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이나 토끼에게 속은 호랑이가 어느 호숫가에서 토끼를 또 만났다. 이번에야말로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토끼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토끼는 호랑이를 두 번이나 속여먹었으면서도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아이 참 아저씨는 하필 제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할 때 나타나세요.”
욕심 많은 호랑이는 펄떡펄떡 뛰는 붕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붕어를 먼저 먹고 토끼까지 먹으면 시장기를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 놈이 물고기를 잡을 줄 아느냐?”
토끼는 한입거리도 안 되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의 칙살스러움에 치를 떨면서 커다란 돌멩이로 얼음에 구멍을 냈다.
“알다마다요. 그런데 내 꼬리는 너무 짧아 신통치 못해요. 아저씨는 꼬리가 길어서 담그기만 하면 붕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올 거예요.”
호랑이는 토끼가 낸 얼음 구멍에 꼬리를 깊숙이 담그고 물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꼬리가 무직해졌다. 토끼가 가르쳐 준 대로 꼬리를 힘껏 당겼다. 그러나 붕어가 올라오기는커녕 제 몸만 얼음판 위에 나뒹굴어졌다. 추운 날씨에 꼬리가 꽁꽁 얼어붙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깔깔거리는 토끼의 비웃음을 아련하게 들었을 것이다.
신묘년 토끼해를 맞아 전래 동화 중에서 토끼의 지혜를 드러낸 이야기 하나를 골라 보았다.
지난해는 부자와 강자들의 횡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하나의 예로 대형할인점이 동네 골목으로 들어오려고 영세 슈퍼마켓을 위협한 일이 있었다. 대형할인점이 골목으로 들어와 지점을 내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골목의 서민들은 처음에는 부자들을 욕하다가 결국 슬금슬금 대형할인점으로 발길을 옮겨버릴 것이다. 골목의 푼돈까지 챙기려는 부자가 얄밉기도 하지만, 좋은 물건을 동네에서 싼값으로 살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서민의 마음이다.
강자의 횡포는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에서도 드러났다. 특히 한미 FTA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우리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초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대국이 농산물 수입을 강요하고, 우리가 수출하려고 하는 자동차는 제 나라에서 규제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호랑이가 연약한 토끼를 보고 침을 흘리듯이, 얼음장 밑의 평화에 악의 꼬리를 담그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토끼와 같은 얄팍한 꾀를 내서 경제 대국을 골탕 먹일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온갖 지혜를 짜내어 위기에서 탈출하는 토끼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
전래 동화에 담긴 토끼에 대한 겨레의 인식을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약자의 편에 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야기에서 항상 토끼 편을 들었던 것은 우리 겨레의 성품이 순결했고 평화로운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토끼가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었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토끼의 빨간 눈을 명시(明視)라고 하는데 그래서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토끼의 두 귀는 크고 항상 쫑긋하게 서 있다. 그래서 숲 속에서도 자신을 위협하는 소리를 잘 들었을 것이다. 정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는 잘 보고 잘 들어야 세계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토끼는 부지런하다. 그래서 토끼의 시간은 묘시(卯時)이다. 이 시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활동하는 사람은 성공을 보장 받을 것이다. 또 토끼는 앞발이 짧아 비탈진 곳을 누구보다 빨리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상승을 의미한다. 선진국 진입이 목표인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다. 토끼는 영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약자이기에 항상 약자의 편이다. 선진국으로 온전하게 진입하려면 서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에 실려 있는 구토지설(龜兎之說)도 약자와 강자의 관계를 우의적이고 풍자적 수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김춘추는 토끼의 지혜를 배워 고구려라는 강자의 나라에 구금되어 있으면서도 슬기를 발휘하여 구금에서 벗어난다. 토끼가 거북의 꾐에 넘어갔다가 지혜를 발휘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남의 생명을 강탈하여 자신의 병을 고치려한 치졸한 강자의 참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춘추는 국경까지 마중 나온 김유신 장군의 품에 안기면서 따라온 고구려 군사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다시 보며 통일의 의지를 다진다.
올해는 주변의 강대국으로부터 더 많은 도전과 제재가 예상된다. 그들은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우리에게 호랑이나 용왕처럼 거세고도 끊임없는 위협을 가해 올 것이다.
한 사람의 지혜로운 전략가나 지도자에 의하여 조직 단체나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 토끼가 자신의 목숨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듯이 김춘추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지극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혜는 사랑이 제자리를 찾아야 나온다. 신묘년에는 우리의 모든 지도자들이 우리 강토에 들어온 호랑이나 용에게 이리저리 쫓기지 말고, 호랑이를 타고 산을 넘고, 용의 등에 앉아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2011. 1. 2.)
에세이 뜨락 | ||||
토끼의 지혜-이방주 " | ||||
|
두 번이나 토끼에게 속은 호랑이가 어느 호숫가에서 토끼를 또 만났다. 이번에야말로 주린 배를 달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토끼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토끼는 호랑이를 두 번이나 속여먹었으면서도 너무나 태연한 모습이었다.
"아이 참 아저씨는 하필 제가 물고기를 잡으려고 할 때 나타나세요."
욕심 많은 호랑이는 펄떡펄떡 뛰는 붕어가 눈앞에 아른거렸다. 붕어를 먼저 먹고 토끼까지 먹으면 시장기를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네 놈이 물고기를 잡을 줄 아느냐?"
"토끼는 한입거리도 안 되는 자신을 잡아먹으려는 호랑이의 칙살스러움에 치를 떨면서 커다란 돌멩이로 얼음에 구멍을 냈다.
"알다마다요. 그런데 내 꼬리는 너무 짧아 신통치 못해요. 아저씨는 꼬리가 길어서 담그기만 하면 붕어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올 거예요."
호랑이는 토끼가 낸 얼음 구멍에 꼬리를 깊숙이 담그고 물고기가 주렁주렁 매달려 나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꼬리가 무직해졌다. 토끼가 가르쳐 준 대로 꼬리를 힘껏 당겼다. 그러나 붕어가 올라오기는커녕 제 몸만 얼음판 위에 나뒹굴어졌다. 추운 날씨에 꼬리가 꽁꽁 얼어붙었던 것이다. 이쯤해서 깔깔거리는 토끼의 비웃음을 아련하게 들었을 것이다.
신묘년 토끼해를 맞아 전래 동화 중에서 토끼의 지혜를 드러낸 이야기 하나를 골라 보았다.
지난해는 부자와 강자들의 횡포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하나의 예로 대형할인점이 동네 골목으로 들어오려고 영세 슈퍼마켓을 위협한 일이 있었다. 대형할인점이 골목으로 들어와 지점을 내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골목의 서민들은 처음에는 부자들을 욕하다가 결국 슬금슬금 대형할인점으로 발길을 옮겨버릴 것이다. 골목의 푼돈까지 챙기려는 부자가 얄밉기도 하지만, 좋은 물건을 동네에서 싼값으로 살 수 있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도 서민의 마음이다.
강자의 횡포는 국가 간 자유무역협정에서도 드러났다. 특히 한미 FTA에서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지만 결과는 우리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었다. 초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경제대국이 농산물 수입을 강요하고, 우리가 수출하려고 하는 자동차는 제 나라에서 규제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였다. 마치 호랑이가 연약한 토끼를 보고 침을 흘리듯이, 얼음장 밑의 평화에 악의 꼬리를 담그듯이 말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토끼와 같은 얄팍한 꾀를 내서 경제 대국을 골탕 먹일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그래도 우리는 온갖 지혜를 짜내어 위기에서 탈출하는 토끼의 지혜를 본받아야 한다.
전래 동화에 담긴 토끼에 대한 겨레의 인식을 살펴보면 우리가 얼마나 평화를 사랑하고 약자의 편에 서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야기에서 항상 토끼 편을 들었던 것은 우리 겨레의 성품이 순결했고 평화로운 삶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토끼가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었다는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토끼의 빨간 눈을 명시(明視)라고 하는데 그래서 달나라에서 방아를 찧을 수 있었는지 모른다. 토끼의 두 귀는 크고 항상 쫑긋하게 서 있다. 그래서 숲 속에서도 자신을 위협하는 소리를 잘 들었을 것이다. 정보가 우리의 삶을 지배하는 이 시대에는 잘 보고 잘 들어야 세계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다.
토끼는 부지런하다. 그래서 토끼의 시간은 묘시(卯時)이다. 이 시간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활동하는 사람은 성공을 보장 받을 것이다. 또 토끼는 앞발이 짧아 비탈진 곳을 누구보다 빨리 오를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은 상승을 의미한다. 선진국 진입이 목표인 우리에게 시사점이 많다. 토끼는 영특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약자이기에 항상 약자의 편이다. 선진국으로 온전하게 진입하려면 서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삼국사기 김유신전에 실려 있는 구토지설(龜兎之說)도 약자와 강자의 관계를 우의적이고 풍자적 수법으로 담아내고 있다. 김춘추는 토끼의 지혜를 배워 고구려라는 강자의 나라에 구금되어 있으면서도 슬기를 발휘하여 구금에서 벗어난다. 토끼가 거북의 꾐에 넘어갔다가 지혜를 발휘하여 다시 뭍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장면에서 남의 생명을 강탈하여 자신의 병을 고치려한 치졸한 강자의 참담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김춘추는 국경까지 마중 나온 김유신 장군의 품에 안기면서 따라온 고구려 군사들에게 이러한 모습을 다시 보며 통일의 의지를 다진다.
올해는 주변의 강대국으로부터 더 많은 도전과 제재가 예상된다. 그들은 선진국으로 들어서는 길목에 있는 우리에게 호랑이나 용왕처럼 거세고도 끊임없는 위협을 가해 올 것이다.
한 사람의 지혜로운 전략가나 지도자에 의하여 조직 단체나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 토끼가 자신의 목숨에 대한 절실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듯이 김춘추는 조국과 민족에 대한 지극한 충성심을 가지고 있었다. 지혜는 사랑이 제자리를 찾아야 나온다. 신묘년에는 우리의 모든 지도자들이 우리 강토에 들어온 호랑이나 용에게 이리저리 쫓기지 말고, 호랑이를 타고 산을 넘고, 용의 등에 앉아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하는 한해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청주 출생
▶'한국수필' 신인상(1998)
▶충북수필문학상(2007)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회원
▶내륙문학회장 역임
▶수필집 '축 읽는 아이', '손 맛', 칼럼집 '여시들의 반란'
▶산남고등학교 교사
'느림보 창작 수필 > 버마재비 문답(自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프지 않은 청춘 (0) | 2011.12.19 |
---|---|
傲慢의 生理 -버마재비의 의문- (0) | 2011.04.07 |
낙가리 포도밭 사람들 -버마재비 의문- (0) | 2009.12.12 |
열린 수필 (0) | 2007.02.07 |
수필가 느림보에게 -버마재비의 의문- (0) | 2005.08.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