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집 자세히 읽기>
관계의 지혜를 통하여 존재 방식을 발견함
최 종, 《온종일 비》 (문예바다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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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은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삶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호소하고 해결하는 지혜를 발견하는 과정에서 미적 울림을 주는 언어예술이다. 문제 해결의 지혜는 진실에 가치를 두는 삶의 진리를 말한다. 곧 문학은 인간의 삶과 존재방식에 대한 진실성을 추구하는데 목적을 둔다고 말할 수 있다. 문학 애호가들은 그렇게 찾아낸 진리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수필문학은 진리의 가르침대로 살아온 체험의 기록이며 일상에서 발견한 삶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다.
최종 수필가는 1941년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서 2020년 팔순에 수필집 《온종일 비》를 상재했다. 이미 2018년에 수필집 《깨갱》을 출간한 바도 있다. 법원 고위직 공무원으로 대법원 총무국장, 사법연수원 사무국장, 법원행정처 법정심의관으로 요직을 두루 거치고 공직을 마감했다. 은퇴 이후에는 2016년 『월간문학』에서 신인상을 받고 수필가로 문단에 올랐다. 대표에세이문학회,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으로 활발하게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다. 생물학적으로 노년일지 몰라도 작품집이나 문학 활동으로 보여주는 그의 모습은 문단의 청년이다.
최종 수필가는 작품집으로 처음 만났다. 작가와 일면식도 없는 상태에서 서평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편한 마음으로 객관적인 글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다보면 머리와 수염이 허연 노인이 집 앞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서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었다. 인도가 참선의 나라라서 그런지 몰라도 사색에 잠긴 그들의 모습에서 노철학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이 앉아서 참선하는 철학자라면, 우리의 노년은 걸으며 사색하는 철학적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최종 수필가의 두 번째 수필집 《온종일 비》를 정독하고 그의 프로필 사진을 대하는 순간 그에게서 걸으며 사색하는 철학자의 모습을 그릴 수 있었다.
영국의 수필가이며 비평가인 웰터 페이터(W. H. Pater 1839~1894)는 수필은 문학과 철학 사이에 있다고 말했다. 수필은 대상이 되는 체험과 사실을 철학적으로 인식하고 해석하여 문학적으로 형상화해야 된다는 말로 이해한다. 첫 수필집 《깨갱》도 그렇지만 두 번째 수필집 《온종일 비》는 철학적 인식과 문학적 형상을 발견할 수 있어서 반가웠다. 《온종일 비》는 은퇴 이후에 관계의 지혜를 통하여 존재 방식을 발견한 일상의 철학을 문학으로 승화시킨 작품이라 규정할 수 있었다.
《온종일 비》는 총 60편의 수필을 10편씩 6부로 나누어 실었다. 작가는 어떤 기준으로 분류했는지 알 수 없지만, 1부는 노년의 회한과 치유, 2부는 관계의 해석과 삶의 개념, 3부는 관계와 정(情)의 거리, 4부는 존재의 모순과 융화에 의한 모순의 해결, 5부는 존재와 그리움, 6부는 지혜로운 존재의 방식으로 나눈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노년의 인간관계나 사회 역사에서 존재하는 방식을 관계를 이해함으로써 찾아가는 지혜가 전 작품에 배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2
노년이란 무엇일까? 노년은 대개 생리학적 노화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회나 국가가 노년기라 규정해도 자신을 노년이라 수긍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들은 직장에서 은퇴하여 가정으로 돌아갔을 때 드디어 노년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은퇴와 동시에 제 2의 삶을 설계하여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며 변화를 시도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저 여생이나 즐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어서 노년의 모습에 개인차가 있다.
최종 수필가는 머리말에서 ‘나의 시간은 앞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뒤로 되돌려진다. 글을 쓰다가 갑자기 막막한 숲속을 헤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면 의식의 저편에서 쏟아지는 폭우가 그치지 않았다,’라고 고백한다. 은퇴 이후에 생리학적 노년을 잊고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모습이다. 변화의 욕구를 주체할 수 없는 폭우에 비유하여 넘치는 활력을 토로하고 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 꿈을 행동으로 옮긴다. 그것이 변화이다. 변화로 얻는 열매는 새로운 꿈을 잉태한다. 이것이 존재하는 방식이다. 그의 활력 넘치는 존재 방식은 백발 아래 성성한 눈빛으로 드러난다. 이른바 백발동안이다. 노년의 꿈은 피부색 고운 백발동안으로 드러난다.
폭풍우가 되어 쏟아진다는 노년의 꿈이라 해도 치장하여 수다스럽게 설레발치지 않는다. 너무 절절하면 조사 없이 단어만 튀어나온다고 한 그의 말대로 그의 글은 전보처럼 짧은 문장이다.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라고 한 공자의 경계처럼 무늬만 요란하여 본질을 놓쳐 겉만 화려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지 않는다. 그의 문체처럼 그의 존재 방식도 꾸밈없이 간결하리라고 생각한다.
간결하고 명료함으로 노년의 변화를 가져오는 삶의 방식은 작품 곳곳에서 보인다. 우선 늙음에 대하여 작품 <쑥대머리>에서 간결하게 정의하였다. ‘늙는다는 것은 회한의 계절에 익숙해져 간다는 뜻이다. 자글자글 끓어오르던 욕심은 사그라졌다.’라면서 사그라지는 욕심을 고백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욕심이 사그라진 것이 아니라 욕구나 꿈으로 환치되어 이글이글 끓어오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이 나에게 이 가을 저녁에 노래에 빠져들게 한 것은 지금을 사랑하며 만족을 얻으라는 뜻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현실에 대한 사랑이라고 하여 꿈을 포기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프로이드와 함께 정신분석학에 입문한 에릭슨Erik Erikson은 노년기를 자아통합의 시기라고 하면서 인생을 돌아보며 자신의 정체감을 새롭게 정립하는 과정이라고 했다. 이러한 정신적 작용을 자아통합감이라 하는데 자아통합감이 정립된 노년은 성숙함을 보이고, 과거의 생활유형을 수용하여 평온한 마음을 가지며 자아실현을 계속하면서 부딪치는 섭리를 기꺼이 받아들인다.
자아실현의 노력을 계속하는 모습은 <팥빙수를 위하여>에서 엿볼 수 있다. 부부는 점심 외식을 하고 시원한 팥빙수를 먹기로 한다. 팥빙수가 목구멍으로 시원하게 넘어가는 느낌을 그리면서 뙤약볕 아래 더위의 고통을 견딘다. 온몸이 물에 젖은 듯 땀을 흘리며 드디어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달콤한 팥빙수를 먹을 수 있었다. ‘얼얼해진 입안에서 녹아내리는 얼음물을 삼켜보는’ ‘아삭아삭 씹히는 얼음 알갱이’의 팥빙수 맛의 진수에 도달한다. 갈증을 참으며 뜨거운 강변도로를 걷는 것은 환상적인 팥빙수를 먹기 위한 작업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 세상을 사는 것은 팥빙수를 위하여 흔들리는 철계단을 오르는 일과 같다고 그는 말한다. 환경에 지배당하는 수동적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성찰하고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빛나는 존재이다. 에릭슨이 말한 자아통합감이 정립된 노인의 존재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팥빙수는 그가 고위직 공무원으로 은퇴하고 수필창작교실에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수필가로 등단하여 멋지게 살아내는 두 번째 삶이다.
<이발 후기>에는 불통의 현상을 몰고 온 자신을 되돌아보고 있다. 사실 소통도 없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는 가슴을 가질 수 있겠는가. 이발을 하고나서 자신의 요구대로 하지 않은 미용사를 원망한다. 자신의 의사를 미용사에게 정확히 전달하지 않은 상황을 ‘소통은 먼저 소통하려는 사람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면서 ‘상대방의 편애적 성향을 존중해 주지 않으면서 소통을 말하는 것은 획일적인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전형적인 불통의 자세’라고 규정한다. 소통은 결국 관계에서 온다는 암시이다. 서로 소중하게 여기는 관계의 정립이야말로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인간관계를 돈독하게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관계가 돈독해지면 자신을 돌아보고 이발 후의 못마땅함 같은 찝찝한 마음을 개운하게 치유해 줄 것이다.
3.
관계의 해석으로 존재의 방식을 정하고 아픔의 치유를 주제로 한 작품으로 <화인火印>이 있다. 손등의 작은 반점이 젊은 날의 기억을 소환한다. 화인은 젊은 시절 직장 동료로부터 이유 없이 담뱃불 공격을 받아 덴 자국이다. 육신의 반점으로 자신을 공격했던 ‘김형’이라는 선배의 만행을 원망했다.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짙어가는 육신의 반점을 보면서 승진 시험에서 계속 떨어지는 그를 무시했던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의 반점은 옅어진다.
손등의 반점은 교만의 화인火印이었다. 겸손으로 위장된 단수 높은 교만의 표증이었다. 나이 들면서 마음대로 지껄이며 말이 많아졌다. 말을 생략하려 들면 그럴수록 이 이야기만은 꼭 해야 한다고 앞 다투어 말이 튀어나왔다. 거리낌 없는 사고와 생활방식에 젖어들게 되었고 그런 나를 통제해 줄 어떤 장치도 없었다. 근거 없는 자만에 빠져 있는가 하면, 독선과 아집에 사로잡혀 고집 센 늙은이가 되어 갔다. 반점은 이를 볼 때마다 진지하게 자기 성찰을 해보라 말하고 있었다.
관계는 인간관계 말고도 역사와의 관계라든지, 사회와의 관계 등 우리네 삶에 매우 다양하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인간관계는 수직적 수평적 관계, 가족관계, 친구관계, 연인관계, 우호적 적대적 관계 등 매우 다양한 양상으로 살펴볼 수 있다. 알프레트 아들러Alfred Adler는 인간관계는 행복의 근원이자 아울러 삶의 문제를 야기하는 갈등의 근원이 된다고 말했다. 사회에서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 친구 관계, 사랑 관계 등으로 가면 갈수록 인간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게 된다고 설명했다.
<화인火印>에서 담뱃불 공격을 해온 인물은 동료이면서 선배관계이므로 수평적 관계이면서 상하관계로 이해할 수 있다. 동료이면서 동시에 경쟁적 관계이므로 우호적으로 느낄 수도 있지만 적대적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작가는 ‘김형’에 대해 선배로 여겼지만 김형은 작가에게 적대감을 가졌다. 승진 시험에서 계속 떨어졌기에 열등의식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다. 그는 작가를 아랫사람으로 복종을 원했지만 작가는 그럴 이유가 없다. 그는 자신의 열등의식을 깨닫지 못했고 작가는 자신의 교만함을 깨닫지 못하고 반점을 볼 때마다 김형을 탓했다.
작가는 나이 들어 화인이 짙어지면서 자신에게서 교만을 발견한다. 자신의 교만을 발견하면서 ‘김형’과 관계의 의미를 다시 새기게 되는 것이다. 육신의 화인을 정신적 화인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순간 미움의 감정은 치유된다. 이 작품은 노년의 통합적 자아정체성이 정립되면서 관계를 다시 인식하게 되고, 새로운 관계의 인식에서 치유를 가져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일상에서 아주 오래 전에 겪은 체험의 기억을 소환함으로써 하나의 작품이 탄생하였다.
4
삶의 문제는 종종 존재의 모순에서 기인한다. 존재의 모순은 간단히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서는 현상과 본질의 모순 관계를 통하여 생각할 수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현상과 본질이 하나 되기를 원하지만 그렇지 못해 갈등을 느낀다. 우리가 인식하는 ‘有’라는 개념은 결코 ‘有’가 아니라는 점이다. 작가는 작품 <짧은 시간의 가치>에서 존재의 모순에 대한 고민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내게 주어진 시간 안에서 무엇을 해야 가장 가치 있는 일인지, 우리는 한마디로 말하기 쉽지 않다. 삶의 가치는 어려서부터 인격 형성 과정에서 정립된다고 한다. 순간순간은 자신의 가치관이 만들어져 가는 과정이다. 처한 환경과 능력과 감성, 개성에 따라 사람마다 가치를 보는 개념은 각각 다르다. 어떤 일을 하든지 세상에서 선한 일에 몰두하는 사람치고 가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세상을 살면서 어느 때 어느 순간이라도 한번은 자신의 존재가치가 드러날 수 있는 시간이 존재한다고 한다. 커다란 업적은 쌓지 않더라도,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것이 더 위대하게 보이는 때가 있다. 참으로 빛나는 시간들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존재의 모순에 대한 고민과 아울러 어떻게 모순을 극복하고 ‘빛나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담겨 있다. 그리고 결론으로 현상적으로는 보잘것없지만 본질적으로 더 위대한 시간을 갖는 것이라 규정하였다. 위대한 시간이란 모순을 극복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한 시간을 갖는다 해도 결국은 완전한 극복은 어려울 것이다. <헌 양말>에서 ‘세월에 부대끼면 무엇이든 닳아지고 망가진다.’면서 누구를 탓할 게 없다는 것을 헌 양말이 말해준다고 한다.
존재의 모순을 철학적으로 깊이 있게 해석하기보다 생활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불가에서 말하는 인생 팔고八苦를 들 수 있는데 이것이 곧 존재의 모순이다. 팔고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고통 이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이나 좋아하는 모든 것과 헤어져야 하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싫어하는 물건이나 증오스런 사람을 만나야 하는 원증회고怨憎會苦, 절실하게 구하는데도 얻어지지 않는 구부득고求不得苦도 있다. 마지막으로 오온성고五蘊盛苦가 있는데, 오온으로 일컬어지는 안이비설신眼耳鼻舌身의 점점 거세지는 감각적 욕망을 다스리기 어려운 고통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통을 해결하는 지혜를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
표제 작품인 <온종일 비가 왔다>에서 작가는 비가 내리는 날 산책길에 나선다. 안개비 속에서 만난 가게 문을 여는 할아버지의 구부정한 허리와 흩날리는 흰 머리칼, 뱃살이 홀쭉하게 빠진 깡마른 강아지, 강아지에 이끌려 걸어가는 사나이의 힘겨운 걸음걸이, 중국집 여주인의 이기적인 태도, 아무것도 기다릴 게 없다던 기억 속의 문 노인에게서 삶의 고통을 발견한다. 모두가 존재의 모순이다. 그래서 멍한 마음이 된다. 작가는 비를 맞아 선명해진 운동장 트랙이나 쾌적함에서 오히려 쓸쓸해진다. 지난 시절 숨 가쁘게 달려온 전장을 떠올린다.
기다릴 게 없는 삶에서 절망하고 외로운 결핍을 생각하며 결핍을 하소연할 친구를 그리워한다. 고독이다. 고독은 그리움을 부른다. <하얀 도라지꽃>에서는 60년 전 고교 1학년 때 친구 민이의 누나를 새삼 그리워한다. 존재도 알 수 없고 만날 수도 없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다. 작가는 ‘세월은 나에게 아름다운 기억만을 남겨놓고 달아나 버렸는데, 생각의 저편에서 잠들었던 것들이 깨어나 찬연히 빛나고 있다.’고 하얀 도라지꽃 같은 누나에 대한 그리움을 고백한다. 이 모두가 삶의 고통이고 존재의 모순이다.
이러한 존재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작가는 첫 수필집 《깨갱》의 머리말에서 ‘바람이 불어올 때가 많았다. 가슴이 잔잔할 때는 드물었다.’면서 젊은 날을 회고한다. 그러나 지금은 바람 한 점 없는 담담한 마음으로 손을 펼 수 있다고 했다. ‘늙어가는 세월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지 않았다.’면서 노년의 모순을 극복하고 융화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이러한 극복의 방법은 작품 <헌 양말>에서 구체화된다.
청년시절, 꿈과 현실의 괴리를 보면서 모든 것은 모순덩어리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다. 말도 되지 않는 투정도 받아주시던 어머니. 어머니 앞에 나는 항상 커다란 모순이었다. 그 모순을 융화시켜 주고 내게 닥친 어쩔 수 없는 부조화를 조화롭게 이끌어 주는 힘이 어머니의 사랑 안에 있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일체만법이 다 마음에서 일어난다는 말이다. 한 마음이 일어나면 다른 마음이 일어나고 그 마음에 의해서 다른 마음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작가는 여기에서 ‘세상 일 부조화의 모든 것은 내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는다. 결국 모순을 융화시켜 해결하는 것은 어머니처럼 끊임없는 사랑에 있다는 지혜를 얻는다. 사랑을 전제로 관계를 해석하는 것이 모순 극복의 지름길이다.
5
문학은 대상에 대한 인식과 철학적 해석을 형상화하여 인상적으로 전달해야 한다. 수필은 대상을 통찰하고 미적으로 구조화하여 서술의 방법을 정하고 통찰한 내용에 맞는 수사학적 전략으로 형상화해야 한다. 《온종일 비》의 문체는 수석壽石 중에서 산수경석山水景石을 보는 듯하다. 촉촉하게 젖은 모래수반 위에 놓인 작은 돌과 같다. 단순해 보이는 돌에 깊은 골짜기도 있고 낭떠러지도 있고 작은 폭포도 보인다. 작지만 여러 개의 산맥을 이루고 있는 산수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오랜 세월 수마되어 고태의 멋이 그윽하다. 머리말에서 ‘군더더기를 빼내고 가능한 토씨까지 날려 보내면 기름기 없는 뼈대만 남아’ ‘생각하는 것마저 단순해’지기를 바라고 있다. 애써 수사 전략을 사용한 흔적은 찾기 어렵다.
다만 <조망眺望>은 사실적 묘사가 보인다. ‘하늘과 바다가 맞닿았다. 가뭄에 갈라진 논바닥처럼 네모난 구름조각들이 하늘에 붙어 있는 것 같다, 하얀 구름 사이로 햇빛이 쏘아 오른다.’ 묘사에 상상이 개입하지 않아 깔끔하다. 그의 말대로 뼈대까지는 아니라도 수식도 거의 없다. 이러한 서술은 수사 전략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수사 전략이 없으면 미적감동도 덜어질 듯한데 그 간략함이 오히려 울림을 준다.
모든 것을 떨어버리는 서술 전략이 있는 반면에 미적구조에는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대부분의 작품에서 상관성을 활용하고 있다. <팥빙수를 위하여>에서 ‘지난 세월 내 삶’을 팥빙수라는 상관물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감동을 주었다. <방수 운동화>에서 방수 운동화는 신뢰성의 상관물로, <밤색 벙거지>에서 벙거지는 개념화된 삶의 상관물이 되었다. 이러한 상관성을 통한 메시지의 전달은 걸림돌 없이 쉽게 전달되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최종 수필가의 두 번째 수필집 《온종일 비》에 담긴 60편 작품의 인식과 해석, 통찰의 과정을 생각해 보았다. 요약하건대 노년에 인간관계를 토대로 현실에 존재하는 방식의 지혜를 일상에서 깨달았으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 즉 존재의 모순은 정情과 사랑으로 융화하여 해결하고자 하였다. 모순 해결과 융화는 관계의 해석으로부터 시작되는 진리를 보여주기도 하였다. 아쉬운 점은 형상화 과정에서 수필적 상상으로 주제를 인상적으로 전달하는 것은 수필가의 과제라는 것을 간과한 것 같다. 수필도 문학이기에 상상력이 독자를 미적으로 감동시킨다는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수필은 붓을 따라 쓰는 글이라고 쉽게 이야기 한다. 그러나 붓의 미적 구조는 수필가의 수신修身의 척도에 비례하기에 쉬운 일은 아니다. 수신의 정도와 깊이에 따라 글의 깊이가 달라지므로 독자의 울림도 좌우된다.
21세기는 수필의 시대라고 한다. ‘굽이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깊이 있는 삶을 살아온 최종 수필가와 같은 노년의 수필가들이 격조 높은 작품으로 수필문단을 선도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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