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물봉선 자매

느림보 이방주 2018. 10. 9. 18:55

물봉선 자매

 

산막이 옛길에서

2018929

        



옛날 동해바다의 용궁에는 아름다운 바다 화원이 있었는데 그 화원에는 물봉선이란 꽃이 있었다. 물봉선 꽃은 아름다워서 누구나 칭송하고 사랑했다. 그런데 바다 밖으로 자주 나가는 자라가 산신령의 정원에는 물봉선 꽃과 모양이 비슷하고 이름까지 같은 봉선화란 꽃이 있는데 사람들이 매우 사랑하고 그 꽃물로 손톱에 예쁘게 물을 들인다고 설명해 주었다.

자라의 말을 들은 물봉선은 봉선화를 만나보고 싶었다. 자라에게 육지에 나갈 때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물봉선은 용왕님께 한 달의 말미를 얻어 자라의 등에 업혀서 난생 처음 육지에 오르게 되었다. 봉선화는 자신과 너무나도 닮은 물봉선을 보자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봉선화는본래 쌍둥이 자매였는데 홍수 때 동생이 물에 떠내려가 용궁에 살고 있으니 다시 만나면 잘 보살펴주고 사랑하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생각났다. 어려서 헤어졌던 봉숭아와 물봉선 자매는 다시는 떨어져서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물봉선이 용궁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그러나 물봉선은 산속 계곡물 옆에 뿌리를 내리고 새 집을 마련한 후에 자라에게 용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하였다. 이때부터 자라도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강가 바위틈에 숨어살게 되었다고 한다.

-물봉선 전설-

 

물봉선은 꽃 색깔마다 다를지는 모르지만 다른 꽃이랑 마찬가지로 곡절이 있을 것이다. 물봉선 전설에는 사람들이 이 꽃을 안쓰러워하는 심정이 은은하게 스며 있. 아마도 봉숭아꽃처럼 뜰에 피지 못하고 습습한 개골창에서 대접받지 못하는 물봉선이 안쓰러웠나 보다. 때로는 별이 떨어져 그 정령이 꽃이 되었다고도 하고, 도둑으로 몰려 결백을 발명하려다 억울하게 죽은 여인의 원혼이라고도 한다. 본래 산신령의 아름다운 정원에 살던 자매는 동생이 홍수에 떠내려가서 용왕의 정원에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한국인의 사랑과 정서를 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산막이 옛길에서 물봉선 꽃을 만났다. 산기슭 사과밭 사이로 난 배수로 잡초더미에 섞여 빨긋빨긋 피었다. 나는 잡초더미를 헤치고 배수로로 내려갔다. 물봉선 꽃을 찍고 싶었다. 물봉선 꽃은 제 언니인 봉숭아꽃이랑 아주 비슷하게 생겼다. 꽃도 비슷하고 이파리도 비슷하다. 그런데 봉숭아꽃은 꽃대가 굵직하고 튼실하다. 굵직한 대궁에 가닥가닥 가지마다 꽃이 소복하게 피어난다. 반면 물봉선은 대궁이 봉숭아보다 훨씬 가늘고 길다. 어떤 놈은 키가 커서 내 허리까지 오는 것도 있다. 그런 꽃대에 듬성듬성 꽃이 피어난다. 이파리 모양은 비슷해도 물봉선이 더 짙은 녹색이다. 봉숭아꽃이 분홍색도 있고 자주색도 있고 흰색도 있듯이 물봉선도 붉은 것도 있고 흰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다. 전설이 사실일 리는 없겠지만 봉숭아 자매도 오랫동안 헤어져 있었으니 그 모양도 삶도 다를 것이다.

초등학교 때 형제 같은 친구인 현이가 있었다. 우리는 참 많이 닮았다. 키가 큰 것도 닮았고, 공부를 꽤나 잘하는 것도 닮았다. 하나는 1반 반장 하나는 3반 반장인 것도 그렇고 육학년이 되어 회장 부회장인 것도 닮았다. 우리는 가난한 것도 닮았다. 도시락이 보리밥인 것도 닮았다. 그래서 학교 울타리 너머 개울가 바위에 숨어서 함께 도시락을 먹어도 부끄럽지 않았다.

현이는 나보다 두 살이나 많았다. 그래서 친구라기보다 형 같았다. 공부도 나보다 잘했고, 내가 부반장일 때 반장이었고 내가 부회장일 때는 현이가 회장이었다. 내가 3등을 하면 현이는 1등을 했다. 그것이 당연했다. 한 번도 형 같은 현이를 시기하거나 앞서 보려고 애쓴 기억은 없다. 건강하지 못했던 내가 성적이 떨어지면 현이가 더 걱정했다.

아무렇지도 않을 것 같았던 가난이 나와 현이를 갈라놓았다. 나는 간신히 중학교에 진학했지만 현이는 합격한 일류 중학교 입학을 포기해야 했다. 담임선생님은 A학교에 합격하면 당신이 학비를 책임진다고 했다. 현이는 그걸 믿고 그 학교에 응시하여 합격했다. 나는 담임선생님의 말을 듣지 않고 장학생이 가능한 C학교를 희망했다. 나는 C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하여 함께 다니자고 현이를 설득했지만 실패했다. 나는 혼자서 C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했다. 그 후 형편이 나아져도 그는 중학교를 다니지 못했기에 고등학교를 갈 수 없었다. 가난의 고비를 넘긴 나는 어렵지 않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돈을 모아 나보다 부자가 되었고, 나는 정규학교를 졸업하고 선생이 되었다. 나는 그가 부럽고 그는 내가 부럽다. 우리가 해후했을 때 현이 얼굴은 많이 달랐다. 현이가 보면 내 얼굴도 가깝게 느껴지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참 반가웠지만 참 많이 서먹했다. 반가운 만큼 가깝지만 너무 멀었다. 살아온 세월은 우리를 그렇게 갈라놓았다. 혼자만 진학한 나는 친구에 대한 부채감으로 벽지학교에서 야학을 열어 두메 청년들에게 중학과정을 가르친 일이 있다. 배움은 시기를 놓쳐서는 안 된다는 절실한 생각이었다.

봉숭아는 뜰에 살면서 곱고 소담하게 꽃을 피워낸다. 물봉선은 개골창 풀숲에 섞여 피어났어도 붉은 빛만은 봉숭아만 못하지 않다. 그래도 봉숭아는 물에서 사는 물봉선이 부럽고 물봉선은 뜰에서 사는 봉숭아가 부럽다. 물봉선이나 봉숭아는 서로 다르지 않다. 물봉선이 초라해 보이는 것은 다만 외양이다. 봉숭아가 소담해 보이는 것도 현상일 뿐이다. 자세히 보면 그냥 형제이다. 봉숭아가 옛 이름 그대로 봉선화라면 둘은 같은 봉선이다.

봉숭아는 물봉선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물봉선은 봉선화에게 어떻게 다가갈까? 아니 다가가려 하는 것이 오히려 멀어지는 것이다. 봉선화, 물봉선이라 하지 말고 그냥 봉선으로 살면 된다. 그것이 신의 가르침이다. 봉숭아랑 물봉선이 형제이듯이 우리는 형제이다. 우리는 서로 부채감을 가질 필요도 없고 서로의 삶을 부러워할 필요도 없다. 둘이도 그냥 봉선으로 살면 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자연은 모두 형제이다. 봉선이 형제이듯이 나무는 나무끼리 형제이고 고라니는 고라니끼리 형제이다.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고라니랑 멧돼지도 형제이고 소나무랑 참나무도 형제이다. 고라니랑 소나무도 형제이고 나랑 고라니도 형제이다. 나는 나무의 날숨으로 숨을 쉬고 나의 날숨은 나무의 들숨이 된다. 우리는 마시는 바람까지 공유하는 형제이다. 내가 풀과 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았듯이 미래에는 내 살이 썩어 그들의 영양이 될 것이다.

봉숭아와 물봉선이 봉선으로 형제이듯이 나와 들풀 들꽃은 자연이라는 신의 아들이다. 우리는 모두 형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