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단발머리를 좋아한다. 단발머리는 까맣게 윤기가 자르르 흘러야 더욱 예쁘다. 왼쪽
눈썹의 한 번 꺾인 곡선을 기준으로 하여 얌전하게 가르마를 타고 귀 바로 위에 예쁜 핀을 꽂아서 엉킴 없이 빗은 단정한 머리면 족하다. 가르마도
없이 앞머리로 이마를 덮은 머리는 너무 촌스럽다. 가르마가 있어도 너무 길어서 저고리 깃을 넘어서 어깨까지 늘어뜨린 머리는 이미 단발머리의
청순함을 잃어버려서 싫다.
초등 학교 6학년이나 여중 1학년 또래의 소녀가 저고리 깃에 닿을 듯 말 듯한 옆 단발을
하였다면 멀리서 보아도 눈빛이 초롱초롱한 천사로 착각한다. 내가 초등 학교 다니던 시절에 여학생들은 모두 단발머리였다. 초등 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70명중에서 절반 정도가 여학생이었다. 그 중에서 점심을 굶지 않는 아이는 아마 몇 집 안될 것이다. 동네마다 한 집씩 있는 여름에도
쌀밥 먹는 집 딸, 면장 따님, 방앗간집 딸 등은 옆단발을 했다. 검은색 초등 학교 교복에 하얀 칼라를 빳빳하게 풀을 먹여 세우고 단발머리를
세련되게 나풀거리며 다녔다. 나는 그 아이들이 그렇게 예뻐 보였다. 가난하였지만 반장이었던 나는 그 아이들과 통하는 유일한 놈이어서 아이들의
시기를 받았다.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앞머리가 눈썹에 닿을 정도의 앞단발을 하였다. 이마가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기도 하고 뒷목덜미 위를 면도칼로
밀어 흉하기도 했지만 그런 대로 괜찮아 보였다. 그 머리는 대개 남자아이들이 가는 동네 이발소에서라도 다듬은 머리이기 때문이다. 이발소에서는
보리 수확 때 보리쌀 한 말만 내면 온 식구를 일년 내내 이발을 해 주었다. 그런데도 형편이 안되는 집이 많았다. 그래서 어머니가 대접이나
종그래기를 머리에 씌워 놓고 가위로 보이는 부분만을 깎아 내기도 하였다. 그 때도 그 머리는 놀림감이 되었다. 그런 머리는 아직도 초등 학교
졸업 사진을 보면 그냥 거기에 역사처럼 남아 있다. 그래도 그들은 모두 천사였다.
단발머리는 교복을 입어야 어울린다. 교복을 단정히 입고 가방을 멘 여고생이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거리를 걷는 것을 보면 아직도 가슴이 설렌다. 요즈음은 교복이 많이 세련되고 고급화하였지만, 옛날 여학생 교복은 모두 어두운 색깔에
하얀 칼라를 달았다. 우리는 눈부시게 흰 칼라와 단발머리를 보고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모른다. 골목에서 갑자기 하얀 칼라와 마주치면 당황하고
공연히 가슴 두근거리며 얼굴을 붉히던 기억은 40대면 누구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남자만 다니는 학교인데다가 학교 근처에
여학교라고는 없는 중학교를 다닌 나는 한 울타리 안에 여학교와 같이 있는 고등학교에 진학하여 다른 애들보다 더욱 심했다. 우리가 고등학교에
진학했을 때쯤 해서는 머리 모양 가지고 생활을 짐작할 정도는 아니었다. 여학생들은 모두 똑같이 단발머리였다. 혹 우리 전통 식으로 길게 땋아
늘인 애들도 보였으나 내 눈에는 훌륭해 보이지 않았다. 나풀거리는 단발머리가 더욱 아름다워 보였다. 얌전하게 가르마를 타고 한 올도 헝클어지지
않은 머리는 항상 잘 감아 빗어 청결하기 때문에 바람에도 잘 날렸다. 멋을 조금 내는 학생들은 머리에 꽂는 검은 핀을 세워 꽂아서 발그레한 볼이
드러나고 심하면 귀까지 하얗게 드러났다. 걸음을 걸을 때마다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나풀대었다. 친구들은 그런 애들은 끼 있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그래도 그 머리가 나는 좋았다.
단발머리는 교복에만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다. 청바지에 굽낮은 구두를 신고 한아름 책을
안은 채 시내버스를 기다리는 여대생의 단발머리도 아름답기는 마찬가지다. 내가 대학에 입학하였을 때 여학생들은 단발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했는지 긴
머리가 유행이었다. 산발로 길게 늘여 등뒤까지 덮인 머리를 가끔씩 쓸어 넘기는 멋이 있기는 하였지만 단발머리만은 못하였다. 고등학생처럼 화장기
없는 깨끗한 얼굴에 여고 때 그대로 단발에다가 하얀 블라우스만 입던 여학생이 있었다. 한 학년 아래인 그 여학생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해도 하루가
즐거웠다. 그는 여고생처럼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캠퍼스를 누볐다. 그리고 늘 하얗게 웃었다. 그야말로 선녀였다. 지금도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여대생을 보면 그녀인가 하고 놀란다.
짧은치마에 부츠를 신고 엷은 화장을 한 직장 여성의 단발머리는 보글보글 볶은 퍼머넨트
머리보다 더 미쁘고 친밀감이 간다. 그런 여성의 미소는 겉으로는 얕지만 속으로는 깊이 있는 진솔함의 표현이다. 한 번도 화학 약품이나 불 맛을
보지 못한 중년 여성의 단발도 청순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머리는 40을 넘어도 싱싱하다. 검고 올이 굵고 숱이 많으며 윤기가 흐른다. 그렇기
때문에 얼굴에는 화장기가 없어도 20대 처녀보다 싱싱하고 50대 아주머니보다 원숙해 보인다. 젊어서 머리에 돈을 많이 들인 여성일수록 많이
빠지고 탈색되고 올이 가늘어지며 끄트머리가 부서져서 40대가 되면 진짜 40대의 모습을 하게 마련이다.
내가 여학교 선생이 되었을 때 학생들의 머리는 자율화되어 각양 각색이었다. 그런 중에도
단발머리가 많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면 나는 고등학교 때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아이들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가능하면 우리 반 아이들만큼은
단발머리를 많이 하도록 은근히 유도하는 욕심을 부리기도 하였다. 그래도 따라오는 아이들은 흔하지 않았다. 도리어 요즈음에는 아이들 머리를 유심히
보면 그냥 생머리가 아닌 아이들이 많다. 노랗게 염색한 아이도 있고, 코팅퍼머, 스트레이트 퍼머 등 다양하게 손을 댄다. 어떤 아이는 일요일날
엄마가 해주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단발머리가 우리 문화는 아니라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물도 들이지 않고 태어난 그대로의
머리인 단발머리는 청순한 아름다움 그대로이다. 요즈음 여성들은 머리를 지나치게 다듬는다. 심지어 우리 본래의 머리색인 까만색을 거부하고 대부분
노랗게 물들이고 다닌다.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제일 먼저 하는 일이 염색이다. 고등 학교 다니는 동안 얼마나 검은머리가 지겨웠으면 그랬을까 하고
이해도 하려고 하지만, 검은머리가 우리 민족 본래의 머리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긴 머리를 한 학생은 어쩔 수 없지만 염색한
아이들에겐 '너희 아버지를 거부하고 어머니를 욕되게 하는 불효 막심한 놈'이라고 심하게 꾸중한다. 나의 지나친 결벽인지 모르지만 올림픽 결승에
올라간 우리 여자 선수의 노란 머리를 보고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단발머리는 검은 머리여야 어울린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에게 된장과 김치를 먹이고, 숭늉을
마시게 해야 한다. 그래서 검은머리임을 자랑하게 해야 한다. 언젠가는 서양 아이들이 노랑머리를 검게 염색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우리처럼
모두 단발머리를 본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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