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쌓이는 솔잎처럼

느림보 이방주 2006. 1. 30. 11:50

울창한 낙엽송길(괴산 칠보산에서)

 

식탁에 흘린 밥알을 또 주워 먹었다. 아내와 아이들의 눈치를 본다. 이러지 말아야지. 정말 이러지 말아야지. 그렇게 다짐하면서도 흘리는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젓가락으로 주워 입에 넣는다. 아버지 생각이 난다. 아버지께서도 아마 이렇게 자식의 눈치를 살피셨을 것이다. 

 

어린 날 아버지와 할머니가 겸상해서 드시는 밥상 모서리에서 나도 밥을 먹었다. 할머니께서는 주발을 왼손으로 잡으시고 드시다가 숟가락에 밥이 담기지 않고 그릇 밖으로 넘어가려하면 슬쩍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숟가락에 쓸어 담으셨다. 아버지는 그 때마다 할머니께 핀잔을 하셨다. 아버지는 내심으로 할머니가 깨끗하게 진지를 드시게 하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런데 할머니 그 때의 연세가 되신 아버지께서도 흘린 밥알을 주워 드셨다. 그러더니 아버지께서도 언제부터인지 할머니의 그 식사 습관을 따라하셨다. 그 때마다 할머니를 걱정하시던 젊은 날의 아버지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나는 하고 싶은 말을 삼키기만 했다. 이제는 안 계신 아버지, 이제 내가 아버지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설날 오후 고조부 산소에 갔다. 산소 가는 길에는 아카시아가 함부로 엉켜 등산지팡이로 나무 가지를 치면서 올라 가야 했다. 그래도 통정대부인 고조부 산소에는 잔디가 보송보송하게 살았다. 자손들이 잘 돌아보지 못하는 통정대부 비석에는 여기저기 나나니벌이 집을 지었다. 장갑 낀 손으로 나나니벌의 해묵은 황토집들을 다 허물어내었다. 아버지가 닦으신 통정대부의 비문은 아직도 그대로다. 그런데 나나니벌들이 일필휘지의 통정대부의‘通’자를 황토로 메워 붉은 글자가 되었다. 나머지 ‘政大夫’만 뚜렷하다. 나무 가지를 꺾어 모두 긁어내어 온전하게 ‘通政大夫’로 회복해 드렸다.

 

산소를 돌아 등성이로 올라갔다. 어린 시절 억새풀 뽑아 화살을 날리던 그 동산이다. 등성이로 난 길에는 소나무가 우거지고, 길에는 솔잎이 소복하다. 조선소나무와 달리 리기다소나무가 쏟아놓은 솔잎은 황금색이다. 길고 억세어서 황금 바늘을 소복하게 쏟아놓은 것 같다. 나는 장난삼아 지팡이로 쌓인 황금바늘을 헤쳐 보았다. 그 아래 검게 썩어가는 솔잎이 그대로 드러난다. 더 깊이 헤집어 보았다. 몇 해나 묵은 솔잎인지 이미 부토가 되어 쌓였다.

 

열 몇 살 때 소리 질러 노래 부르며 소에게 풀을 뜯기던 산 고개를 지나 아버지 어머니 산소로 내려갔다. 할아버지, 아버지를 모신 산소 부근에는 인근 교회 신도들의 등산로가 생겼다. 나뭇가지를 주워 길을 막았다.

 

할아버지 산소에 성묘를 하고 보니 딸아이가 아버지 비석을 닦고 있다. 문득 생전의 아버지의 모습이 생각난다. 아버지께서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당신의 증조이신 통정대부를 중심으로 조상의 석물을 마련하셨다. 지난 섣달 마련해 드린 아버지 비석에는 아직 나나니벌이 집을 짓지는 않았다. 눈이 녹아 먼지가 흘러내린 모습이 흉하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런 막내의 생각이 기특하다.

 

푸른 솔잎이 노랗게 염색되어 떨어져 쌓이듯 우리네 삶은 그렇게 차곡차곡 쌓이고, 쌓인 속잎들이 그렇게 검어지듯 우리네 삶도 옛 어른들이 살아 오신 길을 닮아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섭리인가 보다.

 

새벽에 일어나 서재에 건너와 깔깔한 목청을 돋우느라 크게 헛기침을 한 번 해본다. 내 기침 소리에 내가 놀란다. 서쪽으로 난 창에 부딪쳐 '쩡'하고 되돌아 오던 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나 들은 것처럼…….

(2006. 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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