛰어와 반기지도 않는다. 그러나 벌써 눈언저리 이슬이 맺혀 빙그레 웃으시는 어머니의 가슴 깊은 반가움이 아주 깊은 기억 속에서 그동안 굳었던 온 몸을 나른하게 풀어주는 듯하다. 그게 내 고향 청주다.
(2004.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