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온이 더 떨어졌다. 어젯밤 성모 병원 영안실에서 돌아올 때보다 더 춥다. 효촌을 지날 때까지 그 친구 생각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몇 번이나 다른 운전자들의 손가락질을 받고 나서야 공군사관학교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심호흡을 했다. 남들 건너 신송리에서 뽀얗게 겨울 안개가 피어오른다. 겨울 하늘이 매섭게 푸르다.
이 몇 달 사이 세 친구가 죽었다. 위암을 신앙으로 이겨내고야 말겠노라던 채 선생 홍길군도 갔고, 스페인에서 유도 사범으로 이름이 났던 고등학교 때 연대장 윤 완근도 간암으로 구랍 30일 관속에 누워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미련한 나는 윤완근 빈소에서 친구들에게 인범 군의 투병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한 주가 못되어 그의 부음을 받았다. 전화 저쪽에서 부음을 전하던 친구 백 사장의 떨리던 목소리가 쟁쟁하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차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고은 삼거리에서 화당을 지나 동화사에서 도원학교 쪽으로 십여 리는 족히 가야 두모실이다. 동화사에서 좌회전하니 밤사이 자욱눈이 쌓였다. 길 양편에 늘어선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동쪽이 산으로 막혀 아침이 늦은가. 이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도 있다. 친구가 타고 올 차에 꽃가루를 뿌리듯이 하늘에서 먼지 같은 눈발이 날린다.
그 눈꽃 가루들이 작두산을 넘어오는 뒤늦은 햇빛에 반사되어 황홀하게 반짝인다. 차를 천천히 몰았다. 장례 행렬은 아직 도착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다시 못 올 자리를 그렇게 서둘러 떠날 까닭은 없는 일이지.
두모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국화꽃으로 장식한 '캐딜락'을 타고 올 친구를 기다렸다. 장례 행렬보다 앞서서 들어가기가 왠지 미안스러웠다. 한참 후 장 교수와 친구들이 함께 나타났다. 우리는 먼저 산으로 가기로 했다. 시멘트 포장길에 얄팍하게 내린 눈이 얼었다. 비탈길에 자신 있는 나는 앞서서 올라갔다. 몇 몇 동네 청년들이 나와서 불을 피우고 땅파는 작업을 돕고 있다.
차를 세우고 산에 올라가 보았다. 멀리 작두산 줄기가 커다란 한 마리 새가 되어 땅을 차고 하늘에 비상할 차비를 한다. 친구가 누울 자리는 가까이로부터 멀리까지 산줄기가 첩첩이 에워싸서 바람도 없이 햇볕만 따사롭다. 두모실을 싸안은 산줄기들은 겹겹이 바람을 막고 볕을 모아 이곳에 뿌리고, 그 기운이 한 쪽 수구에 모아져 골짜기를 타고 들을 건너 작두산 줄기를 타고 하늘로 비상한다.
캐딜락이 도착했다. 노란 국화로 장식한 검은 색 캐딜락이다. '謹弔'라고 쓴 검은 색 조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막내아우가 영정을 들고, 부인은 흰옷을 입고 어린 딸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캐딜락은 '캐딜락 장의차, ○○○-4444'라며 모여선 완벽한 고객들을 향하여 알뜰하게 광고를 한다.
지관이 운구를 명령했다. 우리 친구들 여덟이 한 번도 안아 주지 못했던 친구를 안고 마지막 길에 올랐다. 친구야, 우리 이제 만나면 소주만 퍼마시지 말고 가끔씩 안아 주기도 하자. 황토는 돌 하나 나무뿌리 하나 섞이지 않고 깨끗하다. 하늘은 아직도 매섭게 파랗고, 눈발은 계속 축복의 꽃가루를 뿌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관 줄을 잡고 하관을 도왔다.
대여섯 자 깊이지만 이제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세상과는 너무나 머나먼 세상으로 친구는 내려갔다. 이때 왜 그 친구의 빙그레 웃던 모습이 떠오르나. '잘 가게 이 사람아. 축하하네. 하늘이 저렇게 꽃가루를 뿌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 부탁이 있네. 우리 이담에 만나면 터놓고 이놈 저놈하며 이야기 좀 하세.' 일하는 사람이 부인의 흙삽을 받아 '취토여' 소리 지르며 관 위에 흙을 뿌리며 영결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세계로 갈라섰다. 세워 놓았던 삽 한 자루가 넘어졌다. '휙-' 회오리바람이 우리를 휘감고 지난다. 모여들었던 사람이 모두 흩어진다. 유족들은 너무나 큰 절망 탓인지 담담하다. 콧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람들 함께 온 친구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본다. 반짝반짝 은빛 꽃가루들이 빛에 반사되어 하늘에 가득하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좀 전에 하늘을 쳐다보던 친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소주를 마셨다. 시골 아주머니들이 끓인 술국이 순박하다. '이제 자주 모여야 한다. 이런 일이 있어야 만나게 돼서야 쓰겠는가. 야, 인제 저절로 자주 모이게 될걸 뭐.' 우리는 어느새 죽음이 우리 옆에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을 발견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저 사람은 알까? 눈물 섞어 맛나게 먹는 술국의 맛을….
죽음은 아주 심상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죽고, 우리는 쉽게 그의 죽음을 잊는다. 그러나, 그런 심상한 죽음이 바로 내 곁으로 오면 그보다 더한 공포의 대상은 없다. 부모의 죽음은 그냥 슬픔이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은 공포이다. 성큼 다가온 나의 죽음을 실감한다. 죽음의 공포를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죽음은 항상 내 발 밑에서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아니 죽음의 씨는 우리 몸 안 구석구석에서 싹을 틔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찾아올, 아니, 바로 요 아래에 있는 죽음은 꼭 두려워해야 할 존재인가? 공포의 대상이지만 죽은 후에 과연 그 공포를 감각할 수 있을까? 죽음은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솔 아파트에 살다가 백로 아파트로 옮기는 것보다 조금 더 큰 세계를 옮기는 것이다. 저렇게 오늘 친구의 죽음을 하늘이 축복하고 있지 않은가.
봉분이 완성되기 전에 산을 내려가자. 그 친구 묏봉을 보아서 좋을게 뭐람. 이미 우리들 세상이 아닌 곳에 가 있을걸. 온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어기고, 산을 넘어 험한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험한 산길이 끝나자 고속도로 너머에 6차선의 국도가 나타난다. 차들이 고속으로 달린다. 거기에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파란 하늘에 반짝이던 꽃가루 같던 눈발은 보이지 않았다.
(1999. 1. .)
이 몇 달 사이 세 친구가 죽었다. 위암을 신앙으로 이겨내고야 말겠노라던 채 선생 홍길군도 갔고, 스페인에서 유도 사범으로 이름이 났던 고등학교 때 연대장 윤 완근도 간암으로 구랍 30일 관속에 누워 비행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미련한 나는 윤완근 빈소에서 친구들에게 인범 군의 투병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한 주가 못되어 그의 부음을 받았다. 전화 저쪽에서 부음을 전하던 친구 백 사장의 떨리던 목소리가 쟁쟁하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차가 힘겨운 소리를 내며 출발한다. 고은 삼거리에서 화당을 지나 동화사에서 도원학교 쪽으로 십여 리는 족히 가야 두모실이다. 동화사에서 좌회전하니 밤사이 자욱눈이 쌓였다. 길 양편에 늘어선 마을은 아무도 살지 않는 것처럼 고요하다. 동쪽이 산으로 막혀 아침이 늦은가. 이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집도 있다. 친구가 타고 올 차에 꽃가루를 뿌리듯이 하늘에서 먼지 같은 눈발이 날린다.
그 눈꽃 가루들이 작두산을 넘어오는 뒤늦은 햇빛에 반사되어 황홀하게 반짝인다. 차를 천천히 몰았다. 장례 행렬은 아직 도착되지 않은 모양이다. 하기야 다시 못 올 자리를 그렇게 서둘러 떠날 까닭은 없는 일이지.
두모실 입구에 차를 세우고 국화꽃으로 장식한 '캐딜락'을 타고 올 친구를 기다렸다. 장례 행렬보다 앞서서 들어가기가 왠지 미안스러웠다. 한참 후 장 교수와 친구들이 함께 나타났다. 우리는 먼저 산으로 가기로 했다. 시멘트 포장길에 얄팍하게 내린 눈이 얼었다. 비탈길에 자신 있는 나는 앞서서 올라갔다. 몇 몇 동네 청년들이 나와서 불을 피우고 땅파는 작업을 돕고 있다.
차를 세우고 산에 올라가 보았다. 멀리 작두산 줄기가 커다란 한 마리 새가 되어 땅을 차고 하늘에 비상할 차비를 한다. 친구가 누울 자리는 가까이로부터 멀리까지 산줄기가 첩첩이 에워싸서 바람도 없이 햇볕만 따사롭다. 두모실을 싸안은 산줄기들은 겹겹이 바람을 막고 볕을 모아 이곳에 뿌리고, 그 기운이 한 쪽 수구에 모아져 골짜기를 타고 들을 건너 작두산 줄기를 타고 하늘로 비상한다.
캐딜락이 도착했다. 노란 국화로 장식한 검은 색 캐딜락이다. '謹弔'라고 쓴 검은 색 조기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막내아우가 영정을 들고, 부인은 흰옷을 입고 어린 딸들의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애처롭다. 캐딜락은 '캐딜락 장의차, ○○○-4444'라며 모여선 완벽한 고객들을 향하여 알뜰하게 광고를 한다.
지관이 운구를 명령했다. 우리 친구들 여덟이 한 번도 안아 주지 못했던 친구를 안고 마지막 길에 올랐다. 친구야, 우리 이제 만나면 소주만 퍼마시지 말고 가끔씩 안아 주기도 하자. 황토는 돌 하나 나무뿌리 하나 섞이지 않고 깨끗하다. 하늘은 아직도 매섭게 파랗고, 눈발은 계속 축복의 꽃가루를 뿌리고. 나는 마지막까지 관 줄을 잡고 하관을 도왔다.
대여섯 자 깊이지만 이제 우리가 이렇게 서 있는 세상과는 너무나 머나먼 세상으로 친구는 내려갔다. 이때 왜 그 친구의 빙그레 웃던 모습이 떠오르나. '잘 가게 이 사람아. 축하하네. 하늘이 저렇게 꽃가루를 뿌리고 있지 않은가. 하나 부탁이 있네. 우리 이담에 만나면 터놓고 이놈 저놈하며 이야기 좀 하세.' 일하는 사람이 부인의 흙삽을 받아 '취토여' 소리 지르며 관 위에 흙을 뿌리며 영결했다. 우리는 이제 다른 세계로 갈라섰다. 세워 놓았던 삽 한 자루가 넘어졌다. '휙-' 회오리바람이 우리를 휘감고 지난다. 모여들었던 사람이 모두 흩어진다. 유족들은 너무나 큰 절망 탓인지 담담하다. 콧물 한 방울이 뚝 떨어진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사람들 함께 온 친구들이 모두 하늘을 쳐다본다. 반짝반짝 은빛 꽃가루들이 빛에 반사되어 하늘에 가득하다.
우리는 산에서 내려왔다. 좀 전에 하늘을 쳐다보던 친구들이 모두 둘러앉아 소주를 마셨다. 시골 아주머니들이 끓인 술국이 순박하다. '이제 자주 모여야 한다. 이런 일이 있어야 만나게 돼서야 쓰겠는가. 야, 인제 저절로 자주 모이게 될걸 뭐.' 우리는 어느새 죽음이 우리 옆에 아주 가까이 와 있음을 발견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저 사람은 알까? 눈물 섞어 맛나게 먹는 술국의 맛을….
죽음은 아주 심상한 일이다. 우리 주변에서 사람들이 죽고, 우리는 쉽게 그의 죽음을 잊는다. 그러나, 그런 심상한 죽음이 바로 내 곁으로 오면 그보다 더한 공포의 대상은 없다. 부모의 죽음은 그냥 슬픔이다. 그러나 친구의 죽음은 공포이다. 성큼 다가온 나의 죽음을 실감한다. 죽음의 공포를 실감하는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죽음은 항상 내 발 밑에서 기회를 노리는 것이다. 아니 죽음의 씨는 우리 몸 안 구석구석에서 싹을 틔우려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찾아올, 아니, 바로 요 아래에 있는 죽음은 꼭 두려워해야 할 존재인가? 공포의 대상이지만 죽은 후에 과연 그 공포를 감각할 수 있을까? 죽음은 감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한솔 아파트에 살다가 백로 아파트로 옮기는 것보다 조금 더 큰 세계를 옮기는 것이다. 저렇게 오늘 친구의 죽음을 하늘이 축복하고 있지 않은가.
봉분이 완성되기 전에 산을 내려가자. 그 친구 묏봉을 보아서 좋을게 뭐람. 이미 우리들 세상이 아닌 곳에 가 있을걸. 온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는 말을 어기고, 산을 넘어 험한 비포장 도로를 달렸다. 험한 산길이 끝나자 고속도로 너머에 6차선의 국도가 나타난다. 차들이 고속으로 달린다. 거기에 또 다른 세계가 있었다. 그러나 파란 하늘에 반짝이던 꽃가루 같던 눈발은 보이지 않았다.
(1999. 1. .)
'느림보 창작 수필 > 물밥(삶과 죽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문주란이 꽃을 피울 때 (0) | 2001.11.10 |
---|---|
剝製와 벌레 (0) | 2001.07.24 |
나뭇잎들의 생멸 원리 (0) | 2001.06.28 |
물밥 (0) | 2000.10.22 |
길도 모르는 지렁이 (0) | 2000.10.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