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창작 수필/들꽃 들풀에 길을 묻다

낮달맞이꽃 사랑

느림보 이방주 2018. 5. 7. 11:02


 낮달맞이꽃 사랑


 

2017년 8월 23일 

주중동 마로니에 시 공원에서 

    

사랑이라 말하면 사랑의 달이 뜬다. 사랑이란 말 속에는 사랑이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라 말하고 기다려볼 일이다. 누구의 사랑에도 장벽은 없다.

 

선덕여왕 때에 지귀라는 젊은이가 있었다. 하루는 서라벌에 나갔다가 선덕여왕의 미모를 보고 사모하게 되었다. 잠도 자지 않고 밥도 먹지 않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선덕여왕을 부르다가 그만 미쳐버리고 말았다.

어느 날 여왕이 절에 행차하게 되었다. 이 소문을 들은 지귀가 골목에서 선덕여왕을 부르면서 뛰어나오다가 군사들에게 잡히고 말았다. 여왕은 지귀를 따라오도록 허락했다. 선덕여왕이 절에 이르러 기도를 드리는 동안 그는 탑 아래에 앉아서 기다리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았다. 여왕은 기도를 마치고 나오다가 탑 아래에 잠들어 있는 지귀를 보았다. 여왕은 그가 가여워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금팔찌를 빼어 그의 가슴 위에 놓아준 다음 발길을 옮기었다. 선덕여왕은 지귀를 백성으로 사랑했던 것이다. 비로소 잠이 깬 지귀는 금팔찌를 보고 놀랐다. 금팔찌를 꼭 껴안고 기뻐서 어찌할 줄을 몰랐다.

새벽에 빗소리가 잠을 깨운다. 비에 젖은 정원은 어제보다 더 싱그럽다. 아파트 맞은편 마로니에 시 공원에 갔다. 시비詩碑가 비에 젖었다. 동산 오솔길로 올라서는 나무계단 옆에 아름다운 꽃 한 무더기가 피었다. 분홍색 꽃잎에 빗방울이 맺혀 막 세수하고 나온 여인처럼 청초하다. 꼭 달맞이꽃 모양인데 분홍색이다. 꽃잎이 네 장, 화심으로부터 꽃잎으로 퍼져 오르는 엷은 진홍색 빗살무늬, 잎 모양도 달맞이꽃을 꼭 닮았다. 하얀 화심 한가운데서 수술이 가늘고 여윈 허리를 하늘거린다. 키는 작다. 달맞이꽃에 비하면 메꽃으로 착각할 만큼 땅에 붙었다. 달맞이꽃보다 꽃은 더 크고 예쁘다. 꽃은 강렬해도 꽃대는 여리다. 달맞이꽃은 밤에 피었다 아침에 지는데 이 분홍색 꽃은 아침에 핀다. 새벽에는 노란 달맞이꽃과 함께 피어 있기도 한다. 해가 지면 따라 지는 꽃이다.

이 아이는 누구일까? 이름을 알아야 정체를 바로 알 수 있다. 인터넷에 꽃 이름을 검색해 보았다. '낮달맞이꽃, 분홍달맞이꽃, 분홍애기달맞이꽃, 향달맞이꽃, 두메달맞이꽃'이다. 이름도 많다. 이름이 많은 건 얽힌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이름이 많은 사람은 삶의 모습도 다양하다는 의미이다. 정체성이 불명확하여 종잡을 수 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그의 색깔과 향기에 알맞은 이름 부르기를 잠시 망설인다. 그냥 '낮달맞이꽃'으로 하자. 왠지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낮달을 맞이하는 달맞이꽃이다. 이름대로 낮에 피어 빛바랜 반달을 바라기하는 가상한 달맞이꽃이다. 정작 밤에는 달에게 버림받아 낮에 나온 반달이나 바라기하는 가련한 낮달맞이꽃이다. 이 아이의 본질을 이렇게 규정하자.

갑자기 돌아서는 그 아이의 꼭뒤를 본다. 낮달맞이꽃은 달이 없는 낮에도 피어 낮달을 기다리다 잠드는 지귀 같은 남자라는 생각이 든다. 선덕여왕을 짝사랑하다 심화로 타올라 탑돌이를 하던 가련한 지귀의 화신처럼 보였다. 하얗게 소복하여 보일 듯 말 듯한 낮달을 바라기하다 잠드는 낮달맞이꽃, 그마저 뜨지 않는 대낮에도 분홍으로 피어 태양의 눈총을 받으며 낮달을 기다리는 낮달맞이꽃 말이다. 사랑은 베풂으로 행복하다고들 한다. 남녀 간의 사랑도 주는 기쁨이 받는 기쁨보다 더 크다고 말한다. 어쩐지 믿어지지 않는 말이다.

문우 한 분에게 장편소설 황진이를 선물 받았다. 북한 작가 홍석중의 작품이다. 홍석중은 임꺽정의 작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손자라고 한다. 처음에는 황진이와 서경덕의 사랑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계급의 울타리를 넘지 못하는 로맨티스트의 안일한 선입견이었다. 평생 황진이를 바라기한 놈이란 노비의 처절한 사랑이야기였다. 지귀만큼 모질고 아픈 사랑 말이다. 계급의 장벽에 가려 기다리다 지친 사랑 말이다.

계급이라는 질곡으로부터 해방되어야 비로소 사랑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놈이가 열두 살, 진이는 일곱 살 때 만났다. 놈이는 진이를 업어달라면 업어주고, 안아 달라면 안아주고, 태워달라면 태워주었다. 신랑각시 소꿉놀이를 할 때 놈이는 이미 진이를 사랑했지만 진이는 놈이가 그냥 아랫사람이었다. 출생 신분이 불명확한 진이가 승지 댁으로 혼인이 정해졌을 때 놈이는 승지 댁에 진이가 천출이라는 것을 고자질하여 파혼시켰다. 자신의 출생 비밀을 알게 된 진이가 드디어 계급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벗어버리기로 한다. 진이라는 양반 계급을 죽이고 천한 기생 명월로 다시 태어나기로 한다. 귀밑머리를 풀고 청루로 가기로 한 것이다.

허물벗기를 결심한 밤에 진이는 순결을 놈이에게 바친다. 그날 달이 밝았다. 모래를 뿌린 것처럼 은백색 달빛을 밟아 차돌처럼 굳으며 얼음처럼 차갑게 놈이 앞에 선다. 진이는 달빛 속에 누워있었다. 놈이의 달이 된 것이다. 차갑지만 불덩이처럼 타올랐다. 그러나 마음은 그냥 두고 육체만 타오른 것이다. 놈이는 처음에 떨렸지만 숯불처럼 뜨겁고 거친 손으로 진이를 더듬었다. 진이가 처녀를 바친 것은 사랑의 분출이 아니다. 환멸과 쓰디쓴 열물 같은 양반 아닌 양반의 삶으로부터 탈출이었다. 진이는 정조를 바치며 양반으로서의 죽음을 의미하는 사약을 받은 것이다. 이와 달리 놈이는 진이를 소유하는 순간 남이 되어버리고 사랑을 단념해야하는 사약을 마신 것이다. 분홍애기달맞이꽃처럼 무언의 사랑을 끝내기로 한 것이다. 그날 놈이는 종적을 감추었다. 양반과 상놈이라는 장벽이 두 사람에게 사랑의 아픔을 주었다. 그 후 진이는 청루에서 몸을 팔며 살았다. 놈이는 화적패가 되었다가 잡혀 처형당하게 되었다. 그제서 진이는 사랑을 깨닫고 놈이에게 절을 올린다. 결국 놈이는 죽음에 이르러 계급이란 장벽을 허문 것이다.

비에 젖은 낮달맞이꽃이 하늘거린다. 여린 꽃잎이 물방울이 힘겨워 고꾸라졌다. 비가 그치고 구름이 걷혀 낮달이 보이면 일어설 수 있을까. 낮달맞이꽃은 낮달을 바라기해야 한다. 낮달이 눈길을 주거나 말거나 그것이 낮달맞이꽃의 숙명적 사랑이다. 말없이 진이를 사랑한 놈이 같은 보이지 않는 사랑이다. 사랑은 기다리면 오는 것이니까. 선덕여왕을 사랑한 지귀처럼 황금 팔찌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무언의 사랑을 한 놈이처럼 진이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사랑하면서도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 곁에서 사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위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이다. 우리의 사랑은 기다리면 돌아온다고 생각하자. 사랑이란 말 속에는 사랑이 살고 있으니까 말이다. 사랑이라고 말하면 사랑의 달이 뜬다고 믿자. 지귀에게도 놈이에게도 낮달맞이꽃처럼 말없이 기다리면 사랑의 달은 언젠가 뜨게 마련이니까 말이다.

(수필과비평 2018년 6월호 청탁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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