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글이 있지요. 그야말로 剝製가 된 天才가 쓴 소설의 첫머리 아닌가요. 天才는 아니라도 나도 요즘 그이처럼 剝製가 되는 기분이라오. 그럼 剝製가 된 鈍才인가요? 후훗……. 아니 그냥 벌레인가요. ― 바보처럼 ―
-剝製가 되어버린 天才를 아시오. 나는 愉快하오. 이런 때 戀愛까지가 愉快하오.-
<李箱의 날개에서>
장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니, 사슴이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왜냐구요? 사슴은 '관이 향기로운' 친구잖아요. 그뿐인가요 사슴은 '모가지가 길어서' 멀리 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기-인 목을 더욱 잡아 빼고 고개를 약간 갸웃하면서 '먼 데 잃어버린 전설을 생각'할 때는 바보처럼 보이잖아요. 그 사슴이 그렇게 바보였거든요.
제가 장끼랬다 사슴이랬다 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저도 사슴만큼 바보거든요. 그러고 보니 '바보들의 행진'이 되어 버렸네요. 하던 얘기하지요.
사슴은 꿈이 있었어요. 그 기-인 모가지만큼이나 원대한 꿈이 말이어요. 그 원대한 꿈은 어떤 사람이 중학교 때 품었던 것처럼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어떤 이처럼 '노벨 평화상'을 타는 것도 아니었대요. 또 어떤 이처럼 교육계의 수장이 되는 敎職의 최종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었대요. -바보처럼-
대통령이 아니라도 제가 살고 있는 숲에 저절로 녹음이 짙고, 제가 이끌지 않아도, 새끼 사슴들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새순을 찾을 줄 아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대요.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은 그야말로 물 흐르는 대로 흘러서, 목마른 자는 상류로 뛰어가서 마음놓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고, 죄 많은 자는 하류에 가서 죄 묻은 발을 씻을 줄 아는 그런 숲을 만들고 싶었대요. --바보처럼--
노벨 평화상을 타지 못해도 아니 노벨 평화상이 목적이 아니라도, 숲에는 아무도 일부러 만들려 하지 않는 평화가 평화스럽게 찾아오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었대요. 모가지가 짧은 어린 새끼들일수록 꼭대기에 난 새순을 좋아하거든요. 그 때 이빨이 튼튼한 긴 목을 가진 사슴들이 그 기-인 목을 늘여 새순을 잡아주는 평화 말이예요. 바위, 돌, 나무 등걸 때문에 갈 수 없는 상류까지 함께 가서 죄가 하나도 묻지 않은 맑은 물을 마시고 싶은 때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실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었대요. --바보처럼--
새끼 사슴들이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보는'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거지요. 새끼들조차 '산을 부동산으로 보고, 물을 수자원으로 보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사슴은 그게 걱정이 되어서 동동 걸음을 걸었어요.
하긴 사슴이 그런 꿈을 가진 것은 거기 원래 살던 사슴들 덕분이었어요. 먼 나라에서 그렇게 희한한 나라에 이민 오기 전까지만 해도 '산을 부동산으로, 물은 양식으로' 생각하는 버러지였거든요. 그 희한한 나라에 사는 사슴들은 모두 '산을 산으로 보는' 법만을 가르치는 사슴들이었고, 새끼 사슴들은 그게 그런 줄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쉽지 않게 그들을 닮아버렸어요.
그런데, 천둥치고 바람불고 이쪽 골짜기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저쪽 골짜기에는 함박눈이 하늘을 까맣게 덮은 어느날, 목은 염소 모가지처럼 짧고 눈은 비둘기 눈깔처럼 댕글댕글하고, 귀는 종이장처럼 얇으며, 대가리는 참새 대가리 만한 희한하게 생긴 사슴 한 마리가 찾아 와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고' 우기기 시작했어요. 꼭대기에 난 새순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저처럼 '산은 부동산이야. 물은 수자원이야' 하는 놈, '내 꿈은 대통령이야.' 하는 놈, '물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잖아'하고 소리쳐 외치는 놈에게만 새순을 잡아 주었어요. 새순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 염생이 같은 사슴을 졸졸 쫓아다니게 되고, 그렇지 않은 바보 같은 사슴들은 새순을 포기하고 질기고 억센 등걸이나 나무껍질을 갉아먹다가 이가 부러지고, 아름다운 관이 허물어져 버렸대요. 염소 같은 사슴은 그걸 손가락질하며 '갈갈갈--' 웃어댔지요. 한마디로 산의 질서는 무너지고, 숲의 평화가 깨지고 만 것이지요.
그런데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어요. 왜냐구요? 심술이 나기 시작한 염생이 같이 생긴 사슴이 소리 질렀어요.
"야 저 바보 같은 사슴을 剝製로 만들어버리자."
그를 따라가는 사슴은 한두 놈밖에 없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어요. 이빨도 없고 관도 부러진 사슴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어느날 평화롭기만 했던 숲 속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널따란 바위 위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졌어요. 다른 날은 거기는 어미 사슴들이 모여서 새끼들에게 좀더 맑은 물을 먹이고 가능하면 깨끗한 물에 발을 씻도록 하는 방안을 상의하는 바위였거든요. 관이 부러진 어미 사슴들을 잡아다 칡넝쿨로 네 발을 묶어 놓고, 그 중에 바로 그 사슴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 거예요. 염생이 같이 생긴 사슴은 어디서 구했는지 새파란 칼을 들고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 산에 뿌리고, '산은 산이라고, 물은 물이라고'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머리를 쪼개고 그 원수 같은 골을 파내어 소금 찍어 먹어 버렸어요. 새끼 사슴들이나 아직 잡히지 않은 사슴들이 전율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부러진 관으로 들이받을 수도 없고 부러진 이빨로 물어뜯을 수도 없었어요.
불쌍한 사슴은 剝製가 되어 버렸어요. 배속은 다른 사슴의 털을 깎아 가득 채워지고, '산은 산일 수밖에 없다'고 우기던 바보 같은 머리 속에는 박달나무 조각을 넣어서 일그러지지 않게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보던' 눈에는 썩지않게 하는 약을 주사하여 멀둥멀둥하게 만들었어요. 이제 '먼데 산을 바라보기'는커녕 썩을 줄도 모르는 정말로 바보가 되어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는 剝製가 되어 버렸어요.
사슴은 진작에 떠날 걸 그랬다 후회하면서도 한발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거세된 剝製의 사슴을 보면서 모두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멍하니 세상을 내려다 볼 수밖에요. 다른 사슴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자기가 살던 터전을 버리고, 그리고 억만년 누대로 평화롭게 눌러 살려던 숲을 버리고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다리가 짧은 새끼 사슴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剝製가 된 사슴은 안타깝기만 했지요. 하기야 박달나무 대가리로 무얼 생각했겠어요.
剝製가 된 사슴은 걸을 수도 없고 박달나무 대가리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도, '산은 부동산이요, 물은 수자원인 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剝製'가 된 것이지요. 다만 合理와 順理가 살아 싱그럽기만 하던 '전설같이 잃어버린 예전의 숲'을 그리워하며 먼산만 바라보는 '슬픈 모가지'가 되어버린 것이었어요.
차라리 이름을 '벌레'라고 바꿀까요. 아니 차라리 대통령을 쏠 때 범인이 외쳤다던 '버러지'가 나을까요? 왜냐구요? 그건 모두 비겁했던 제 자신의 책임이거든요.
―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제 이름이 부끄러운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에서>
아, 나는 벌레였군요. 스스로 剝製가 되어버렸다고 치부해버리는 못난 버러지였군요.
(2000. 12. 23. 새벽에)
-剝製가 되어버린 天才를 아시오. 나는 愉快하오. 이런 때 戀愛까지가 愉快하오.-
<李箱의 날개에서>
장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니, 사슴이라고 하는 게 좋겠어요. 왜냐구요? 사슴은 '관이 향기로운' 친구잖아요. 그뿐인가요 사슴은 '모가지가 길어서' 멀리 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그 기-인 목을 더욱 잡아 빼고 고개를 약간 갸웃하면서 '먼 데 잃어버린 전설을 생각'할 때는 바보처럼 보이잖아요. 그 사슴이 그렇게 바보였거든요.
제가 장끼랬다 사슴이랬다 한다고 욕하지 마세요. 저도 사슴만큼 바보거든요. 그러고 보니 '바보들의 행진'이 되어 버렸네요. 하던 얘기하지요.
사슴은 꿈이 있었어요. 그 기-인 모가지만큼이나 원대한 꿈이 말이어요. 그 원대한 꿈은 어떤 사람이 중학교 때 품었던 것처럼 '대통령'이 되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어떤 이처럼 '노벨 평화상'을 타는 것도 아니었대요. 또 어떤 이처럼 교육계의 수장이 되는 敎職의 최종 목표를 가진 것도 아니었대요. -바보처럼-
대통령이 아니라도 제가 살고 있는 숲에 저절로 녹음이 짙고, 제가 이끌지 않아도, 새끼 사슴들이 입안에서 살살 녹는 새순을 찾을 줄 아는 세계를 만들고 싶었대요.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은 그야말로 물 흐르는 대로 흘러서, 목마른 자는 상류로 뛰어가서 마음놓고 맑은 물을 마실 수 있고, 죄 많은 자는 하류에 가서 죄 묻은 발을 씻을 줄 아는 그런 숲을 만들고 싶었대요. --바보처럼--
노벨 평화상을 타지 못해도 아니 노벨 평화상이 목적이 아니라도, 숲에는 아무도 일부러 만들려 하지 않는 평화가 평화스럽게 찾아오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었대요. 모가지가 짧은 어린 새끼들일수록 꼭대기에 난 새순을 좋아하거든요. 그 때 이빨이 튼튼한 긴 목을 가진 사슴들이 그 기-인 목을 늘여 새순을 잡아주는 평화 말이예요. 바위, 돌, 나무 등걸 때문에 갈 수 없는 상류까지 함께 가서 죄가 하나도 묻지 않은 맑은 물을 마시고 싶은 때 마시고 싶은 대로 마실 수 있는 그런 세계를 만들고 싶었대요. --바보처럼--
새끼 사슴들이 '산을 산으로 보고 물은 물로 보는'법을 가르쳐 주고 싶었던 거지요. 새끼들조차 '산을 부동산으로 보고, 물을 수자원으로 보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요. 사슴은 그게 걱정이 되어서 동동 걸음을 걸었어요.
하긴 사슴이 그런 꿈을 가진 것은 거기 원래 살던 사슴들 덕분이었어요. 먼 나라에서 그렇게 희한한 나라에 이민 오기 전까지만 해도 '산을 부동산으로, 물은 양식으로' 생각하는 버러지였거든요. 그 희한한 나라에 사는 사슴들은 모두 '산을 산으로 보는' 법만을 가르치는 사슴들이었고, 새끼 사슴들은 그게 그런 줄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쉽지 않게 그들을 닮아버렸어요.
그런데, 천둥치고 바람불고 이쪽 골짜기에는 소나기가 쏟아지고, 저쪽 골짜기에는 함박눈이 하늘을 까맣게 덮은 어느날, 목은 염소 모가지처럼 짧고 눈은 비둘기 눈깔처럼 댕글댕글하고, 귀는 종이장처럼 얇으며, 대가리는 참새 대가리 만한 희한하게 생긴 사슴 한 마리가 찾아 와서는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라고' 우기기 시작했어요. 꼭대기에 난 새순은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저처럼 '산은 부동산이야. 물은 수자원이야' 하는 놈, '내 꿈은 대통령이야.' 하는 놈, '물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잖아'하고 소리쳐 외치는 놈에게만 새순을 잡아 주었어요. 새순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그 염생이 같은 사슴을 졸졸 쫓아다니게 되고, 그렇지 않은 바보 같은 사슴들은 새순을 포기하고 질기고 억센 등걸이나 나무껍질을 갉아먹다가 이가 부러지고, 아름다운 관이 허물어져 버렸대요. 염소 같은 사슴은 그걸 손가락질하며 '갈갈갈--' 웃어댔지요. 한마디로 산의 질서는 무너지고, 숲의 평화가 깨지고 만 것이지요.
그런데 더 무서운 일이 벌어졌어요. 왜냐구요? 심술이 나기 시작한 염생이 같이 생긴 사슴이 소리 질렀어요.
"야 저 바보 같은 사슴을 剝製로 만들어버리자."
그를 따라가는 사슴은 한두 놈밖에 없었지만 아무도 말리지 못했어요. 이빨도 없고 관도 부러진 사슴이 무슨 힘이 있겠어요.
어느날 평화롭기만 했던 숲 속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있는 널따란 바위 위에서는 무서운 일이 벌어졌어요. 다른 날은 거기는 어미 사슴들이 모여서 새끼들에게 좀더 맑은 물을 먹이고 가능하면 깨끗한 물에 발을 씻도록 하는 방안을 상의하는 바위였거든요. 관이 부러진 어미 사슴들을 잡아다 칡넝쿨로 네 발을 묶어 놓고, 그 중에 바로 그 사슴의 껍질을 벗기기 시작한 거예요. 염생이 같이 생긴 사슴은 어디서 구했는지 새파란 칼을 들고 배를 가르고 창자를 꺼내 산에 뿌리고, '산은 산이라고, 물은 물이라고'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바보 같은 머리를 쪼개고 그 원수 같은 골을 파내어 소금 찍어 먹어 버렸어요. 새끼 사슴들이나 아직 잡히지 않은 사슴들이 전율하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부러진 관으로 들이받을 수도 없고 부러진 이빨로 물어뜯을 수도 없었어요.
불쌍한 사슴은 剝製가 되어 버렸어요. 배속은 다른 사슴의 털을 깎아 가득 채워지고, '산은 산일 수밖에 없다'고 우기던 바보 같은 머리 속에는 박달나무 조각을 넣어서 일그러지지 않게 하고, '먼데 산을 바라보던' 눈에는 썩지않게 하는 약을 주사하여 멀둥멀둥하게 만들었어요. 이제 '먼데 산을 바라보기'는커녕 썩을 줄도 모르는 정말로 바보가 되어 세상을 멍하니 바라보는 剝製가 되어 버렸어요.
사슴은 진작에 떠날 걸 그랬다 후회하면서도 한발도 움직일 수 없었어요. 거세된 剝製의 사슴을 보면서 모두 안타까워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멍하니 세상을 내려다 볼 수밖에요. 다른 사슴들은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자기가 살던 터전을 버리고, 그리고 억만년 누대로 평화롭게 눌러 살려던 숲을 버리고 하나 둘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그러나 다리가 짧은 새끼 사슴들은 어찌해야 하나요? 剝製가 된 사슴은 안타깝기만 했지요. 하기야 박달나무 대가리로 무얼 생각했겠어요.
剝製가 된 사슴은 걸을 수도 없고 박달나무 대가리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 것'도, '산은 부동산이요, 물은 수자원인 것'도 생각할 줄 모르는 '剝製'가 된 것이지요. 다만 合理와 順理가 살아 싱그럽기만 하던 '전설같이 잃어버린 예전의 숲'을 그리워하며 먼산만 바라보는 '슬픈 모가지'가 되어버린 것이었어요.
차라리 이름을 '벌레'라고 바꿀까요. 아니 차라리 대통령을 쏠 때 범인이 외쳤다던 '버러지'가 나을까요? 왜냐구요? 그건 모두 비겁했던 제 자신의 책임이거든요.
― 밤을 새워 우는 벌레는 제 이름이 부끄러운 까닭입니다.―
<윤동주의 '별헤는 밤'에서>
아, 나는 벌레였군요. 스스로 剝製가 되어버렸다고 치부해버리는 못난 버러지였군요.
(2000. 12. 23. 새벽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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