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물밥(삶과 죽음)

출감 전야

느림보 이방주 2001. 12. 25. 20:16
산골에 어둠이 내린다. 어둠은 불빛 때문에 인식된다. 불빛이 불빛으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듯이, 어둠도 어둠으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꼴찌가 있어서 1등이 위대해 보이듯이 불빛으로 알려진다. 낮에는 나뭇가지만 앙상하던 이 건물 정원의 나목들이, 갑갑하게 치솟은 산등성이를 타고 스물 스물 어둠이 내려서자, 온몸에 전선을 감은 형극의 모습으로 빛난다. 이 마을에서 어둠은 그렇게 형극의 불빛으로
스스로를 드러낸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건물 앞 차도에는 차들이 줄을 잇고, 어린이들은 부모의 손을 잡고 행복한 뜀걸음으로 우리가 갇힌 울안을 유혹한다. 문을 열면 방충망이 밖을 차단한다. 이 겨울에 방충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담배 연기를 피워본다. 연기마저도 홀홀 날려 안으로 기어 들어온다. 뛰어 내리기는 너무 높다. 세상은 내게 손짓하고 울은 더욱 두터워지고……. 계단으로 뛰어 내려가 본다. 허연 합판이 가로막는다. "비상시에는 여기를 부수고 탈출하십시오." 커다란 해머가 매달려 있다. 벽을 부수고 탈출해야할 울안에 있는 우리는 정말 우리인가?

이 울안에서 지낸 몇 날을 된장찌개 없는 아침을 먹고, 식권 없이도 조미료 맛 짙은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며, 어느 회합에서보다 훌륭한 뷔페로 만찬을 받는다. 얼마든지 누릴 수 있는 차와 아이스크림과 과일이 준비되어 있다. 언제든지 목욕할 수 있고, 주어진 과제만 다 이행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잠잘 수 있고, 간단한 운동도 할 수 있다. 바깥 세계에 대한 그리움만 없다면, 바깥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만 없다면, 바깥의 모든 것에 대한 그리움만 없다면, 이 울안은 천국이다. 사색(思索)이 없는 사람들의 천국이다. 얼마든지 성공적으로 사육(飼育)당할 수 있으니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커다란 울타리 안에 갇힌 공동의 운명이 되어 있다. 아침이면 기계처럼 일어나고, 시간마다 기계처럼 식당에 모이고, 식사를 마치면 제각기 작은 우리인 방에 들어가 임무를 수행한다. 어쩌다 담배를 태우러 로비에라도 나와 서로 얼굴이 마주치면, 몸살난 할머니 얼굴로 찡그려 웃으면서 같은 운명의 서로를 확인한다.

어둠은 점점 더 넓게 검은 치마로 대지를 가리고 정원수들은 휘황한 문명의 불빛으로 문명을 피해 피난 온 사람들을 유혹한다. 건너 편 언덕에 요란한 굉음을 내며 거품처럼 얼음 가루를 품어대는 눈썰매장에는 불빛이 대낮처럼 밝고 아이들의 환호가 처절하다. 간교한 사람들이 만든 치졸한 빙폭이 오색 등불로 화려하게 치장했지만, 그것은 장마 뒤에 전봇대에 걸린 비닐 조각이나 라면 봉지처럼 너저분하다. 문명의 울타리 속에서 일상을 허우적대다가 자연으로 도피한 그들은 장막처럼 뛰어 넘을 수 없는 울타리를 깨닫지 못한다. 오히려 발가벗겨 놓은 문명이 더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연의 탈을 쓴 그 치졸한 문명 속에서 함성을 지른다.

그들은 커다란 착각의 울타리 속에서 그네들 나름대로의 '울'을 만들고 있다. 나는 불빛 찬란한 나목들의 형극 속에서 환호를 올리는 불쌍한 그들을 바라보면서 내가 서있는 이곳이 오히려 커다란 울타리의 바깥 세계임을 깨닫는다. 이 안에 있는 우리가 갇힌 것이 아니라, 바로 저들이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착각의 울타리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들이 불쌍하다.

조금 있으면 마지막 회의가 열릴 시간이다. 몇 시간이 되었든지 회의에서 합의점을 찾아야 한다. 그 합의점을 찾아야 이 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밖은 어둡고 안은 밝다. 밖이 정말로 어둠의 세계가 된 것이다. 안에서 유리창을 통해서 밖을 내다보면 어둠의 세계는 커다란 검은 휘장을 두른 것처럼 성을 이루고 있다. 반짝이는 전선을 감고 서 있는 형극의 정원수들은 마치 휘장에 원시인들이 그린 암각화처럼 보인다.

누군가 그 나목의 암각화 사이를 걸어온다. 그건 그림이 아니라 바로 유리창에 비친 실체의 영상이다. 치졸한 문명의 숲 속에서 자연인이 나타난 것이다.
"팀장님요, 이제 고마 회의실로 올라가입시다. 내일이면 출감 아입니까?"
"출감?"
"여기가 감옥 아입니까?
여기서 처음 만나 이야기 한 줄 나눌 수 없이 바쁘게 지내 왔으면서도, 우리는 어느 사이 우리가 되어 있었다. 말없이 주고받는 눈길 속에서, 울안의 답답함을 호소하는 눈길 속에서 서로를 공감하고, 고통을 이해하고, 서로 의지하고 참아온 우리가 되어 있었다.
"사실 저기가 감옥 아녜요? 저 치졸한 문명이……."
"아, 맞십니다. 맞아예. 저가 바로 감옥입니다. 우리는 이제 감옥으로 출감하는 겝니다."

이 울 안에서 어느새, 우리 스무 명은 이렇게 우리가 되어 있었다.
출감 전야, 나는 수인 번호 같은 파란 연구위원 명찰을 붙이고 회의실로 올라갔다. 네 시간 반이라는 길고 숨막히는 회의를 마치고 최종 보고서에 서명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되어 이 우리만의 울을 떠나 저마다의 울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쉬워 그렇게 고대해온 출감 전야를 하얗게 밝혔다.
깊은 악수를 나누면서…….
(200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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