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껍질벗기(깨달음)

대왕암 갈매기

느림보 이방주 2001. 3. 1. 09:49

 다시 가 본 대왕암(2007.1.6)

 

 

  감포에 가고 싶었다. 그 바다가 그리워 견딜 수 없었다. 그렇게 익숙한 바다도 아닌데 한 번 가본 이후로 그 바다의 흰 물결이나, 아주 가까이 있는 대왕암 갈매기의 影像이 지워지지 않았다.

  아내와 함께 감포까지 차를 몰았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내와 함께 떠난다는 가벼운 흥분으로 고속도로 청원 나들목에서 표를 빼지 않는 실수를 저질러서 경주에서 한동안 실랑이를 하였다. 불국사를 거쳐 석굴암에서 아스라이 바라다 보이는 감포까지는 그렇게 어려운 거리는 아니었다.

  우리 내외는 차를 세우고 바다로 내려섰다. 모래는 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더럽혀지고, 밀려오는 파도는 열심히 그 죄의 무게를 쓸어간다. 모래장의 수많은 발자국들은 파도가 밀려 쓸어갈 적마다 다시 태초의 모습으로 깨끗이 정화된다. 방생이란 허울 좋은 이름으로 사람들이 던진 음식 찌꺼기들이 너저분하게 드러나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래는 참으로 깨끗하다. 갈매기들이 이따금씩 날아들어 모이를 줍는다.

  많은 사람들이 쌍쌍이 제나름대로의 생각으로 바다를 거닌다. 그 서성이는 사람들은 모두 어떤 생각들일까? 우리 같은 중년의 부부도 있고, 연애하는 한참 물좋은 아이들도 있고, 철모르고 뛰는 아이들도 있다. 신문에서 보는 것처럼 불륜의 사내와 계집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쿡' 웃음이 나온다. 불륜이란 뭔가? 도덕의 경계는 어디인가? 그들은 그렇게 반문할지도 모르지. 그래 맞아. 성춘향과 이몽룡은 불륜인가, 인간 해방인가? 모두들 해방이라고 하고 싶겠지. 일본 아이들 몇이 조미료 많이 넣은 된장찌개 같은 목소리로 지껄이며 지나간다. 문무대왕 능침 앞을……. 문무 대왕이 이 바다의 혼란을 극복하고 흐트러진 민족 정체성을 찾으라고 소리치는 듯하다.

  대왕암은 정말로 대왕같이 생겼다. 파도가 하얗게 바위를 덮을 때마다 대왕의 호령이 들려나올 듯하다. 갈매기들이 하얗게 앉아 있다. 갈매기들의 희고 깨끗한 모습은 금방 울고난 아이의 눈처럼 맑다. 하얗게 앉은 갈매기들이 갑자기 작은 나한님(羅漢)들처럼 보였다. 해탈 성불의 경지에 이르지는 못하였으나, 모든 불자에게 존경받는 오백나한이 바위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도 모두 나한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모두 나한에서 머무는 것일까?

  바다 너머의 바람이 북쪽 하늘 한켠으로 묵은 구름을 몰아 하늘은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채 본연의 투명한 벽공을 드러내었다. 갑자기 갈매기가 푸드득 난다.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놀라는 듯 하지만, 푸른 하늘에 무질서의 조화를 이루며 하얀 배를 반짝일 때는 '자유'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그것을 보고 '야---'하고 소리 지른다. 아이들의 눈에는 그 '자유'가 보인 것이다. 자유, 해방, 해탈……. 대왕이 기른 자유인가? 나한님이 마지막 해탈을 얻는 것인가?

  대왕암 바로 앞에는 다른 바다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더욱 하얀 물살이 밀려오는 듯하다. 얇고 하얗게 밀려오는 물살은 모래 언덕을 거슬러 올라오다가 힘이 부치면 다시 제 갈 데로 흘러간다. 아내는 소녀처럼 물살을 따라가기도 하고, 물살에 쫓기기도 하면서 모래 언덕에 발자국을 내었다.

  우리 내외는 연애할 때 해보지 못한 한을 풀기라도 하듯이 바닷가를 나란히 거닐었다. 물이 지나간 자리에 내는 발자국이 그리 크게 나지 않는 법인데, 내가 지나간 자리는 유난히 크고 선명하게 움푹움푹 발자국이 생긴다. 탐욕의 무게인가? 죄의 크기인가? 대왕암에서 흘러나온 파도가 씻어간 자리에 낸 움푹한 내 발자국은 과거의 죄의 影像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자꾸 뒤를 돌아본다. 무섭다. 바다가 무섭다.

  바다는 '쏴----'하고 호령하듯 염불하듯 크고 작은 죄를 씻어간다. 탐욕의 무게처럼 무겁게 디뎌진 발자국도 파도의 한 너울에 깨끗이 씻겨지는 것이다. 바다가 씻어간 자리에 다시 갈매기가 작은 발자국을 낸다. 나한님이 마지막 죄를 청소하고 길을 내듯이…….
"부처님, 하얀 파도가 밀려와 우리의 죄 많은 발자국을 쓸어가듯이 우리의 죄 많은 과거를 용서하소서"

  파도는 여전히 일렁이면서 바다의 호령을 들려주고, 한 파람 바다 바람이 불어 주차장 모래를 날린다. 하나 둘 저녁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할 때 자리를 떴다. 차를 북으로 돌릴 때 날은 시나브로 어두워지고, 아내는 두고 온 아이들, 아버님 걱정에 딸아이에게 열심히 뭔가를 지시한다. 태백의 준령을 넘어 왔지만, 그래서 일상을 떠난 듯도 하지만, 그 준령너머 일상의 끈은 여기까지 따라와 있었다.

  기다리는 사람도 없는데 백암 온천까지의 거리를 걱정하며, 가속 페달에 힘을 가한다.
(2001.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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