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근무하게 될 학교에 첫 얼굴을 보이러 가는 날이다. 집을 나서는데 아내가 깜짝 놀란다. 머리에 새집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시 머리를 다듬고 거울 앞에 섰다. 빗은 머리가 도로 고슴도치처럼 곤두선다. 이렇게 곤두서면 ‘속안머리’가 텅 비어 소갈머리 없는 내 속을 훤히 보이는 것 같아 불안하다. 좋은 얼굴을 내밀기는 애당초 글러먹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따라 외가에 가면 나는 ‘못생긴 놈’으로 통했다. 나보다 열아홉 살이나 더 위인 외사촌 큰형님은 나만 보면 ‘못생긴 놈 왔구나.’하면서 서울구경을 시켰다. 두 귀를 잡고 북쪽을 향하여 번쩍 들어 올리면 귀가 떨어질 것 같이 아팠다. 형님의 장난을 너무 못생긴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때부터 ‘못생긴 놈’이란 열등감 때문에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리게 되었다.
집안에서도 ‘못생긴 도련님’으로 통했다. 늠름하셨던 외조부를 닮아 외사촌들도 다 준수할 뿐 아니라, 우리 팔남매 중에도 나 같은 무녀리는 없다. 특히 고인이 된 큰형님은 요즘 한다하는 배우들도 그런 준수한 인물이 없을 정도였다.
그에 비하면 내 얼굴은 정말 문제가 많다. 우선 내 얼굴은 좌우가 대칭되지 않는 짝 얼굴이다. 살이 넉넉하게 붙은 지금도 야속할 정도로 표가 난다. 게다가 입술은 민망할 정도로 두툼하다. 뺑덕어미 입술이 두어 사발 된다면 내 입술도 한 탕기는 족히 될 것 같다. 한 술 더 떠서 튀어나오기까지 했다. 어린 시절 튀어나온 입술과 앞으로 뻗은 윗니 때문에 스무 살이나 더 많은 큰형님이 아침마다 윗니 들여 미는 훈련을 시켰다. 그러나 허사였다. 게다가 눈은 때로 삼각형이 된다. 함께 사는 아내도 어떤 때는 눈 때문에 있던 정이 떨어질 지경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때쯤에는 얼굴에 들깨 타작을 해놓은 것처럼 주근깨가 소복했다. 큰일이 있을 때면 집안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음식을 만들면서 ‘도련님이 있으니 기름은 모자라도 걱정 없어’하며 놀려대었다. 중학교 때 이미 180cm를 넘겨 웃자란 키 때문에 장애인 취급을 받았다.
나이를 먹어 주근깨도 줄어들고, 볼에 살도 붙어 짝 얼굴이나 돌출된 입이 표가 덜 나지만, 역시 첫 얼굴을 내밀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눈두덩에 하얀 반점이 생겼다. 그걸 본 여학생들은 존경심이 반감된다고 한다. 외모가 존경심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말을 듣고 정말 놀랄 지경이었다. 그래서 피부과에 가니까 성형외과로 가란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을 것 같아 그냥 살기로 했다.
원래 옛말에서 ‘얼굴’은 몸 전체를 의미하는 말로 쓰여 ‘안면’을 의미하는 말인 ‘낯’과 구별하였다. 현대어에서는 ‘낯’의 의미도 확대되어 ‘체면, 위상’ 이외에도 마음까지 결부시킨 의미로 확산되었다. 이제 얼굴이란 말과 함께 외모, 마음, 가치관, 행동 등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 된 것이다. 거꾸로 생각하면 어떤 마음이나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 얼굴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시신의 표정을 보면 평온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사람의 최후의 얼굴에는 삶의 여정이 되비쳐 보이는 것인가 보다.
인류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얼굴은 체질이나 기후와 풍토 이외에 문화에 따라서 변화하기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얼굴은 한국의 문화 속에서 갈고 다듬어진 얼굴이다. 한국인의 얼굴이 민족문화의 얼굴이라면, 나의 얼굴은 나만이 지녀온 나의 문화를 반영한 얼굴이다. 이렇게 얼굴은 과거를 기록한 이력서이고 현재를 보증하는 신분증이다. 또 미래를 짐작할 수 있는 정보의 지도이다.
요즘에는 얼굴이 자산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얼굴을 중시한다. 잘 생긴 얼굴은 그만큼 부가가치를 지닌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들은 모두 개성 있는 얼굴인데,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하나같이 똑같아진다. 인형같이 예쁜 이국적 얼굴이 된다. 이제는 오히려 좀 못생겼더라도 개성 있고 자연스러운 얼굴이 반갑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은 성형한 사실을 자랑까지 할 정도로 자산 관리를 당연시한다.
얼굴이 아무리 자산이라 하더라도 성형은 하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생각해보면 얼굴은 성형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의 품격으로 만들어진다. 불의의 사고로 잃어버린 본래의 얼굴을 찾기 위한 성형이 아니라면, 성형은 섭리에 대한 거부이고, 이력에 가필하는 것이며, 신분증을 위조하는 것이다.
오늘 첫 얼굴을 보이면 내 얼굴에서 어떤 이력과 어떤 문화를 읽어낼까? 소갈머리가 없는 것도 이미 내 미래의 지도인데 굳이 다듬어 감출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냥 자연 그대로, 서 있는 그대로 거짓 없이 나서자. 나는 애타는 얼굴로 바라보는 아내를 두고 그냥 현관을 나선다.
(2009.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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