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산초나무꽃을 보니

느림보 이방주 2019. 7. 27. 07:07


 

산초나무꽃을 보니

 

 

2019723

미동산수목원에서

 

미동산수목원에서 산초나무꽃을 만났다. 참 실하게도 피었다. 연두색 꽃이 작은 우산 모양으로 소복하다. 이 꽃을 볼 때마다 꽃보다 예쁜 열매가 더 생각난다. 아니 꽃으로 바로 열매가 보인다. 가을이면 까맣고 윤이 반짝반짝 나는 열매가 꽃처럼 소복소복 달린다. 마치 구슬로 수놓아 만든 작은 장식용 우산을 보는 것 같다. 까만 보석 아래는 빨간색 꽃받침이 받치고 있어서 더 예쁘다. 사실은 열매는 갈색인데 아주 익으면 열매가 벌어져 씨앗이 드러난 것이다. 열매가 예쁘기 때문에 한 송아리 꺾어 손에 쥐면 묘한 약냄새가 난다. 약냄새 때문인지 어떤 마을에서는 분디나무라고도 한다.



산초나무는 가시가 날카롭고 크다. 잔가지는 물론이고 밑동까지 가시가 있어서 종아리에 닿기만 해도 영락없이 할퀴어 생채기를 낸다. 산성 답사를 다닐 때 잔가지는 얼굴을 할퀴고 팔을 긁어 놓기도 하고, 밑동은 종아리를 찌르고 베어 놓는다. 그래도 성이 차지 않으면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잡고 놓아주지 않던 가시 많은 나무다. 그렇게 잡고 놓아주지 않았기에 서두르지 않고 돌덩이를 조심해서 밟고 머리를 숙이고 겸손하게 다닐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100 여개 산성을 다니는 동안 무사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산초나무 가시 덕이다. 그러니 산초나무는 날카롭지만 고마운 가시나무다. 우리네 삶에서도 가시 있는 말처럼 대개 겉으로 거치적거리지만 내면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면 그 고마움을 알 수 있는 일이다.


산초나무에 대한 더 오래된 기억도 있다. 70년대 초 의풍학교에 햇병아리교사로 부임했을 때 학부모 집에 불려가 고약한 냄새가 나는 두부부침을 먹은 적이 있다. 처음에 약냄새처럼 역겹기도 해서 억지로 먹었는데 그것이 산초기름에 구운 것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고향 뒷산에도 산초나무가 있고 열매를 보았지만 그것으로 기름을 짜서 두부를 부쳐 먹는 것은 의풍에서 처음 알았다. 그런데 한번 맛을 들이자 두부부침은 물론 고춧잎나물무침도 산초기름을 써야 비리지 않았다. 가으내 산초기름을 먹으면 겨우내 감기도 없었다.


문득 의풍에서 먹던 산초기름이 생각나니 오늘 연두색으로 피어난 꽃이 더 예쁘다. 입안에서 잃었던 미각이 되살아난다. 미각은 추억을 자극한다. 추억은 그리움의 산물이다. 사십오 년 전 산초기름에 구운 두부를 안주로 옥수수 엿술을 내오던 의풍 아낙네들이 그립다. 의풍의 여인들은 살림은 가난해도 정은 가난하지 않았다. 사람살이에 따듯한 정이 은근하다. 사택이 부족해서 화전민을 이주시키기 위한 임시 가옥에 거처하는 총각선생을 끼니마다 불렀다. 강냉이를 삶아도 부르고, 감자를 쪄도 불렀다. 거친 밀가루로 국수를 해도 부르고 올챙이묵을 해도 불렀다. 제사 지낸 날 아침, 모심는 날 점심, 물고기 잡아 매운탕 끓인 저녁에도 아이들을 보냈다. 그렇게 정을 퍼 먹이고 돌아올 때는 산초기름에 구워낸 두부, 고춧잎무침, 이름도 모르는 산나물무침을 싸서 들려주었다. 빈손으로 보낼 줄을 모르는 의풍 아낙들의 사람살이에 들이는 정이 그랬다. 지금도 산초나무꽃을 보면 의풍 아낙네들의 산초 기름 같은 정이 살아난다. 산초나무 가시처럼 거친 손, 경상도 사투리인지 강원도 사투리인지 억센 말씨 속에 담긴 따뜻한 정이 살아난다.


산초나무 열매는 진한 냄새만큼 진한 추억과 그리움을 지니고 있다. 그런 정과 그리움은 사십오 년이 지난 지금이 오히려 생생하다. 가끔 승용차로 서너 시간을 달려 두 번째 고향 같은 의풍 마을을 찾아갈 때가 있다. 시대가 바뀌고 인심이 변하여 옛날 같은 정은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은 팔순 넘은 할머니가 된 당시의 젊은 아낙네들의 손에는 아직도 산초 기름의 고소한 약냄새가  남아 있다. 손이 따듯하고 말씀이 순하고 눈길에 정이 가득하다. 지금도 닭을 잡아주지 못해 안달이고 더덕이나 묵나물을 싸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푸른 산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들,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맞는 사람들의 마음은 산의 색깔이나 물소리처럼 세월이 지나도 그대로인가 보다. 아니 산초기름에 두부 구워먹는 사람들의 말씀은 순하고 손에 온기가 남아 있게 마련인가 보다. 의풍에 남아 있는 내게 배운 젊은이들, 젊은이라야 오십이 넘었지만 그들도 그때의 어머니만큼 따듯한 손길을 타고 태어난 것 같다. 세대는 바뀌어도 정은 이어받았다. 도회로 나온 나만은 그 분들의 정을 이어받지 못한 것 같다. 


사람이 정을 만드는 것인지, 산천이 사람을 만드는 것인지, 가시 많은 산초나무가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을 보면서 아무래도 자연이나 세상은  우리에게 어려움이나 좌절만을 내려주는 것은 아님을 깨닫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가시로 시련만 주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채찍으로 따듯한 정을 나누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것만으로도 내겐 자연이 주는 혜택이고 신이 내린 은총이다. 내게는 미동산수목원에 피어난 산초나무꽃이 약 중의 명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