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버마재비 문답(自責)

수필가 느림보에게 -버마재비의 의문-

느림보 이방주 2005. 8. 21. 10:39
   수필가 느림보님, 안녕하셔요? '느림보 선생' 참으로 오랜만에 불러 보네요.

당신은 나를 그 대단한 버마재비라 불러주면서 오줌싸개니 사마귀라는 오명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것처럼 인심를 썼지만, 그 얄팍한 표리부동을 내가 모를 줄 아시나요? 당신은 날 세모대가리라고 욕했지요. 그러나 인간은 누구나 종족우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걸 모를 줄 아시나요? 그렇게 보면 버마재비란 이름이 오줌싸개니 사마귀보다 더 저급하게 비아냥거리는 이름이라는 걸 먼저 알고 있답니다. 우리 버마재비들이 몇몇 맛나는 곤충 몇 마리를 잡아먹었기로 꼭 버마재비라 해야 하나요?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아저씨, 여름내 당신이 먹고 다닌 건 다 어떤 건데요. 당신의 탁상용 달력에 살살 기어가서 다 훔쳐 보았걸랑요. 거기 ‘삼, 보, 보, 추, 보, 보, 보…….’라고 장난기 어린 점심 메모는 뭔가요? 또 핸드폰에 ‘외딴, 삼일, 좋아, 초가, 설악’하는 식당 전화번호는 다 뭔가요? 거기서 글이라도 나오나요? 하루만이라도 자비심을 가지고 살라는 지난 우란분절에도 뭘 자셨는지 기억은 나시겠지요? 그게 문학인가요? 당신이 먹어치운 그 모든 이들에게도 고귀한 영혼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나요? 혹 그렇게 인간성을 넘어서는 행보가 곧 문인의 디딤이란 되잖은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가요? 행동은 없으면서 사고만 고상하면 문학인가요? 아니, 사고도 행동도 없으면서 글만 빤지르르하면 수필가인가요? 나는 비록 오줌싸개이지만 ‘격조 높은 지성의 언어’ 어쩌고 하면서 지성은 없고 언어만 있는 당신의 주절거림을 문학이라 하는 사기 행각에 돌을 던지고 싶걸랑요.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나는 그 잘난 느림보란 이름을 들으면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걸랑요. 왜냐고요. 왜겠어요. 넘어오려는 게 있기 때문이지요. 당신은 ‘느림보’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지 내 다 알고 있어요. 그건 ‘완보(緩步)’라고 하면서 천천히 서두르지 않으면서 여유 있게 갈곳은 어디든 다 간다고 했던가요? 뭐 멀리서 바라보면 느릿느릿 가는 것 같아도 가까이 따라가 보면 따르기 어렵다고요? 소망이겠지. 그런 고상한 소망을 가지고 사실로는 그리 되려고 애쓰지도 않는 게으름뱅이가 바로 당신 아닌가요? 여유를 가져야 할 데는 서두르면서 조급해 하고, 서둘러야할 데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당신이 아닌가요? 이 작고 보잘것없는 세모대가리로 생각해보건대 당신은 그렇게 뜻 깊은 느림보가 아니라 그냥 진짜 느림보더라고요. 그래서 당신의 그 글방 머리에 쓴 ‘느릿느릿 자근자근 연잎에 어쩌고’만 보면 미꾸라지매운탕을 안주로 막걸리를 마셨을 때처럼 목구멍이 간질간질하걸랑요. 하품할 때 실바람만 목구멍을 스쳐도 미꾸라지가 꼬물꼬물 넘어올 것 같걸랑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말복도 지나고 처서가 낼모레네요. 당신이 중복 땐가 내게 뭐랬나요? 그 얇디얇은 초록의 피부로 어떻게 염천을 지내느냐고 약을 팍팍 올렸지요. 난 보잘것없는 세모대가리지만 다 이해해요. 그날 느림보님, 당신이 점심은 삼일식당에서 저녁은 외딴집에서 참 험하게도 배불뚝이가 되었으니, 절식으로 얇아진 내 배를 보면 그런 오만이 생길만도 하지요. 느림보님, 세상에 짖는 것들이 배 안에 종류별로 다 들어 있으니 짖을 수밖에 없는 수필가가 된 당신이 한없이 불쌍하군요. 세모대가리도 아니면서 그렇게 아름답다는 머리로 격조 높은 지성의 언어는 왜 다 잊으셨나요? 그리고는 당신이 그렇게 경멸하는 푸념만을 내려 놓으시나요? 사고와 행위가 다르니 나락으로 곤두박질 할 수밖에 없다는 건 아시나요? 말로만으로 문학을 하면 메아리 없는 공허한 넋두리일 뿐이라는 건 당신이 한 말이잖아요. 그 말도 그냥 해본 소리였다고요.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처서가 지나면 곧 9월이네요. 여름 동안 절식을 하느라 했는데도 나도 이제 아랫배가 늘어졌어요. 초록을 넘어 비취색으로 변하더니 오동통한 뱃살 아래는 고고한 흰빛으로 변해 가고 있어요. 항상 절식을 미덕으로 아는 우리 버마재비들에게 다른 곤충을 마구 잡아먹어서 그렇다고 욕하지 마세요. 우린 사람과 다르걸랑요. 거기에는 사람을 향해서 싸댈 오줌이 들어있는 것도 아니고요, 사마귀를 마구 돋아나게 하는 독물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걸랑요. 9월이 지나 들판이 황금색으로 변하고 초목이 누렇게 겨울을 준비하면 우리 버마재비들도 내년을 준비해야 하걸랑요. 당신이 연록이라고 비아냥대던 날개를 무직하게 갈색으로 바꾸고 두툼하고 널찍한 잎사귀를 찾아 알을 낳아야 하걸랑요. 그래서 이 가을 우리는 경건한 마음으로 돌아간답니다.

 

이런 우리를 욕하던 당신은 가을에 뭘 준비하시나요? 가을이면 없는집 제사 돌아오듯 하는 문인들의 모임에 참석할 준비를 하시겠지요? 당신은 거기에 진실한 문인이 되어 참석한 적 있나요? 혹 사회에서의 ‘느림보’ 되었음을 거기에 가서 보상받으려 하는 것은 아닌가요? 당당히 경쟁에 나서서 떳떳하게 패배에 승복하고 당당히 뒷날을 준비하지 못하는 비겁한 열등감을 거기서 보충하려 하는 것은 아닌지요? 거기서 배운 것은 무엇이고 자신을 성찰한 것은 무엇인가를 정리하려하지 않고 ‘참석했음’ 그래서 ‘문인’임을 내세우려 하지는 않았나요? 우리도 그만한 것쯤은 다 알고 있걸랑요. 당신이 말하던 똥폼잡던 버마재비잖아요. 사람들의 자기도취하는 속 좁은 만족쯤은 알고도 남걸랑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당신은 모르겠지만, 버마재비인 내가 멀리서 당신의 그 웃기지도 않는 행태를 다 보고 있다는 걸 명심하세요. 당신은 세미나에 참석 때마다 한 마디씩 하고야 말던데요. 그 되잖은 질의 말예요. 정말로 궁금해서인가요? 물론 궁금하기도 했겠지요. 그런데 내 들어보니 조금은 이죽거림도 있고, 조금은 비아냥거림도 있고, 조금은 공격하는 것 같기도 하던데요. 더욱 메스꺼운 것은 조금은 현학적이었다는 거예요. 아니라면 어디 발명이나 해보세요. 그게 뭡니까? 그건 당신이 말하던 똥폼이 아닌가요? 당신은 격조 높은 지성을 가지고 정말 수필문학의 문학성 제고를 위해서 사명을 다하겠다며 때마다 이바구를 까더니 웬일인가요. 진실은 혼자만의 것처럼…….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한 마디만 더 할께요. 당신의 글을 읽을 때도 이름을 들을 때처럼 목구멍이 근질거리는 이유는 뭔가요? 우선 깨달음 어쩌고 하면서 남을 가르치려는 걸보면 문학이라는 도금으로 자신을 극장안의 우상으로 만들려는 속셈이 엿보인단 말예요. 그거 웃기는 거 아닌가요? 당신만 못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면서 수필은 그래야 한다고 입버릇처럼 주절대잖아요. 또 겸손하기로 치면 더할 수 없이 군자처럼 보이는데, 따르는 뒷말에는 은근히 자신을 하늘에 매달고 있잖아요. 그거 표리부동이라고 하면 화내겠지요. 느림보라는 이름부터 그렇잖아요. 좀 더 솔직해져 보세요, 수필가 느림보님.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당신은 또 우리의 조상이 춘추시대 제(齊)나라 장공(莊公)의 수레 앞을 가로 막았다던 옛 이야기를 가지고 똥폼이니, 도끼 모양의 가소로운 다리니 뭐니 하면서 나를 욕보였지요. 정말 가소롭기 그지없어요. 누가 수레를 가로막았겠어요. 그냥 먹을 거 없나하고 거기 서서 두리번거렸겠지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나름대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당랑거철(螳螂拒轍)이니 하는 말을 만들어 놓고 지껄여댄 거지요. 이봐요 수필가님, 언제쯤 당신은 세계를 바라볼 때 그냥 세계 자체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을 중심으로 대상을 보지 말고, 대상을 중심으로 대상을 보는 법을 배워요. 우리 버마재비처럼 말이에요. 그렇게 세계를 보는 눈을 가져야 드디어 진정한 문학을 한다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오늘 아침은 가을 기운이군요. 한 이틀 내린 비가 더위를 쫓아버린 모양이에요. 이제 버마재비의 화려한 한 때도 서서히 뒷걸음질친다고 봐야겠지요. 당신도 이제 당신의 계절을 준비하세요. 버마재비 배터지는 거나 똥폼 잡는 거나 하는 남의 일은 걱정하지 말고 당신 그 알량한 간이나 잘 간수하세요. 그 나이에 겸손하지 못하게 배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면 어찌하려고요. 오늘 이 버마재비의 말을 두고 가시 달린 도끼 다리가 너무 껄끄럽다 하지 마세요. 당신 말대로 난 버마재비잖아요. 당신은 남의 글은 번번이 탓하면서 당신의 글을 탓하면 발끈하는 성미를 이 가을에는 좀 버리세요.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라.-

 

수필가 느림보님, 버마재비의 토악질도 대단하지요? 보잘것없는 세모대가리에도 들어 있을 건 다 들어 있고 나올 건 다 나오걸랑요. 고만 할게요. 마지막 인사나 할까요. 이 말이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문인들이 다 그러대요. 건필하세요. 사람들은 정말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요.

(2005. 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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