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디아(Dia)를 따라 가는 길

느림보 이방주 2022. 5. 23. 00:08

디아(Dia)를 따라 가는 길

 

여기 길이 있다. 길은 바로 내 발아래 있다. 나와 흙이 처음 만난 발자국이 모여 길이 되고, 내 걸음걸이를 따라 길 모양이 생겨난다. 공동체의 관습이 문화를 형성하듯이 걸음걸이에 따라 길이 이루어진다. 길은 우리네 삶의 흔적이고 곧 민족의 역사이다. 의미 있는 역사로 남은 길에는 진리가 담겨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망설이지 않고 그 길을 따라 간다.

힌두인들의 성지인 바라나시를 여행한 적이 있다. 바라나시를 가보지 않고 인도 여행을 말할 수 없다고 한다. 나는 바라나시 화장 가트를 보지 않고 죽음의 성스러움을 말할 수도 없다고 말하고 싶다. 갠지스 강가 화장터인 다샤스와메드 가트(Dashashwamedh Ghat)에서 행하는 아르띠뿌자(Arti Pooja)를 참관했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아르띠뿌자는 일출과 일몰 시간에 행해지는 힌두교의 종교 의식이다. 힌두교의 사제인 브라만이 계단의 맨 위에 일렬로 놓은 우산 모양의 차타리스(Chataris) 아래에서 대중을 신의 길로 인도한다. 브라만은 우주의 다섯 가지 요소인 공간, 바람, 불, 물, 땅을 종소리, 연기, 불, 부채를 이용해 상징적으로 형상화한다. 연기가 피어오르고 코브라 모양의 향로에 담은 불을 흔들면서 베다인지 주문인지를 외는 소리가 갠지스 강을 따라 허공으로 울려 퍼지면, 곧 신이 내려올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경건하고 엄숙한 진언(眞言 mantra)에 신도가 아니라도 빠져들 것만 같았다.

몽롱한 불빛 속에 연기가 하늘하늘 피어오르는 분위기에 취한 대중은 디아라고 하는 작은 꽃불을 강물에 띄운다. 자신도 감각하지 못하는 기원을 담아 보낸다. 디아는 피리 소리인지 날라리 소리인지 아물아물하는 갠지스 강을 따라 흘러간다. 나도 디아를 띄웠다. 디아(Dia)는 매리골드로 보이는 몇 송이 꽃으로 감싸 안은 촛불을 실은 배 모양의 작은 바구니이다. 작지만 아주 예쁘고 정성을 담아 만들었다. 디아를 물에 띄울 때는 신도도 아니면서 가지런한 마음이 된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그런지 서두르지도 부딪치지도 않고 천천히 흘러간다. 어둠 속에 깜빡이는 꽃불은 질서랄 수도 무질서랄 수도 없이 갠지스 강을 따라 깜빡깜빡 흔들리며 떠내려간다. 히말라야에서 내려온 별이 떠가는 모습니다. 디아는 진리의 세계로 나를 건네주는 신의 불빛이다.

화려하고 거대한 행사는 매일 일상처럼 행해진다. 참여하는 대중이 엄청나다. 힌두인들은 평생 한 번만이라도 바라나시 다샤스와메드 가트의 아르띠뿌자에 참례해보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날마다 두 차례씩 아르띠뿌자에 참례하고 죽음의 호텔에서 죽음을 맞고 이곳 화장 가트에서 불에 태워져 우주로 날아가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선지 이곳으로 모여드는 힌두인들이 골목에 가득하게 도시를 메운다.

아르띠뿌자가 거행될 시간이 임박하면 가트로 가는 골목은 인파가 들끓는다. 도로는 차도인지 인도인지 구분할 수 없다. 좁고 꾸불꾸불한 길에 사람과 차가 뒤섞인다. 사람들, 릭샤, 툭툭이, 오토바이, 자전거, 삼륜차, 차량이 뒤섞여 뒤죽박죽이다. 사람들 사이에 가끔 소도 느릿느릿 함께 한다. 모두가 같은 중생이다. 개도 따른다. 경적소리, 아우성으로 골목은 터질 것 같다. 꽉 막혀버릴 것 같지만, 잔잔한 모래 위에 물이 흐르듯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거대한 하나의 길짐승처럼 꿈틀거리며 앞으로 나아간다. 사람들도 오토바이도 릭샤도 갑자기 대드는 듯하다가 묘하게 멈칫 선다. 경적 소리도 떠드는 소리도 시끄럽긴 해도 신경질을 내지는 않는다. 가만히 보면 걷는 사람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고 제 갈 길을 간다. 발 달린 중생이나 바퀴 달린 것들이나 얽혀서 한 몸이 된다. 그들의 가슴엔 방금 디아에 담아 신에게 보낸 소망만 가득하다. 그냥 꽃불만 따라간다. 나는 이 신비스런 모습에 연신 탄성을 올렸다. 길이 있기에 길 위의 질서가 있고 질서가 있기에 자신의 길을 찾아간다. 이것이 힌두인들이 진리를 찾아가는 문화이다. 나도 잠시 힌두인이 된다.

아스라이 먼 우주에서 바라나시를 내려다보면 그냥 하나의 유기체가 흘러가는 모양으로 보일 것이다. 갠지스 강물이 흐르듯 그렇게 흘러가는 모습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네 혈관에 피가 이렇게 흐를까. 빨갛게 한 줄기로 보이는 피도 따지고 보면 수많은 요소들이 뒤섞여 부딪치고 소리 지르며 흐를 것 같다. 그러나 혈관은 부딪치거나 멈추어 서지 않는다. 그냥 하나처럼 일상이 되어 흐른다.

힌두인들은 하나의 진리로 산다. 신에게 가는 길은 그들이 찾아낸 진리이다. 붓다는 자신의 가르침은 진리가 아니라 ‘진리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마하트마 간디도 ‘신이 진리가 아니라 진리가 신이다. (Truth is God)’라고 했다. 신에게 가는 길은 앞서려고 다툴 필요가 없다. 먼저 가는 이에게 소리쳐 멈추게 할 이유도 없다. 더 좋은 길을 찾으려 곁눈질 할 일은 더더욱 없다. 그냥 가면 되는 길이 진리의 길이다. 힌두인들은 생각 없는 중에 더 깊은 생각이 있고, 질서 너머에 질서가 있고, 교양을 초탈한 교양을 지닌 것으로 보였다. 마치 우리네 혈관에 흐르는 피가 한 번도 비틀거리지 않고 온몸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오듯이 문명 너머의 문명으로 길을 만들어 간다.

힌두인들은 한 마음으로 디아를 따라 길을 간다. 디아는 신의 말씀이고 진리의 세계로 나를 건네주는 불빛이다. 그것은 생각 없이 반복하여 사소한 일상이 되듯이 몰두하거나 곤두세우지 않아도 저절로 실행되는 교양을 넘어선 교양이다. 그들이 작지만 큰 발자국으로 수천 년 동안 만들어온 지선(至善)의 길이다. 작지만 꽃이 에워싸고 있기에 큰 불빛인 디아는 그 길을 가고 힌두인이 그 길을 따라 강을 건넌다. 강 건너 새로운 길에 진리가 있고 결국 신을 만난다. 진리는 아름다운 질서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부딪침이 없다.

나도 잠시 작은 불빛을 따라본다. 길을 통하여 세계가 내게 다가오고 나는 다시 세계로 나아간다.

(2022. 5.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