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사랑 괭이밥
2017년 10월 8일
미호천에서
조천이 미호천으로 흘러드는 곳, 조천연꽃공원 끄트머리에 괭이밥이 노랗게 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자주 밟고 지나다니는 쉼터 정자가 있는 귀퉁이에서 티 하나 묻히지 않고 소복하게 피어났다. 아주 작은 꽃잎 다섯이 모여 꽃이 한 송이, 하트 모양 작은 이파리 석장이 모여 잎이 하나가 되었다.
얘들이 왜 이제 꽃을 피웠을까. 오월에 피기 시작해서 유월에도 피고 칠월에도 핀다. 돌 틈에서도 꽃을 피우고 정원의 다른 꽃나무들 사이에서도 여름내 꽃을 피운다. 이렇게 예쁜 꽃을 피워도 저를 내세우거나 자랑하거나 떠들지 않아서 있어도 없는 듯하고 없어도 있는 듯하다. 팔월이면 꽃이 다 지고 갸름한 열매가 맺혀 톡톡 터지면서 씨앗을 퍼뜨린다. 그런데 하늘 높고 바람도 서늘한 시월에 꽃을 피웠다. 언제 열매를 맺고 언제 씨앗을 터트리려고 천하태평이다.
어렸을 적에 작고 여린 이파리를 따서 씹으면 새콤한 맛이 참 신기했었다. 아이들은 어른들 말을 들었는지 제가 그냥 지어낸 말인지, 고양이나 먹는 수영이라 ‘괴수영’', ‘괭이셩’이라 했다. 혹은 고양이가 배가 쌀쌀 아프면 괭이밥을 뜯어 먹고 낫는다고도 했다. 괭이밥이란 이름에서 그런 말이 나왔는지, 고양이가 정말 괭이밥을 먹고 아픈 배가 나아서 괭이밥이 된 것인지는 몰라도 거참 희한하지 않은가. 고양이가 어찌 알고 괭이밥을 뜯어 먹고 아픈 배를 낫는단 말인가? 고양이가 마음 놓고 쓰레기 봉지를 찢어서 상한 음식을 찾을 수 있었던 배포가 거기 있었다고 생각하니 더욱 희한하다.
시월에 아직도 노랗게 꽃을 피우고 있어 '빛나는 마음'이라 했는지, 이파리가 뜨겁게 박동하는 심장의 모양을 닮아서 '당신을 버리지 않는 사랑의 약속'이라 했는지, 그 꽃말도 참 그럴 듯하다. 들여다볼수록 나는 그냥 ‘빛나는 사랑’이라고 하고 싶다.
한낮이 되니 볕이 등에 따갑다. 연꽃 방죽에는 연꽃은 지고 연밥이 익어가고 있다. 연꽃이 지거나 말거나, 소담했던 연잎이 누렇게 시들거나 말거나, 하트모양 초록 잎으로 양탄자를 깔고 그 위에 깔끔하게 꽃을 피운 변하지 않는 당신의 마음을 본다. 나는 노랗게 어린 괭이밥 꽃을 버려두고 돌아선다. 빛나는 사랑의 약속을 그냥 두고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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