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첫눈

느림보 이방주 2006. 11. 7. 08:23

첫눈


오늘은 아직도 엄마라고 부르고 싶은 어머니의 기일이다. 기일은 뭐든 조심해야하는 날인가 보다. 새벽에 잠에서 깨었는데 통 잠이 오지 않는다. 어머니에 대한 견딜 수 없는 그리움으로 자꾸 뒤척이게 된다.

 

늦가을이었던 그날의 하늘은 눈이 시리게도 고왔다. 아주 깊고 끝없는 호수에 빠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하늘이 고운 날 새벽에 어머니는 두 달간의 병마와의 싸움에서 손을 내리셨다. 지금도 어머니 손이 내려지는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릿해 온다. 그날 아침 잠이 깨는데 느낌이 이상해서 어머니가 계신 내 서재에 가보았는데, 이미 누나가 어머니 손을 잡고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엄마 숨이 더 느려졌어.”

누나의 목소리는 숙연하지만 잔잔하게 떨고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호흡의 주기를 늘이고 계셨다. 조용히, 아주 조용히,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멈추시는 주기가 점점 더 길어지는데 우리 남매는 도무지 어찌해야 되는지 안타깝기만 했다. 나는 염불을 하며 어머니, 한 많은 어머니의 눈을 쓸어 내렸다. 누나는 소리 없이 울고 있었다. 가족들이 다 좁은 서재로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너무나 당황해서 공연히 이리저리 돌아다니셨다. 큰 형수가 울음소리를 내려고 하셨다. 나는 어머니를 아주 조용히 보내 드리고 싶었다. 

“조용히 하세요.”

모두 조용해졌다. 우리는 모두 숨소리조차 내지 못하며 조용히 아주 조용히 먼 길 떠나시는 어머니를 배웅하고 있었다. 떠나시면서도 어머니 눈에는 눈물이 괴어 있었다. 자식들을 걱정하는 평생의 눈물을 마지막 길목에까지 씻어내지 못하신 것이다. 그 때 어머니는 누나가 잡고 있던 손을 '툭' 내리셨다. 나는 조용히 어머니의 눈을 쓸어 내렸다. 내 손에 어머니의 마지막 눈물이 묻었다. 그때 처음으로 내 손에 쓸려 눈시울에 엎드리는 어머니의 속눈썹을 보았다. 참 길고도 아름다웠다.

 

거실에 나와 앉았다. 지난밤 첫눈이 내렸다. 새로 지은 방송대학교 건물에 새벽까지 불이 환하다. 어둑한 앞산에 눈이 하얗다. 어둠 속에서도 아주 깨끗하고 하얗다.

나는 연자방아 앞에 취를 뜯는 어머니 사진을 바라보며 옛날 생각에 잠겼다. 떠나시던 그날 생각에 잠겼다. 가슴이 아프다.

 

밖에는 

첫눈이 내렸다.

시끄럽던 바람도 없이, 나뭇잎 하나 날리지 않고

조용히, 아주 조용히…….


소나무 늘어진 가지 위에 쌓인 하얀 눈이 깨끗하다.

아주 깨끗하다.

아주 아주 깨끗하다.

아니, 그냥

깨끗하다.

당신의 영혼이 내리신 것처럼…….


  나는 서둘러 축을 닦았다. 어머니께 드릴 축을 지었다. 그리움을 담아 한 줄 한 줄 있는 힘을 다했다. 손은 떨리지 않았다. 눈물도 묻어나지 않았다.  소나무 가지마다 하얗게 쌓인 눈이 더욱 깨끗하다. 어머니 눈물처럼 하얗다.

(2006. 11. 7)

 

  우리 아파트에서 보이는 방송대학교

 

 한솔아파트 2단지와 매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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