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버마재비 문답(自責)

傲慢의 生理 -버마재비의 의문-

느림보 이방주 2011. 4. 7. 14:16

傲慢의 生理

-버마재비의 의문-

 

 

- 수필가 느림보님 안녕하세요? 요즘은 글감도 많은데 그 잘난 펜을 꺾었나 보지요? 이 귀여운 버마재비에겐 눈길 한번 안 주시나요?

- ! 버마재비, 무슨 일이냐? 아직 春來不似春인데 목숨을 걸고 나왔냐? 오늘이 19도라고? 그러다가 갑자기 사방이 얼어붙는 수가 있느니라. 유식한 인간의 말을 믿고 너의 거처로 얼른 돌아가라. 나는 그래도 생각 깊은 수필가가 아니냐?

- 하하! 수필가님, 다르긴 다르시군요. 인간은 인류라는 동물의 생명이나 소중하게 여기는 줄 알았는데 버러지라고 모독하는 버마재비 목숨을 걱정하다니요. 진심인가요? 영 믿어지지 않아. 혹시 버마재비도 키워 돈을 살 생각은 아닌가요? 그러면 버마재비 공장이라도 짓고 당신들이 버러지라고 하는 우리네 곤충류를 잡아다 새끼를 치고 길러보시지 그래요? 축사에서 소를 기르듯이, 돈사에서 돼지를 기르듯이, 닭을 길러 달걀을 생산하듯이……. 아니 소공장, 돼지공장, 달걀공장에서 막 생산하듯이 버마재비 공장도 만들어 보시지요. 하긴 곤충 마을을 만들어 놓은 곳도 있더군요. 돈이 되니까. 돈을 따르는 것이 현대인의 생리 아닌가요?

- 버마재비야 왜 그리 꼬였냐? 인간을 온통 돈이나 밝히는 것으로 착각하지 마라. 그러면 사마귀라고 부를 테다. 오줌싸개라고 부를 테다.

- 여보세요. 수필가 느림보님, 아주 밟아 버리지 그러세요. 밟아 버리는 게 당신들의 생리 아닌가요? 수필가? 잘난 체하지 말고 자신을 돌아보세요? 당신 좋아하는 말 '自我省察' 있잖아요. 지난겨울 무슨 일로 이틀에 한 번씩 소 기르는 친구한테 전화를 했나요?

- ! 그거야 구제역이 창궐하니 걱정이 돼서 그랬지. 소를 한 400여 마리 기르거든.

-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수필가 느림보님 솔직히 말해 보세요. 그 친구의 뭐가 걱정이 되었나요? 재산 손실이 걱정된 건 아닌가요? 설마 소의 생명이 걱정스러웠던 것은 아니었겠지요?

- , 이 버러지 사마귀야. 그럼 뭐가 걱정이었겠냐? 400여 마리가 다 죽어봐라. 그 손해가 얼마냐? 아 생각할수록 무서운 일 아니냐?

- 거봐요. 수필가님, 고명하고 생각 깊으신 수필가님, 당신은 인간뿐 아니라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긴다면서요? 요전에 발표한 어느 글에서 나무의 숨결에서 우리의 들숨을 발견하고 우리의 숨결에서 나무의 날숨을 발견한다.’라며 고상한 척 했지요? 그랬던 사람이 소가 죽으면 손해가 얼마냐고? 그런 말이 나와요? 당신의 사고나 행동은 고상한 것이 아니라, 척하는 것이고, 그게 바로 을 가장한 게 아니고 뭐냐 말이야? 참 가소로운 위선자야. 인류라는 동물은…….

- 이 버러지야! 너 지금 뭘 말하려는 거냐? 넌 내가 그 옛날 당랑거철이란 고사를 만들어 주었던 장공만큼이나 관대한 줄 알고 있는 모양이구나. 까불고 있어. 내게도 너의 가소로운 당랑권법이 통하리라고 보냐? 이 무직한 등산화로 밟으면 너는 금방 배때기가 터져 을 마감하게 되는 줄을 왜 모르냐?

- 것 봐요. 금방 푸르르 화를 내는 걸. 그러면서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고? 한번이라도 친구네 목장에 갇혀 사는 400여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해 보셨나요? 수필가 느림보님. 산 채로 땅에 묻히는 소를 바라보는 노파의 피눈물이 돈 때문인 줄 아는 모양인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당신이 세모대가리라고 놀리는 사마귀 대가리로도 牛公들의 생명이 딱해서 이렇게 눈물이 괴어 디룩디룩하는 걸 보지 못합니까? 현명한 인간, 지혜롭다는 수필가님!

- 생명은 소중하지. 생명이 소중하니 걱정한 것 아니겠느냐?

- 인간들은 그저 소를 먹을거리로만 보잖아요? 푸른 초원에서 뛰어다니는 소떼의 영상을 보이고는 어떤 잘 생긴 연예인이 '청풍명월의 한우는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입니다.’ 어쩌고 하다가 노릇노릇 익어가는 꽃등심 그림을 보여 주면 침을 꼴깍 삼키는 게 당신 아니었나요? 살아있는 소떼를 보고 침을 삼키는 인간의 오만한 생리! 혐오감의 극치야.

 

- 수필가 느림보님, 당신은 문화를 소중히 여긴다면서요? 미래는 문화의 시대라면서요? 그래서 살처분 되는 소를 아무 意識도 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나요? 아니 저게 돈이 얼마야.’하면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입니다. 정말 치졸한 위선이군요.

- 이봐, 인간은 만물의 영장이잖아!

- 말 잘 했어요. 만물의 영장! 그래서 구제역에 걸린 소, 돼지,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린 닭, 오리를 구덩이에 처넣었나요? 모두 합쳐 일천만 고귀한 생명을 말이야. 덩치 큰 소는 안락사를 시켜 묻고, 돼지는 산 채로 구덩이에 동댕이쳐서 무지막지한 굴삭기로 묻어 버렸나요? 처참한 광경을 상상이나 해 보셨나요? 살겠다고 꽥꽥거리는 돼지를 보고도 당신들은 발버둥쳐 찢어지는 비닐만 걱정하고 있으니 非情한 버러지들은 바로 인간이 아닌가요?

- 그럼 어쩌란 말인가? 그냥 두면 구제역이든 조류인플루엔자든 더 퍼져 가는데…….

- 그렇게 생각이 없어요? 수필가 느림보님, 문화가 소중하다면서요. 처음 살처분할 때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는 천도재遷度齋라도 거행했으면 얼마나 좋았겠어요.

- 그래 맞아. 그래서 불교계에서 천도재를 지냈잖느냐?

- 그러실 줄 알았어요. 그 뒷북친 얘기 말입니까? 그걸 본심이라고 할 수 있나요? 정말로 생매장되는 일천만의 생명에 대한 경건한 합장이라고 할 수 있나요? 이것보세요. 진실을 글에 담으세요. 거죽만 보이지 말고 속마음을 보여 보란 말예요. 정말로 중의 탈을 쓴 인간이 不殺生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면 첫 희생 때 국가적 행사를 했어야지요.

- , 버마재비야 오줌싸개 같은 소리 하지마라. 소 몇 마리, 돼지 몇 마리 묻는 것을 무슨 천도재를 지내냐?

- 수필가 느림보님, 그런 사랑 없는 마음으로 글을 쓰니 모두가 위선이지. 이 버마재비 세모대가리 생각으로는 처음부터 축생이든 버러지든 생명이란 걸 소중하게 생각하는 생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어마어마한 생명이 땅에 묻히지 않았을 거란 말이지요. 인간들의 저급한 생리로도 소나 돼지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것을 조금은 깨달았을 테니까요. 그렇게 저질로 대처하고도 침출수나 걱정하고 있는 인간들이란 그게 바로 인간의 생리였던가요? 친구에게 전화나 해보시지요.

- 그랬지. 구제역으로부터 아주 무사히 해방되었다더라. 손해가 없었다니 얼마나 다행이냐? 정말 잘 되었어. 이제 소 값이 오를 테니 그 친구는 부자가 된 거야. 구제역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거지.

- 轉禍爲福? 할 수 없군요. 인간들의 깨어날 수 없는 生理에 우리는 그냥 꿈을 잠재울 수밖에 없군요. , 답답한 세상, 철벽 같이 막혀 있는 사고, 헤어날 수 없이 오만한 생리……. 만날 앉아서 은 돌고 도는 것이라고 염불하면서.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인간을 살처분할 날이 반드시 올 것을 왜 모르시나요. 인간도 아무런 儀式을 거행할 사이도 없이 마구 묻어버리게 될 날이 올 걸 왜 모르나요. 작가는 미래를 본다면서요. 인간은 역시 어쩔 수 없어. 그런 모습으로 오래오래 사시오. 傲慢生理를 어찌할거나. 

 

 

(2011. 4.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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