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사랑의 방(가족)

못에 대하여

느림보 이방주 2007. 1. 2. 18:13
 

 백암온천 마을에서 바라본 일출(2007.2.7)

 

정해년 정월 초하룻날이다. 해맞이를 하려고 우리 동네 구룡산에 올라갔다. 새해 해맞이는 소원을 빌기 위해서이기도 하겠지만, 나는 반성과 다짐에 의미를 더 두고 싶다. 너무 일찍 올라갔는지 꼭대기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한 가족인 듯 서너 명이 발을 구르면서 아직도 어두운 동쪽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선도산 산줄기가 선명한 것으로 봐서 해는 아직도 떠오를 생각이 없는 모양이다. 도회의 가로등만 줄을 지었다. 달리는 자동차들만 현란한 불빛을 꽃가루 날리듯 뿌리고 있었다.  

 

서서 해를 기다리는 것보다 걷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능선을 따라 걸어서 끝까지 갔다. 거기 끄트머리에 가서 체조를 했다. 이 어눌한 체조 덕분에 나는 아직도 팔이 맘 놓고 돌아간다. 나는 전혀 몰랐는데 벌써 팔이 뒤로 안 돌아가는 친구들이 많아서 깜짝 놀란 적이 있었다. 맞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십대의 몸은 이렇게 굳어 가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쓰지 않는 다른 어디인가 굳어지지 않나 걱정이다.

 

돌아오는 길에 사방은 훤해지고 선도산 언저리가 붉게 타오른다. 화려하던 가로등이 숨을 거두고, 질주하는 차량이 흩뿌리던 현란한 불빛도 사라지고 거미새끼 같이 제 몸을 드러내었다.

나는 아주 빠른 걸음으로 구룡산 정상으로 되돌아 왔다. 어느새 좁은 산마루에는 사람들이 빼곡하다.  떠오르는 태양을 조금이라도 잘 볼 수 있는 곳에 서려는 사람들의 은근한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아무데나 서 있어도 붉게 물든 하늘과 경계를 이룬 선도산 검은 선이 잘 보인다. 어린 날 장애자 취급 받던 큰 키도 저렇게 해가 뜨고 지는 사이에 시대가 바뀌고 생각이 바뀌어 이렇게 편리하다.

 

해가 구름 속에서 불덩이가 되어 막 솟으려는 순간 아들 용범에게서 전화가 왔다. 연말에 가족여행을 떠나자는 내 제의를 선약이 있다고 깨버린 아이다. 동해 해맞이를 가려던 내 생각을 접으며 섭섭함도 애써 눌러야 했다.

“아버지 속초예요.”

“거기는 해가 올랐겠네. 그래 해 뜨는 것 봤냐?”

“뜨긴 떴는데 구름에 가렸어요.”

“아무나 못 본다. 착하게 살아야 보는 거야.”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섭섭함을 담아 대답했다.

“아, 제가 착하게 못 살았나 봐요.”

 

착한 이 녀석이 나의 섭섭함을 금방 알아 들었나 보다. 나는 곧 후회했다.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을 다 받아 줄 수는 없는 것인가? 이제 이순(耳順)이 가까워 오는데 말이다. 괜한 말을 해서 아이에게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이 나이에도 철없이 아이들 가슴에 못을 쏟아 붓는구나. 금방 마음에 걸렸다.

“우리 아들이 착하게 살았는데”

나는 내 전화에 신경 쓰일 지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둘러댔다. 그러나 때가 이미 늦었다. 나의 변명은 참말이면서도 빈말이 되어 버렸다. 아비가 보기엔 바보처럼 착한 그런 아들에게 새해 아침 가슴에 못을 박다니. 그런 아이가 해를 못 보는 것은 분명 착하게 산 사람만 보는 해는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선도산 솟아오르려던 붉은 불덩이에 금방 검푸른 구름이 일더니 금방 어두워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늘은 점점 더 컴컴해진다. 금세 붉은 기운조차 자취를 감춘다. 아, 죄는 내가 더 많구나. 새해 첫날부터 죄는 내가 지은 거야.

지금껏 말로 지은 죄가 아마도 몇 천 섬은 될 것이다. 첫날부터 자식에게 던진 망언이 내려오는 비탈길에 다리를 후둘거리게 한다.

내 자식이 아니라도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가슴에 쏟아 부은 못이 아마도 몇 천 섬을 될 것이다.

(2007.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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