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경상남도 남해 금산 보리암

느림보 이방주 2016. 3. 7. 23:21

금산 보리암 찾아가기


▣ 경상남도 남해군 금산 보리암

▣  2016년 2월 23일

▣  두모계곡 → 양아리 석각 → 원형계단 →부소암 → 철다리 → 헬기장 → 상사바위 → 좌선대 → 제석봉 → 단군신전 → 금산 → 보리암 → 쌍홍문 → 금산탐방지원센타

▣ 7.3 km  (4시간 30분)




금산 개요

ㅡ 강화 석모도 보문사, 양양 낙산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 관음 기도도량인 남해 보리암이 있는 산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으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18호로 지정되어 있음

남해 일출 명소이며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38경이 절경을 이루고 있음



보리암 개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83(신문왕 3)에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 그 뒤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금산이라 하였고, 1660(현종 1)에는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액改額하였다. 그 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하였고,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광전普光殿)을 비롯하여 간성각(看星閣산신각·범종각·요사채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큰 대나무 조각을 배경으로 좌정하고 있는 향나무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왼쪽에는 남순동자南旬童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을 거느리고 있는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씨가 인도에서 모셔왔다고 하나 신빙성이 없다.

삼층석탑은 신라석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신라석탑이라 부르고 있으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리암 앞 바위 끝에 세운 높이 165의 이 탑은 상륜부에 보주寶珠)만 놓여 있다. 이 밖에도 보리암 주위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좌선대를 비롯하여 쌍홍문雙虹門 38경의 경승지가 있다.

  


 


금산 보리암은 정말 가고 싶었던 사찰이다. 언젠가 아내와 함게 떠나서 향일암을 들렀다가 보리암으로 가는 중에 날이 저물어 포기한 적이 있다. 다음에는 청심회에서 상주해수욕장을 들렀다가 멀리 보이는 보리암을 들르자는 의견이 있어 금산 탐방지원센터까지 갔다가 주차장에 차가 꽉 들어 차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 하여 되돌아온 적이 있다.


이날은 청주 화요산악회에서 안내하는 등산 겸 암자 탐방이라 더욱 잘 되었다 싶어 얼른 신청했다. 수요산水樂山회원들에게 이야기 하니  자리가 다 찼는데 모두 함께 가고 싶어하여 대기 신청을 했는데 모두 받아 들여져서 불온, 산여, 늘봄도 함류하게 되어 더 즐거웠다.


아침에 7시 30분 체육관에 모여 출발하였다. 차는 서청주 인터체인지로 중부고속도로에 들어서서 자그마치 4시간만에 산행 입구인 두모계곡 주차장에 도착했다. 날씨가 매우 추울 것으로 생각하여 방한복을 배낭에 잔뜩 넣어가지고 왔는데 여긴 꽃이 피었다. 주차장에서 속옷을 벗어 가방에 넣고 출발했다.


금산 들머리는 완만하여 산행이 아주 순조로웠다. 우리는 아예 맨 뒤에 쳐져서 후미대장인 대감님과 일행이 되었다. 경치가 달라서 나는 입구부터 카메라를 꺼내들고 사진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내 사진 실력은 도무지 좋은 구도를 잡을 줄 모른다. 평소에도 귀찮더라도 카메라를 들고 다녀야 하겠다.


양아리 석각은 거북이 모양의 커다란 바위에 글자인지 그림인지 새긴 것인데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가 시종 서불에게 시종 500면을 주면서 불로불사약을 구해오라고 보내서 서불이 이곳을 지나다가 "서불과차"(서불이 이곳을 지나다)라고 적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서불은 세상에 늙지 않고 죽지않는 약이 어디 있겠느냐며 이곳에서 사냥만 즐기다가 돌아갔다고 전한다. 이것은 다만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학자는 "환웅이 사냥을 나왔다"라고 적은 것이라고 하나 이것도 증명된 바는 없다. 우리는 이 신비스러운 글자 앞에서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조금 가팔라진 산길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능선에 오르기까지 몇 번 쉬었는데 땀이 배기 시작한다. 1시간 남짓 걸어서 부소암에 도착했다. 뒤에는 거대한 암봉이 있다. 이것이 부소암이라고 한다. 부소암은 진시황의 아들 부소가 귀양와서 살다 갔다하여 부소암이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진시황의 아들이 이곳까지 와서 살았는지 역사가 확인하는 일은 없다. 암석 바로 아래 있는 작은 암자 부소암 마당에 놓여 있는 들마루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우리 일행 넷과 후미대장, 황금 소나무, 김진숙 부회장, 그리고 모녀가 함께 온 회원과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가져온 음식을 먹었다. 우리는 늘봄이 김밥을 준비해 왔고 내가 빵을 가져 갔는데 충분히 요기가 될만했다. 암자는 너무 소박하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남해 바다는 아름답기 그지 없었다. 약간의 미세먼지가 있어서 유감이기는 했지만 정말 아름다웠다. 바다에서 우리가 서있는 산으로 이어지는 기슭에 전개되는 다랭이 마음도 낯설지 않았다. 이렇게 놓은 곳에 올라와 내려다 보는 것은 또다른 맛이 있는 것이다.


점심을 먹고 바위를 돌아 부소암을 바라보았다. 부소암 아래 부소암이라는 암자가 있어 약간 혼란스럽기는 했지만 이 바위 또한 명품이었다. 바라볼수록 기이하다. 이 놈음 아주 확 줄여 놓고 보면 껍데기를 깨뜨린 호두 같기도 한고 조금 더 키워서 보면 인간의 뇌 같기도 하다. 이 바위를 바라보며 잠시 쉬었다가 또 오르기 시작했다.



산행 들머리

산행 들머리에서 바라본 준령들

남해도도 황토 천지이다. 산행을 시작하는 회원들

거북모양의 양아리 석각

부소암에서 바라본 동쪽 능선- 아직 얼음이 그대로이다.

부소암 암자 앞에서 늘봄

부소암 마당


남해 바다와 다랭이 마을

부소암을 등에 지고

부소암 앞에서 회원들


후미대장인 대감님께서 상사바위를 반드시 들러야 한다고 강조한다. 다른 회원들은 그냥 금산 정상으로 향한것 같은데 상사바위를 가야 제대로 된 경치를 볼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다리가 팍팍하기는 했지만 대감을 따라 상사 바위로 15분쯤 내려 갔다. 과연 여기가 제대로된 바다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었다. 바다 뿐 아니라 상사바위에 앉아보면 제석봉과 좌선대가 다 보이고 그 건너 보리암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처마밑에 붙여지는 보리암 절집이 손에 잡힐 듯하다. 해수 관음보살이 손에 잡힐 듯하다. 절집은 뒤쪽에 커다란 절벽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 있고, 앞으로는 천길 낭떠러지 아래 바로 상주 해수욕장이다. 상사바위에서 보리암 경관을 한 눈에 볼 수 있으니 과연 대감님 말씀을 들은 것이 잘한 일이었다.


일행은 다 떠나고 우리만 남은 것 같다. 다시 좌선대 제석봉을 거쳐 금산 정상에 올랐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는 조릿대 숲이 있어 구색을 맞추어 주었다. 이런 섬 산에도 조릿대가 자라고 있으니 신기하다. 대 숲을 지나며 진귀한 일이라도 만난 듯이 사진 찍는 이들이 많다. 정상 부분에는 큰 바위가 있고 봉수대가 만들어져 있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봉수대에 올라 바다를 조망하였다. 낮은 산이면서 이렇게 기막힌 경관은 가서 보지 않으면 모른다. 다만 사람이 너무 많아서 산에 길이 이리저리 나 있는 것이 안타까울 일이었다. 금산은 비단 금자 錦山이다. 비단 같은 산이다. 이름 그대로 비단 같이 아름다운 산이다. 이산은 본래 금산은 원효대사가 보광사라는 사찰을 지은 뒤 보광산으로 불리어 오다가 고려말 조선 태조께서 이 산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뒤 왕위에 오르게 되자 그 영험에 보답하는 뜻으로 영구불멸의 비단을 두른다는 뜻의 금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사바위에서

상사바위에서 바라본 보리암 전경

정상 가까이에서


정상에서 수요산

정상 봉수대에서


정상에서 바로 한 모롱이를 돌아 내려오니 보리암이다. 좁은 절집에 사람이 터질 듯 많다. 보광전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발 디딜 틈이 없다. 언제가 대구 갓바위에 갔을 때도 발 디딜 틈이 없어 겨우 삼배를 드리고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여기는 그보다 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이 불교 신도들인 것 같다. 여자들이 더 많다. 밖에서라도 부처님을 들여다 보려고 했으나 사람이 많아 드것도 허락되지 않았다. 나와서 해수관음보살께 내려 갔다. 거기도 절을 올릴 자리가 없다. 기다릴 것도 없이 배낭을 벗고 카메라를 내려놓고 신발을 벗고 기다렸다. 어떤 여보살이 절을 마치고 내려 오기에 서둘러 삼배를 드렸다. 그러느라 여기서 내려다보는 상주 해수욕장의 절경을 다 보지 못했다. 일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리암은 보광전, 산신전이 있고 요사채가 있었다. 좁은 공간에 석축을 쌓아 그런대로 전각들을 들어 앉혔다.


여기서부터 서둘러 내려가야 시간내에 도착할 수 있다. 경사가 급한데다가 돌계단이 많아 무릎이 많은 충격을 받았다. 거리가 짧으니 무리한 산행은 아니지만 최근에 체중이 늘어 무릎과 발목이 많이 아프다. 내려오는 길에 장군봉, 쌍홍문을 보았다. 쌍홍문은 꼭 코 큰 사람의 콧구멍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쌍굴을 통과해서 아래로 내려왔다.


보리암 뒤안


보리암에서 바라본 상주해수욕장

해수 관음보살님

보리암을 뒤돌아보니

쌍홍문

쌍홍문에서 일행들과

장군암-장군의 얼굴이다.

금산 탐방지원센터 주차장에서


아름다운 경치를 자꾸 뒤돌아보며 산 아래로 내려왔다. 언제 이 산을 다시 와 볼 수 있을까. 보리암을 언제 다시 올라가 볼 수 있을까? 돌아보며 돌아보며 차에 올랐다. 부근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밤길 네시간을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