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답사/한국의 사찰

충남 서천군 한산면 건지산 봉서사乾芝山鳳棲寺

느림보 이방주 2016. 4. 7. 22:00

건지산 봉서사乾芝山 鳳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마곡사의 말사

▣ 2016년 4월 5일

▣ 충남 서천군 한산면 호암리 195번지 건지산의 건지산성 안에 있는 사찰

▣ 건지산성, 한산읍성 답사와 함께


벼르던 건지산성 답사를 떠나기로 했다. 건지산성을 가면 건지산 내에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인 고찰 건지산봉서사를 함께 볼 수 있다. 봉서사는 건지산성 답사 준비를 하는 동안 성내에 사찰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산성과 사찰이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먹었을 때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출발해야 한다.


사찰 주차장인 듯 너른 공터가 보였다. 주차를 하고 배낭을 챙겨 메고 사찰 경내로 들어갔다. 절집은 밖에서도 다 보이는데 진입로를 아늑하게 잘 꾸며 놓았다. 초입에 일주문 대신에 오석에 봉서사라고 한글로 새겨 놓은 모습이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와 어울렸다. 사찰 이름을 한글로 새겨 놓은 것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곧 안내판에 한자로 병기해서 봉이 머물러 사는 절이라는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분명 풍수에 의한 이름이다. 건지산이 봉황이 알을 품은 형태라든지 하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조금 더 올라가니 정말로 일주문처럼 커다란 느티나무가 절집을 수호하듯 가리고 있었다. 사천왕이 지키듯 가운데 크게 두 그루가 있고 양쪽으로 작게 두 그루가 더 있어서 균형이 딱 맞았다.


절은 아주 아담하다. 마당에서 기단을 2층으로 쌓고 계단을 10개쯤 만든 다음 그 위에 극락전을 모셨다. 그리고 절 마당에서 계단을 한참 내려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가정집처럼 있었다. 요사채까지는 밖에서 스님들의 승용차가 들어갈 수 있었다. 극락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모시게 되어 있다. 극락전은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 단청을 새로 했는지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웠으며 특히 처마가 다른 절에 비해 넓어서 더 아름다웠다. 극락전 뒤에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주변의 소나무와 진달래가 어울려 무슨 극락에 가는 듯한 기분이다. 극락전에서 왼쪽으로 오르면 삼신각이 있어 보이는데 올라가지 않았다. 이 사찰의 법당에 아미타부처님을 본존불로 모신 것이 건지산성이 백제 부흥군의 명복을 비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건지산성을 운주산성, 임존성과 아울러 백제 부흥군의 마지막 격전지인 주류성으로 주장하는 것과 일맥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요사채 마당에 스님이 두 분 계시다가 올라온다. 간략하게 합장 인사를 하고 나는 극락전으로 들어갔다. 본존불인 아미타부처님의 인자한 미소는 법열의 미소가 아니라 대중을 가슴에 품는 듯한 미소이다. 설명에 의하면 나무로 조각하여 금칠을 해서 모셨다고 한다. 삼배를 드리고 탱화를 살펴보고 조용히 나왔다.


보물 제1751호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舒川 鳳棲寺 木造阿彌陀如來三尊坐像)

 

서천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은 아미타여래를 본존으로 관음,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아미타삼존 형식이며, 조선 후기의 예 중에서 이른 시기에 해당한다. 삼존상에서 발견된 발원문(發願文)을 통해 1619년이라는 정확한 조성시기와 조성주체, 시주자 등 조성과 관련된 기록이 전하고 있어 이 시기 불상연구에 기준자료를 제공한다

 

이 불상을 만든 수연(守衍)17세기 전반기에서 중반기에 걸쳐 활동한 조각승인데, 그는 1615년 태전(太顚)을 도와 김제 금산사 독성상을 제작하였고, 1622년에는 현진(玄眞)을 도와 서울 지장암 목조비로자나불상을 제작하였다. 이후 강화 전등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23)과 익산 숭림사 영원전 지장시왕상(1624),그리고 예산 수덕사 대웅전 석가여래삼불좌상(1639)을 수조 각승으로 참여하여 제작하였다. 이 작품은 지금까지 알려진 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작품이며, 그의 초기의 조각적 경향을 가장 잘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다. 즉 턱이 짧은 넓적한 얼굴에 도톰하게 자리 잡은 넓적한 코, 여기에 짧은 인중과 두툼한 턱으로 중후하면서도 개성이 넘치는 얼굴, 넓고 두툼한 가슴과 긴 허리에서 오는 중량감 넘치는 형태, 강직한 선 위주로 표현한 도식화된 주름이나 왼쪽 어깨나 무릎 아래로 펼쳐진 독특한 형태의 주름 표현 등에서 그의 조각적 경향이 잘 나타나 있다

이 삼존상은 17세기 전반기 추구했던 대중적 평담미와 수연이 추구한 중량감 있는 형태미를 잘 보여주고 있는 불상으로 평가된다.


봉서사에는 석북 신광수, 월남 이상재, 석초 신응식이 들어와 공부했던 절이라고 전해진다. 절 마당 오른쪽으로 건지산성으로 오르는 오솔길이 보였다. 오솔길로 오르는 길에 노란 수선화가 아름답다. 날씨는 화창하고 주변 나무와 꽃들이 더욱 아름답고 부처님의 세계는 어디가 끝인지 가늠할 길 없다. 이상재를 비롯한 세분의 사적 이외에 백제 부흥군과 관련된 설화는 전해지지 않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절이 백제 멸망 직후나 백제 시대에 창건된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있는 절을 옮겨 왔다는 설도 있고 그 전부터 있었다는 설도 있어서 창건의 역사가 모호한 절이다. 그래서 나는 운주산성이나 금이성이 옛 주류성이라는 생각이 자꾸 확고해진다. 그것은 운주산 비암사가 분명 백제 유민의 부흥군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서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그 넋을 위로하는 불비석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봉서사는 작고 아담한 절이다. 절집 주변에 건물터가 많이 있는 것으로 봐서 분명 사연을 있을 것이다. 사연을 뒤로하고 건지산성으로 오른다.



봉서사 입구

사천왕처럼 봉서사를 지키는 느티나무

아름다운 극락전

수선화

(2016.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