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봉산 붕어찜
오늘 같이 눈이 내리고 추운 날이면 대청호 붕어찜이 그리워진다. 고춧가루로 붉게 화장한 월척들이 냄비 안에서 눈을 감고 고요히 명상에 잠겨 있는 모습이 눈에 아른거려 견딜 수 없다. 어제부터 내리는 눈은 오늘도 그치지 않는다. 아파트 마당이 온통 빙판이다. 그래도 우리는 출발했다. 출발에 앞서 눈길은 걱정하면서도 그만두는 게 어떠냐고 딴죽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는 이름 그대로 ‘백만사’(백두산에서 만난 사람들)가 아닌가? 백두산 천지를 종주한 패기로 붕어찜을 향한 빙판길 삼십 리에 미끄럼타기를 시작했다. 아내들은 소녀같이 간드러지는 웃음으로 자신의 사내들에게 신뢰를 보낸다.
함께 가는 사람 가운데 누군가 조화로운 만남은 조화로운 행복을 가져온다고 의미 깊은 말을 했다. 다섯 쌍의 부부로 이루어진 우리 ‘백만사’는 조화로운 만남의 본보기이다. 구수한 진국을 내는 시래기 같은 이도 있고, 시원한 맛을 내는 무 같은 이도 있다. 누구는 조용히 모임의 방향을 챙겨가는 양념장이 되기도 하고, 좀 시끄럽기는 하지만 즐겁고 행복한 분위기를 사위지 않게 인도하는 안내역도 있다. 무뚝뚝하지만 가끔 헛소리로 ‘반짝’ 별을 보여주는 굼벵이도 있다. 또 아내들은 하나 같이 맛깔스러운 양념이다. 예쁨 없는 사내들의 허튼 소리에도 감동해 줄 줄 알고, 깔깔 웃어 단맛을 낼 줄도 안다. 사내들의 얼굴에 숨어 있는 행복이나 우울을 우려내서 묵은장 같이 고고한 분위기로 이끌어 갈 줄도 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같이 결과 올이 되어 한올한올 조화의 꽃자리를 엮어 간다. 마치 붕어찜의 재료들이 간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어 그윽한 행복의 맛이 되듯이 조화로운 행복을 창조한다.
현관에 들어서자 따뜻한 방안 공기가 구수한 냄새를 안경에 ‘확’ 끼얹는다. 흐려진 안경을 벗었다. 눈 쌓인 산과 간간이 눈발이 흩날리는 호수를 바라볼 수 있는 창가에서 붕어찜이 바글바글 끓어난다. 어느 숲 속의 비밀한 향연처럼 냄새가 은은하다. 몽롱한 환상에 잠긴다. 형언할 수 없는 냄새 때문에 입가에 흐르는 침을 닦으며 재킷을 벗었다. 자리에 앉자 창밖은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었다. 하얗게 내려앉은 하늘에 까만 나비가 가득하다. 하얀 드레스를 입은 작은 선녀들이 춤을 추며 내려오는 듯하다.
붕어찜 맛을 제대로 보려면 찬바람이 나야 한다. 오늘처럼 샘봉산에 눈이 쌓이고 구룡산 골짜기 사이사이로 굽이굽이 도는 길에도 언뜻언뜻 얼음이 박혀야 한다. 대청호가 번쩍번쩍 얼어붙어야 한다. 얼음을 깨고 건진 붕어를 샘봉산 아래 고랭지에서 기른 무시래기와 토막낸 무를 밑에 깔고, 그 마을에서 농사지은 고추, 파, 마늘로 양념을 해야 한다. 그래야 제 맛이 난다. 대청호 붕어는 제가 자란 물가의 채소와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날씨, 양념, 식재료의 생태, 음식 솜씨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거기다가 함께 먹는 사람들까지 마음이 맞으면 비단에 꽃을 얹은 격이 된다.
붕어찜은 알맞게 졸여졌다. 깔끔하고 상냥한 아주머니가 곁들일 반찬을 내왔다. 소박하다. 무장아찌는 묵은장에서 숙성시켜 채 썰어 기름에 볶았는지 윤기가 자르르 흐르고, 깻잎장아찌에서도 묵은장의 가슴 넓은 숙모님 같은 향이 솔솔 풍겼다. 지고추는 노랗게 삭아 빛깔만으로도 상큼한 맛이 혀에 감겨 침이 돈다. 동치미를 한 숟가락 떠보니 매콤 달콤하고 서늘한 기운에 가슴까지 감전되는 듯하다. 문득 어린 시절 김치광에서 짚방석의 눈을 털고 꺼내 먹던 김치주저리가 그리워진다. 자연 속에서 비 맞고 눈 맞으며 숙성한 자연의 맛 그대로다. 먹거리는 이렇게 제 고장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영양을 넘어 보약이 된다. 예부터 그래서 먹는 것과 약재는 근원이 같다고 했을 것이다.
어느 아내인가 국자를 들고 나눔 접시에 조화로운 맛을 나누어 돌렸다. 알맞게 졸아 잘 버무려진 조화는 광채가 난다. 노란 알이 툭툭 불거진다. 말린 무청이 국물에 퉁퉁 불어 온갖 양념을 뒤집어썼다. 널찍널찍하게 썰어 바닥에 깔아 놓은 무 조각은 양념 좋은 육수가 배어 붉은 윤기가 자르르 흐른다. 냉동고에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육질은 깐작깐작하여 혀를 매료시킨다. 육수의 정체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알려고 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당신”에 “멋져”로 화답하는 매끄러운 외침과 함께 소주를 한 잔씩 입에 털어 넣었다. 조심스럽게 가시를 발라낸 맛살 한 점을 입안에 넣어본다. 얼얼하지만 달다. 옛 어른들이 ‘달다’고 한 맛이 바로 이런 것인가? 다시 입안에 소주를 한 잔 부어 본다. 입안이 깔끔해진다. 동치미 한 숟가락을 마셔 본다. 얼얼했던 입안이 개운하다. 사방이 조용하다. 적막에 소름이 돋는다. 아주머니가 주방에서 우리를 바라본다. 입가에 눈시울에 엷은 미소가 묻었다.
한 냄비의 붕어찜은 조화가 이룬 환상의 맛이다. 산전수전 다 겪고 원숙미로 단장하던 중년의 여인 같은 대청호 심연의 붕어가 알맞은 두께의 무 조각, 여리지도 쇠지도 않은 무청, 잘 익은 양념장, 샘봉산에서 솟구치는 자연수 등 비밀스러운 재료들에다가 안개 묻은 대청호 바람이 불어주는 달 안마을의 월리사 풍경소리까지 얼려서 조화로 이루어낸 바로 그 맛이다. 붕어찜은 우리 지방의 백곡저수지나 초평 저수지 주변에서 시작되어 보양과 건강을 추스르는 음식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근원지의 대부분 식당에 외지 손님들이 몰려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자 외지에서 붕어가 들어온다고 한다. 당연히 냉동 보관될 것이다. 그러나 이곳 붕어는 수조에서 힘차게 꼬리를 치며 노닌다. 맛을 넘어 생활의 예술이다.
한동안의 정적이 지나자 잊었던 아내가 보인다. 친구도 보인다. 그제야 냄비에 아직 남아서 임을 기다리는 어두일미를 서로 권하는 예의를 차린다. 부끄럽지만, 정말로 고개를 들 수 없지만 잊었던 인간의 허울을 허겁지겁 찾아 걸쳤다. 인간의 예의나 염치는 욕망의 심줄인 혀가 싫증을 내야 되돌아온다. 환상의 맛이 잠시 인간을 이성까지 잃은 금수로 만들었다.
소주가 몇 잔 더 들어가서 얼굴이 불콰해지자 우리들의 대화는 조금씩 울타리를 넘는다. 울타리 없는 대화는 우정을 더욱 도탑게 한다. 이렇게 우리 민족의 음식은 갖은 재료들이 서로의 맛깔을 주고받으며 환상적인 맛의 조화를 이루어 낸다. 나누어 함께 먹는 정에서 그 조화의 미는 한 겹 두께를 더한다. 맛의 조화는 조화로운 만남에서 오고, 조화로운 만남은 삶의 행복을 가져온다. 그래서 맛의 조화는 육신의 영양이 되고, 만남의 조화는 감성의 불김이 된다.
그침도 없이 내리는 함박눈은 해지는 줄을 모르고, 울타리를 잃은 우리네 대화는 행복조차 가늠할 수도 기억할 수도 없을 만큼 깊어만 간다.
(2007. 12. 30.)
사진은 함께 간 이효정님의 블로그(http://blog.daum.net/leehyojong)에서 빌려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