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문주란이 꽃을 피울 때

느림보 이방주 2001. 11. 10. 23:52
거실의 문주란이 매봉산 푸른 솔을 넘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방금 낚시에 걸린 고등어의 푸른 등빛처럼 싱싱하다.
진천에 근무할 때, 수학 여행 갔다오는 아이들로부터 씨앗 세 알을 선물 받았다. 아이들의 샘물 같은 마음을 읽지 못하고 책상 서랍에 넣어 두었었는데, 이듬해 봄에 봉투 속에서 뾰조로기 싹이 올랐다. 서둘러 집에 가져 왔더니, 아내가 업둥이를 다루듯이 고운 흙에 묻어 주었다. 그 녀석이 싹이 터서 가늘고 긴 잎을 고고하게 늘어뜨린 것이다.

문주란은 잎이 볼품 없이 두텁고 넓어서, 가늘고 여리면서도 꽃이 피면 은은한 향기를 품는 다른 난에 비해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하는 난이다. 그렇게 푸대접을 받는 것은 문주란은 꽃을 보기가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업둥이 녀석은 아내가 싹을 틔워 씨를 세운 것이라 그런지 사랑을 독차지한다. 아내는 이 귀여운 2년 생 문주란을 거실에 들여놓고 돌박이를 다루듯 애지중지한다.

그러나, 그 업둥이 녀석보다 더 소중한 문주란이 또 한 점 있다. 그건 15, 6년 전 단양에 살 때 이웃에게 얻은 것으로, 우리 집으로 분양되어 올 때 이미 어른이 다 되어 있었다. 잎이 널찍하고 푸들푸들한 기운이 넘쳐서 열 세평 우리 아파트에 가득 차고도 남았다. 좁은 베란다에 내놓고 물을 주면, 넓고 타원형으로 늘어진 잎에 볕이 내리쬐는 기세가 다른 화초들을 제압하고도 남았다. 나는 천성이 게을러서 화초에 그렇게 잔잔한 정을 주지 못하는 편이지만, 우리 아이들하고 또래가 될만한 이 문주란이 업둥이 녀석보다 더 애착이 간다. 또 이 녀석에게 애착이 가는 것은 게으른 내 탓으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번은 물을 너무 많이 주어서 뿌리의 일부가 썩어 들어간 때도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에 내 놓고 물을 흠뻑 뿌리면 아침 햇살에 그 너른 잎이 싱그러운 초록으로 빛난다. 게으르고 무식한 나는 그 싱그러움이 좋아서 번번이 물을 들이부었다. 그런데 그 싱싱하던 잎에 검은색 반점이 일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흙을 털어 내고 보니 무성한 뿌리가 썩어서 뭉턱뭉턱 손에 묻어났다. 뿌리를 자르고 다시 흙을 덮어 겨우 살렸다.

또, 게으른 중에도 그 녀석이 귀여워 쓸데없이 분갈이를 해주었는데, 배수가 잘되어야 한다는 어쭙잖은 지식으로 부엽토에 약간의 연탄재를 섞었다. 그런데, 어린 아이 손목 굵기만큼 굵은 대궁 한 귀퉁이에 물이 줄줄 흘렀다. '아차' 싶었다. 분을 털고 뿌리를 물로 씻은 다음 다시 깨끗한 흙을 섞어 분을 만들어 주었다. 기대도 하지 않았는데 기적처럼 살아났다. 한 동안 몸살을 앓듯 비들비들하더니, 그래도 여름 햇살을 짱짱하게 받고는 그 이들이들한 잎이 더욱 기세를 자랑했다.

지금 아파트에 살게 되었을 때, 해마다 갑작스러운 추위에도 실수 없이 얼리지 않았는데 매사가 느림보인 나의 천성은 어쩔 수 없었던지 두 번이나 얼렸다. 베란다 유리창을 열어 놓은 채로 밤을 지내게 한 것이다. 그 이들이들한 잎이 소금에 절여놓은 김장 배추처럼 축축 늘어졌다.

그래도 봄이 되면 잘도 살아났다. 모질게 살아나서 꽃대를 품은 청솔처럼 푸른 잎사귀들은 청상의 치맛자락을 쭉쭉 늘인 듯이 한스러운 모습이다. 끝마다 뾰족뾰족 날카롭고 잘 갈아 세운 칼날처럼 서슬이 퍼렇게 나의 게으름을 꾸짖는다.

그런데, 두 번 째 동사 직전까지 갔던 겨울을 지나, 그 해 여름 꽃이 핀 것이다. 옥수수 대궁에서 옥수수가 맺히듯이 튼실해진 잎자루를 어미 품으로 삼아 꽃대가 나오더니 순식간에 쭉 뻗어 올랐다. 그것도 잎자루마다 서너 군데서 꽃대가 올랐다. 꽃대 한 줄기에서 작고 귀여운 나리꽃 모양의 하얀 꽃 대여섯 송이가 한꺼번에 피어나 아이들 솜사탕처럼 한 송이를 이루었다. 그렇게 다섯 촉이 이루어졌다.

서슬이 퍼런 잎사귀에 비해서 그 품에서 피어난 꽃들은 여리고 가냘픈 모습이 나비처럼 청초하다. 나리꽃 모양의 가느다란 하얀 꽃잎이 금방이라도 포동포동 날아갈 듯하다. 노란 꽃술에서 은은한 향기가 여름날 산그늘에 어둠이 내리듯 조용하고 숨막히게 퍼져 나간다. 서슬이 퍼렇게 게으름을 꾸짖는 잎사귀보다 부처님의 미소처럼 잔잔한 향기의 은근한 시사가 자욱한 안개처럼 내 가슴에 더욱 아프게 잦아든다.

그렇게 어렵게 꽃을 피운 것을 보면, 이 녀석이 이제 정말로 나를 믿지 못하겠는 모양이다. 물을 제 때 주지도 않을뿐더러, 쓸데없이 분갈이를 한다, 거름을 준다하여 괴롭힐 뿐 아니라, 번번이 얼려서 동사 직전까지 이르게 하니 서둘러 씨앗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모양이다. 서두르지 않으면 제 핏줄을 게으른 주인 앞에서 말리고 말 것 같은 위기를 느낀 모양이다. 수난을 겪은 만큼 희고 청초하며 향이 짙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내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우리집 업둥이는 꽃을 피우지 못할 것만 같다. 저렇게 사랑을 받고 저만큼 자랐으니, 무슨 서두를 일이 있고 무슨 위기를 느끼겠는가?

문주란이 피었다. 그 향기가 나비처럼 희고 가냘픈 날개를 타고 어둠처럼 나의 나태를 꾸짖는다.
(2001.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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