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꽃은 숨은 향기가 있네
2018년 7월 23일
주중리에서
새벽이다 5시 20분, 주중리에 갔다.
밭과 밭 사이의 농로 옆을 흐르던 수로가 직각으로 꺾여 논으로 흘러들어가는 부분에서 미나리꽃을 발견했다. 흐름이 느려진 부분에 흙이 쌓여 미나리가 뿌리를 내린 것이다.
맑은 물을 마시며 하얗게 피어났다. 미나리꽃을 발견하는 순간, 어린 시절 먹는 샘 바로 아래 미나리꽝에 하나 가득 하얗게 피어난 미나리꽃이 떠올랐다. 미나리는 꽃이 피고 거기서 씨앗을 받아 번식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미나리는 묵은 줄기를 다듬어 잘라내어 미나리꽝을 고르게 정리한 다음 훌훌 뿌려주면 마디마디에서 뿌리가 내려 새 줄기가 연하게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웬만해서는 미나리꽃을 보기가 쉽지 않았었다. 그래서 하얗게 피어난 이 꽃이 반갑다.
돌미나리인 듯하나 아쉽게 돌미나리는 아니다. 하얀 꽃에서도 미나리 향이 솔솔 나는 기분이다. 미나리 향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데 나는 미나리나물 반찬이면 뭐든지 다 좋아한다. 그 향이 좋기 때문이다. 미나리김치, 미나리초고추장무침, 미나리냉국, 미나리무침, 돌미나리부침개 등 향기롭고 맛난 것들이 그리운 새벽이다. 미나리김치는 생 미나리의 연한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나박김치 담그는데 함께 넣어 담그는 것이다. 조금 굵직한 미나리 줄기를 씹을 때 톡톡 터지면서 퍼지는 미나리향이 좋았다. 미나리초고추장무침도 생미나리 줄기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초고추장에 무치면 새큼한 향이 그만이다. 보리밥에 넣어 비벼 먹으면 고추장과 버무려진 미나리 향을 즐길 수 있다. 미나리냉국이나 미나리나물무침은 미나리를 끓는 물에 슬쩍 데쳐서 갖은 양념을 넣어 조물조물 무치거나 얼음 냉국을 만드는 것이다. 돌미나리부침개도 번철에 지져내면 들기름의 고소한 맛과 미나리 향이 천생연분처럼 어울렸다. 모두가 그리운 옛 맛이고 옛 향기이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미나리나물을 더 많이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시대에는 텃논이나 울안 연못에 미나리를 길러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여름에는 다른 채소가 흔하지 않으니 쉽게 기를 수 있는 미나리를 먹었을 것이다.
나는 미나리를 좋아하지만 예전에도 그 향기를 싫어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나 보다. 열자列子 양주楊朱편에 나오는 옛날이야기에 어떤 사람이 미나리나물이 하도 맛있어서 고을 부자에게 상납했다가 비웃음을 샀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나리 향을 싫어하는 부자는 미나리를 가져온 사람을 어리석다고 비웃은 것이다. 그래서 자기가 알고 있는 것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웃는 말로 ‘야인헌근野人獻芹’ 이라 한단다. 그럼 나는 어리석은 야인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미나리를 선물한 사람과 미나리를 싫어하는 사람 중에 누가 어리석은 것인지 객관적인 근거는 없을 것이다.
미나리에 얽힌 이야기로 “미나리를 뜯는다(菜芹)”는 말도 있다. 시경 노송경지십(魯頌駉之什)에 “즐거운 반궁의 물가에서 미나리를 뜯는다. 思樂泮水(사낙반수) 薄采其芹(박채기근) ”이라는 시구에서 얻어낸 말이다. 아마도 깨끗하지 못한 미나리꽝에서 향기로운 미나리를 뜯는다는 것으로 궁벽한 곳에서도 인재를 발굴한다는 의미부여를 한 것 같다. 향기가 없을 것 같은 곳에서 숨은 향기를 찾아내는 것이다. 인재는 드러난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 숨어 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 말에서는 미나리 향이 긍정적인 의미로 쓰였다.
미나리는 물을 맑게 정화한다고 한다. 수로 귀퉁이 진흙에서 자라난 미나리가 하얀 꽃까지 피워 그 숨은 향기가 오늘 새벽 내 마음까지 맑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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