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곤드레밥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시장 먹자골목을 배회하였다. 시장은 상인들이 전을 벌이느라 분주하게 오간다. 어느 깔끔하게 생긴 작은 음식점 앞에서 차림표를 기웃거리니 곤드레밥이라는 것이 있었다. 정선 음식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우리는 생소한 이 음식을 먹어 보기로 했다.
곤드레밥은 비빔밥 종류라 한다. 아침에는 그저 흔히 먹는 해장국 같은 걸 찾던 우리는 약간 실망했다. 그러나 주인이 곤드레밥을 자꾸 권하고 아침부터 도로 나오기가 미안해서 그냥 먹어 보기로 했다.
물을 가지고 들어온 아들인 듯 건장한 청년이 곤드레에 대해 설명해 준다. 곤드레 나물은 해발 700m 이상의 고지에서만 자라는데 엉겅퀴의 일종이며, 정선, 평창, 영월에서만 난다고 한다. 옛날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쌀의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서 먹었지만, 최근에는 외지의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고 한다. 물론 성인병에 좋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우리는 별 기대를 하지 않으며 묵나물을 넣고 비벼 먹는 비빔밥 정도로 생각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밥을 새로 짓는다고 한다. 한참 만에 상을 놓는다. 상에는 양념간장, 호박나물, 열무김치, 된장찌개, 오징어젓갈 등이고, 나박김치는 사람 수대로 네 그릇이다. 국물대신 나박김치를 먹으라는 모양이다. 양념간장은 우리 고장에서 별미인 콩나물밥을 먹을 때처럼 마늘다짐, 고춧가루, 실파, 깨소금을 섞고 참기름을 넣은 듯 고소한 냄새가 풍겼다. 된장찌개는 흔히 먹는 것과 좀 다르게 표고버섯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가서 짜고 걸쭉하였다.
밥이 들어왔다. 밥은 솥 째 들고 들어와서 그 자리에서 널찍한 그릇에 퍼주었다. 밥 위에 곤드레 나물을 얹어 지었는가 보다. 그런데 한 눈에 봐도 실패작이었다. 비빔밥은 고슬고슬해야 하는데 지룩하게 지었다. 실망한 나는 이 밥이 실패작이 아니냐니까 솔직하게 시인한다. 일찍 손님을 예상하지 못해서 서두르다가 그렇게 되었단다. 그 솔직함이 고마웠다. 그러나 금방 지은 정성에 감사하며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청년은 옆에서 드라마 촬영 감독이 시나리오를 들고 지시하듯 먹는 순서를 하나하나 일러준다. 우선 양념간장을 조금 놓고 비벼서 한 숟가락 입에 넣어 봤다. 고지대의 산나물이 대개 그렇듯이 크고 소담하면서도 연하고 부드럽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었다. 다래순묵나물보다 연하면서도 취나물 향기보다 고상하고, 고사리보다도 고소하고, 참나물보다 그윽한 맛이었다. 하얀 밥에 까맣게 섞인 곤드레 나물의 빛깔도 보기 좋았다. 곤드레나물에는 약간 간이 배어 있고 나물 맛이 아닌 고소함이 있다. 청년은 곤드레 나물을 미리 약간 간을 하고 참기름에 무쳐서 밥이 끓을 때 밥 위에 얹는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잘못해서 밥이 지룩하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밥 한 대접을 간장에 비벼 먹기도 하고, 된장찌개에 비벼 먹기도 하였다. 곤드레밥을 한 숟가락 입에 넣고 시원하고 새콤한 나박김치로 마무리를 하니, 아침 식사이지만 기름진 해장국보다 개운하였다.
곤드레밥도 역시 옛날 보릿고개를 힘겹게 넘었던 두메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었던 음식문화이다. 그러면서도 단백질, 칼슘, 비타민 등 고급음식에서 갖추지 못한 영양을 고루 갖추었다고 하니 자연의 배려에 감사할 뿐이다.
자연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하나하나의 개체로서 존재하기도 하겠지만, 따지고 보면 하나의 커다란 생명체로 존재한다고 보아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자연을 하나의 유기체로 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자연이라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에서 곤드레라는 일부가 사라진다면, 콩팥이 상하면 인명이 위태롭듯이 자연도 쓰러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문화도 마찬가지이다. 정선에 전래되는 수없는 문화 중에 어느 하나가 사라진다든지 변질된다면 당장은 큰 불편이 없겠지만, 그것은 정선 문화라는 커다란 하나의 생명체에서 일부 장기가 망가져 생명을 위협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거기에 생각이 미치자 오늘의 여행이 한국문화의 일부로서 소중한 정선 문화의 생명 유지를 위한 작은 디딤이라는 생각이 들어 돌아오는 길의 가슴이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