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 떠나는 수필문학 기행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를 가다-
이방주
삶은 죽음에 닿아 있다는 말이 있다. 삶과 죽음이 연결되는 모습을 보고자하면 힌두교 성지 바라나시에 가야한다. 바라나시는 시바신이 살았다는 히말라야에서 발원했기에 더 성스러운 갠지스강 중하류의 힌두교 성지이다. 상주인구가 120만 정도라지만, 순례자들을 포함하면 200만도 넘게 복작거린다. BC2000년경부터 사람이 거주해온 세계 최고(最古)의 도시 가운데 하나이다. 1949년 독립 이후 학문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바나라스 힌두대학교를 비롯한 많은 학교가 세워져 브라만 학자들이 힌두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갠지스강을 따라서 수십km의 가트(ghat)가 있고 강가에 수많은 사원이 있다. 여기서 기도하는 것이 순레자들의 소망이다. 시바신을 모시는 비슈바나타 사원, 원숭이신인 하누만신을 모신 산카트모차나 사원이 대표적이다. 바라나시 북쪽에 있는 사르나트는 불교 사원과 유적지가 있는 불교의 성지이기도하다.
1. 갠지스강 화장 가트(마니카르니카가트 Manikarnika Ghat)
우리는 이른 새벽 갠지스강으로 나갔다. 아르띠 뿌자가 열리는 갠지스강 목욕가트(Triveni Ghat)까지는 좁은 골목길을 걸어야 한다. 거리는 아침 예배에 참여하려는 시민들과 기도에 쓰이는 물품을 파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기도의 꽃 매리골드를 파는 사람들이 우리 앞을 가로 막는다.
나룻배를 타고 강으로 나갔다. 사원에서 아침예배를 드린 많은 사람들이 목욕을 한다. 여기서 목욕하면 삼세의 죄업을 모두 씻어내고 윤회의 사슬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니 이들은 지금 소원을 성취하는 중이다.
강가는 사원과 가트로 이루어졌다. 가트는 목욕가트, 화장 가트 등으로 구분되지만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바라나시 시민들은 신앙이 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생활이 신앙의 일부이다. 진보적 힌두주의자인 간디는 ‘Truth is God’이라면서 개혁을 시도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최근 하층계급 출신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Damodardas Modi) 총리의 여러 가지 실용적 개혁 정책으로 이용후생이 나아지고 있다고는 한다.
배를 돌려 강을 거슬러 올라가니 화장 계단인 마니카르니카 가트(Manikarnika Ghat)이다. 여기저기 불타는 장작더미 위에 시신이 누워 있었다. 부근에는 장작더미가 수북하게 쌓였다. 인도인들은 몸에 장작 값을 지니고 다닌다는 말이 있다. 불이 활활 타오르는 곳에는 장작 값이 충분했던 부자가 올려 있을 것이다. 타오르는 불꽃 사이로 시신이 보인다. 이승을 깨끗이 잊고 연기가 되어 하늘로 날아가기를 빌었다. 죽음 의식은 경건한 종교적 의식이어야 한다면 현대식으로 화장장을 마련하여 빈부 차별 없이 보내주면 좋겠다.
강물에는 타고 남은 재가 둥둥 떠 있는데 거기서 목욕하는 남자도 있다. 아예 잠수도 한다. 성수에 잠수하는 것이다. 계단을 걸어 오르면서 불타고 있는 시신이 나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삶과 죽음은 돌고 돌 뿐이지 다른 게 아니다. 모든 법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시신은 피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그냥 사람일 뿐이다. 시신을 멀리하는 우리민족도 생각을 바꾸어야 한다.
화장 가트에서 나와 사원이 꽉 들어찬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사람, 오토바이 뿐 아니라 소도 지나고 개가 떼를 지어 지나간다. 공존이다. 여기저기 배설물이 즐비하다. 더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야 한다. 나도 죽으면 썩고 태우면 재가 된다.
여기는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곳이다. 사람들이 바라나시를 찾는 것은 바로 이 화장가트 때문일 것이다. 화장가트를 보지 못했다면 바라나시를 본 것이 아니고, 바라나시를 가지 않았으면 인도를 간 것이 아니다. 언덕에 수많은 사원들을 돌아보니 갑자기 이곳에 머물고 싶다. 여행자는 바라나시에서 3일을 넘기지 말라고 한다. 3일을 넘기면 영원히 이곳에 머물게 될지도 모른다더니 나도 이곳의 매력에 서서히 빠져들기 시작한 것인가 보다.
2. 사르나트 녹야원
사르나트 녹야원은 붓다가 깨달음을 얻은 후 다섯 제자에게 최초로 설법한 곳이다. 부처님이 태어난 룸비니(Lumbini, 네팔), 깨달음을 얻은 보드가야(Bodh Gaya, 인도) 열반에 든 쿠시나가르(Kushinagar, 인도)와 함께 불교의 4대 성지 중 하나이다.
차는 가다가 그냥 멈춰 섰다. 사람, 자전거, 인력거, 오토바이, 툭툭이, 삼륜차, 버스, 대형트럭이 엉켜서 움직이지 않는다. 차와 사람이 부딪칠 듯,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부딪칠 듯, 오토바이 바퀴가 인력거에 부딪칠 것 같지만 그것은 기우이다. 모두 한 덩어리가 되어 앞으로 조금씩 흘러간다. 갠지스 강물이 모든 것을 안고 흘러가듯, 하나의 유기체처럼, 혈액이 혈관을 흘러가듯, 막힘도 없이 거침도 없이 흘러간다. 인도는 역사, 사회, 사상, 카스트의 모든 신분이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오늘까지 흘러온 것이다.
사르나트 녹야원의 중심은 다메크 스투파(Dhamekh Stupa)이다. 지름 28.5m, 기단을 포함한 높이는 34m 정도라고 한다. 벽돌을 보니 돌보다 더 단단하다. 여기저기 벽돌탑이 무너진 자리에 금박을 붙이고 기도한 흔적이 보인다. 수많은 불탑이 있던 자리가 아직도 남아있다. 붉은 벽돌은 승원이 있던 자리이고 약 30여개의 승원에 3천명이 넘는 승려가 있었다고 하니 규모를 짐작할 만하다. 불탑에 만다라. 덩굴식물, 부처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연꽃무늬는 백제 와당 문양과 비슷하다. 감실에 불상이나 보살상을 모셨다.
기원전 3세기 불교에 귀의한 아소카왕이 불교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탑과 석주(石株)를 세운 뒤 더욱 신도들의 숭앙을 받아왔으며, 640년 경 현장(玄奘)이 순례할 당시만 해도 이곳은 약 30m 높이의 정사(精舍)가 하늘 높이 솟아 있었고, 그 주위 100여 단이나 되는 감실에는 황금 불상과 부조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13세기 무렵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에게 유린되어 폐허가 되었다. 지금은 아소카왕의 석주가 남아 있어 이곳이 녹야원이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아소카 왕의 석주 머리에 있던,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4마리의 사자상이 아직도 남아 있다. 아름다운 성지가 여러 가지 이유로 보존될 수 없었던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우리나라의 성지나 많은 사원의 예술품들도 역사의 변화에 따라 매몰되었으니 안타깝기는 마찬가지다.
3. 힌두교의 제의 아르띠뿌자 arti puja
오후 4시경 로비에서 회원들이 모였다. 힌두교 제의식 아르띠뿌자(arti puja)를 참관하기 위해 인력거(릭샤)를 타고 갠지스강으로 나가기로 했다. 우리 내외를 태운 인력거를 운전하는 사람은 젊기는 했지만 체구가 상당히 작았다. 내가 체중이 많이 나가 45분 내내 미안하고 불안했다.
목욕 계단에 이르렀다. 우리는 배를 타고 강 위에서 참관하기로 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다. 오색 불빛이 찬란하다. 승려들이 황금색 옷을 입고 제전 앞에서 집전을 준비한다. 참석한 힌두교도들은 사제나 신도나 매우 엄숙하다.
확성기에서 노래가 흘러나오면서 의식이 시작된다. 곡조가 찬불가와는 거리가 있다. 마치 발라드처럼 이야기로 들렸다. 아마도 힌두교의 찬송인 리그베다인가 보다. 노래가 끝나자 승려가 주문을 외고 또다시 노래 소리가 나오기를 반복하더니 승려들이 모두 일어서서 향로를 들고 전후좌우 상하로 흔들었다. 의식이 끝나는 것 같다.
브라만 사제들은 복장도 행위도 화려하고 위엄이 있어 보였다. 아르띠뿌자 의식은 불교의식에 비해 원시적으로 보였으나 진지하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우리도 꽃불(디아)을 하나씩 사서 강물에 띄웠다. 우리가 띄운 꽃불이 일렬로 열을 지어 떠내려간다. 다들 어떤 소망을 빌었을까. 그러나 복은 스스로 짓는 사람에게 신이 내리는 인과응보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아르띠뿌자는 날마다 해질 무렵 거행된다고 한다. 힌두인들은 기도의식에 참여하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 날마다 같은 의식에 일을 중지하고 달려 나오니 인간에게 신앙이란 어떤 일보다 소중한가 보다. 아르띠뿌자 참관으로 힌두교 이해에 좀 더 가까이 간 것 같다. 그래서 인도 여행은 물론 바라나시 방문은 내게 큰 행운이다.
(한국수필 5월호 청탁원고 2018. 3.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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