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유럽 일주 2 - 제 2일차 (7월 12일) 모스코바 크레믈린과 붉은 광장
아침 7시에 궁금했던 호텔 앞 공원을 산책했다. 넓고 여유 있는 숲이 한없이 부러웠다. 숲 속에는 자동차가 다니는 길도 있고 사람이 산책할 수 있는 오솔길도 있고 자전거가 달릴 수 있는 자전거 길도 있다. 길을 제외한 숲속은 누구도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나무와 풀이 자랐다. 아주 나즈막한 언덕에서 물길도 나 있다. 끝없이 걸어도 가끔씩 자동차를 한 대씩 만날 수 있을 정도로 한적하다. 참 부러웠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해서 우리는 호텔로 뛰어 왔다.
호텔 식당에 들어오니 8시가 되었다. 거의 한 시간을 걸은 것이다. 남의 나라 더구나 철의 장막에 들어와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산책을 즐겼으니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역사는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 것인가. 아무도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아마도 바다에 물이 괴듯 낮은 곳으로 정의가 괴어 있는 정당한 곳으로 흘러갈 것이다. 제정 러시아가 볼세비키 혁명을 거쳐 소련이 되어 주변국까지 괴롭혔지만 이렇게 다시 장막이 걷히고 회복되어 가는 것처럼 말이다. 호텔식은 듣던 대로 별게 아니다. 하긴 우리가 국내 어디에서 러시아 요리 이야기를 들어 보기나 했는가? 러시아 하면 그냥 보리빵과 보드카 정도밖에 생각나는 것이 없지 않은가? 빵과 과일 요구르트와 흰죽이 전부이다. 그러면 된 것이다. 진한 커피를 다 마시지 못했다. 사실은 남의 민족이 정성들여 만들어 놓은 요리를 '맛 없다' 한 마디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다만 내 입에 맞지 않을 뿐이다. 내 입이 세상 입맛의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호텔 주변의 산책 길
우리가 묵은 호텔
9시에 버스를 타고 크레믈린 궁으로 향한다. 크레믈린이란 말을 들으면 궁의 모습보다 성벽이 먼저 생각난다. 크레믈린은 러시아의 중심지이고 모스코바의 핵심이다. 모스코바의 모든 도로는 크레믈린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래서 일명 과녁 도시라고도 한다니 그 정치적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크레믈린으로 향하는 도로는 4차선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선이 화단이나 정원 아니 숲으로 되어 있다. 4차선 양쪽으로 녹지가 있고 자전거 도로가 있고 그 옆으로 인도이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 중간 중간에 녹지를 헐어 주차장을 만들었다. 공간이 풍부하니 주차장도 풍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다거나 깨끗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잡초가 많고 너저분하다. 그렇더라도 다니기에는 얼마나 편리할까. 도심을 달리면서도 숲을 산책하는 기분일 것이다.
건물은 모두 육중하고 무게 있는 건물이다. 단순한 디자인 주상복합 아파트가 도로 주변에 육중한 모습으로 서 있다. 가이드는 러시아는 120개 소수민족이 살고 있으며 러시아를 비롯한 10여가 민족이 중심이 된다고 했다. 대부분 언어로서 민족을 구분한다. 넓은 평지에 자작나무가 많아 차가버섯이 유명하단다. 모스코바를 흐르는 강이 모스코바강인데 약 700m에 달한다고 한다.
비가 내린다. 수많은 인파가 크레믈린을 첫 행선지로 삼았는지 우산 쓴 사람들이 북적인다. 중국인이 많은 곳은 특히 시끄럽고 질서가 없다. 우리만 질서를 지키다가는 늘 양보만 하게 된다. 그래서 서구인들에게 우리도 '차이니스'로 오해를 받는다. 크레믈린에 도착하니 우산을 써야 할 정도로 비가 쏟아진다. 각국에서 온 많은 관광객들이 순서를 기다린다. 여기서도 출입에 X-Ray 검사를 하고 여권을 다시 검사하고 경찰관들이 죽 늘어서서 노려 본다. 건물을 돌아 내부로 들어 갔다. 푸틴이 근무하는 곳에는 근위병들이 지키고 있었다.
크레믈린 안의 성자의 광장에는 여러개의 성당 및 성전이 모여 있었다. 아르헹길리스 사원, 우스벤스키 사원 12사도 사원 트로이츠카야탑, 대포의 왕, 이반 대제의 종루등을 바라보았다.
러시아정교에 대해 궁금증이 많이 생겼다. 특히 그리스정교와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가이드가 약간 그 이야기를 비쳤다. 비잔티움의 그리스 선교사들이 러시아에 전파한 그리스도교가 988년 성 블라디미르 대공이 통치하는 키예프 공국의 국교가 되었다가 11세기초부터 14세기 중반(1448년)까지 러시아 교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임명한 대주교가 통치하였는데 키예프의 그리스인 수도 대주교가 정교회와 로마카톨릭 교회사이에 일시적인 연합을 선언한 피렌체 연합에 선언한 후 독립하여 러시아 정교가 되었다고 한다.
우스벤스키사원은 성모승천대성당이라고 하는데 다른 성당과 달리 더 웅장하고 위엄이 있어 보인다. 15세기 이반 3세라고 하는 이반대제가 국가의 위상을 굳건히 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는데 지금도 국가의 유력인사들이 새해 미사를 드리거나 국가의 중요한 일을 발표하거나 중요 행사 때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대포의 왕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라는데 대포 알의 무게만도 1톤이나 되는데 직접 전쟁에 쓰기보다는 왕실의 위엄을 보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아르헹길리스 사원은 미카엘 대 천사 사원이라고 하는데 지붕에 여러개의 원형 돔이 있고 그 중 중앙에 있는 돔은 황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이 사원에는 러시아 황제 46명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고 한다. 12사도 사원도 흰색의 우아한 건물이었고 트로이츠카야탑도 붉은 색의 탑이 우뚝 솟아 있었으며 이반 대제의 종루에는 여러 개의 종이 있었다. 이 모든 성당이 신을 위한 성당이거나 종교를 통하여 민중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은 아니라고 본다. 모두가 독재자들이 자신의 위력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정교는 황제가 교회의 모든 직책을 임명했다고 한다. 제정일치시대에서 벗어나 종교와 정치가 처음 분리되었을 때 로마 교황의 인준을 받던 정치 지도자들이 교황의 손에서 벗어나더니 도리어 종교지도자를 정치 지도자가 임명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인간이 점점 신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나 생각되었다. 또한 그런 결과로 이반3세를 비롯한 많은 러시아 황제들이 마음 놓고 독재를 하였을 것이다. 마치 독재자들은 신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 현재까 얼마나 많은 독재자들이 나와서 포악한 정치를 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보면 힘을 잃은 종교가 대중에게 얼마나 큰 아픔을 주고 있는지 짐작이 갈만도 하다.
소비에트연방이 오늘날 만큼이라도 자유를 갖게 된 것은 고르바쵸프의 개혁 정치의 덕이라고 볼 수 있다. 소비에트 연방에 속했던 많은 나라들이 독립하고 진정한 의미의 종교의 자유도 이 때부터 보장이 되었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연임을 하고 나서 심복을 대통령을 한 번 시킨 다음 자신은 총리로 있다가 헌법을 개정하여 대통령 임기를 늘린 다음 또 다시 대통령 자리에 앉고 젊은 여성과 재혼하는 파렴치한 행동을 하는 것도 역시 신의 진리를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종교를 통하여 수신을 하고 신의 존재와 내세의 존재를 확신한다면 두려움 때문에 독재를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는 계속 내린다. 여기서 계속에서 현지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지만 워낙 빨리 이야기를 하고 수많은 사원들의 사연을 한꺼번에 말할 수밖에 없어 사전 지식이 가지고 있지 않아서 알아들어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성자의 광장에서 보이는 대통령 집무실 노란 건물
성자의 광장으로 들어가는 길
세계에서 제일 큰 대포와 포탄
아르헹겔리스 사원
12사도 사원
성모승천대성당
블라고 베르첸스키 사원
성모승천 대성당 앞에서
이반 대제의 종루
만들다가 깨져서 한번도 울리지 못한 황제의 종
다시 버스에 올라 붉은 광장으로 갔다. 붉은 광장은 붉은 색은 없으나 붉은 성벽이 보인다. 대통령궁 쪽으로 붉은 성벽이 버티고 있다. 광장은 꽤 넓었다. 바닥에 돌이 깔려 있고 들어가면서 바라보면 바로 맞은 편에 바실리 사원, 오른쪽으로 붉은 성벽과 함께 레닌 묘, 왼쪽으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쇼핑센터 국영 굼 백화점으로 둘러 싸여 있었다. 굼백화점은 누가 봐도 베르사유 궁전을 본떠서 지은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긴 주변의 건물이 유럽풍의 거대한 건물들이고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건물의 모습을 많이 모방한 것 같았다.
주변에 꽃을 잘 가꾸어 볼만했다.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 나는 성비실리 사원 앞으로 가서 아름다운 모습을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여성 회원들의 제안에 순응하여 우선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화려하고 웅장한 외부의 모습과 달리 물건들은 몇 가지 명품을 제외하고는 별다를 게 없었다. 내부도 꽃과 아름다운 등불로 장식하여 화려하기는 했지만 물건들이 풍요롭게 전시되거나 사람들이 물건을 흥정하고 거래하느라 분주해 보이지는 않았다. 삼성 갤럭시 가게가 있어 앞에 가보았는데 종업원은 5명쯤 되는데 손님은 없고 갤럭시 스마트폰 몇 개가 전시되어 있을 뿐이었다.
바로 밖으로 나와 레닌묘를 가보았다. 우리 광개토대왕의 묘도 이만큼 웅장한지 한번 가봐야겠다. 현대사의 한 정치지도자의 묘를 이렇게 엄청나게 크게 만들어 놓고 후세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레닌이 러시아 역사에 대단한 인물일까 의문이 생겼다. 레닌이 민중의 행복을 위하여 이만큼 대접을 받을 정도로 헌신했는지 생각해 볼 일이다. 어쨌든 지금은 공산주의는 사라지고 레닌의 볼셰비키 혁명은 허상으로 끝나버린 게 아닌가 한다. 소련의 공산주의가 러시아인이나 주변 국가들의 행복에 얼마나 기여를 했나 하는 것은 생각할 여지도 없다. 그래도 아직도 그들은 레닌의 묘를 이렇게 보존하고 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한 사람이 이승만 대통령 묘소에 참배한 자기당 대표를 향하여 히틀러의 묳에 참배한 것이라고 비난한 것에 비하면 시사하는 바가 참 크다. 우리는 툭하면 동상을 끌어 내리고 전직 대통령이나 정치지도자를 비난하는 발언을 하며 역사를 부정한다. 과연 옳은 일인가 생각해 볼 일이다. 과거는 다같이 반성할 일이지 서로 비난하고 부정할 일ㅇ은 아니라고 본다.
성 바실라 성당 앞에 갔을 때 여성회원들이 따라왔다. 성 바실리 성당은 한 가운데 매우 높은 돔 모양의 지붕이 있고 주변에 양파 모양의 8개의 돔이 아름답다. 건물 전체가 붉다. 그 앞에서 젊은이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다. 이 성당도 이반 대제의 지시로 지어졌다는데 그 동기가 이웃 민족을 정벌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라니 그들이 해석했던 종교 정신이 나를 아연하게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이 외세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호국 사찰이었던 것과 많이 대조된다.
붉은 광장에 있는 국립 역사 박물관
성바실리 성당
대통령궁의 외부
굼백화점의 내부
시간이 많이 없기 때문에 오래 머물 수는 없었다. 고등학교 때 제정 러시아 시대,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연방 등의 얘기를 들었던 것이 언듯언듯 생각난다. 그로 보면 세계사에 대한 무지가 부끄럽기 한이 없다. 적어도 이곳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북유럽과 러시아의 역사쯤은 한 번 읽고 왔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카이런 호텔로 옮겨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김치찌개에는 두부 돼지고기가 들어 갔다. 숙주나물과 김치 오이 겉절이도 있다. 우리는 무짱아찌와 고추장 김을 꺼내 놓고 함께 먹었다. 김치찌개는 맛은 없지만 맛없는 러시아 빵보다는 훨씬 낫다.
점심을 마치고 모스코바의 명동이라고 하는 아르바트 거리에 갔다. 수많은 젊은이들이 쌍쌍이 데이트를 즐기고 거리는 흥청거렸다. 철의 장막이라고 여겼을 때도 젊은이들은 이렇게 흥청거릴 수 있었을까 의문이다. 아르바트라는 말은 '장터'를 의미한다고 한다. 아랍인들의 장터였다고 하니 아랍인이 신라에만 온 것이 아니라 가지 않은 곳은 없는 것 같다.
여기서도 잠시 해발 220m의 모스코바에서 가장 높다는 레닌의 언덕 (일명 참새의 언덕)이라는 곳에 갔다. 드넓은 모스코바가 내려다 보인다. 특히 중심지라고 생각되는 고층 건물들이 보인다. 이 언덕은 특히 모스코바 국립 대학이 있어서 젊은이들이 더 많이 오는가 보다. 모스코바 대학은 웅장한 건물이 많아 먼 데서도 다 보인다. 말로는 대전시 만하다고 하는데 사실은 어림없는 소리이다. 지금 대전시가 얼마나 큰데 그렇게 말할 수 있는가?
푸쉬긴과 그의 애인 동상
고민하는 인간상 그림자까지 형상화했다
거리의 모습
거리의 예술가
거리의 모습
러시아 외교부 청사
모스코바대학
레닌의 언덕에서 보이는 시가지
저녁은 점심을 먹은 호텔에서 일식을 먹었다. 사실 일식은 언제나 그렇듯이 먹을 게 없다. 밥 한 술, 감자 튀김 두 쪽, 아래 윗물 지는 일본식 된장국, 새우 튀김 하나가 전부다. 겨자가 벌레 한 마리가 똥을 싸 놓은 것 만큼 있기에 물으니 연어회가 두어 점 있었다고 하는데 내 것은 심부름하는 아이가 집어 먹었는지 그나마 없다. 공동으로 오이 무침과 콩나물 무침도 있었으나 밥이 적으니 먹을 수도 없다. 물은 미국식으로 유리컵에 가득하다. 일본에서는 물도 조금 주는데 그나마 일본보다 나은 것인가?
저녁을 먹고 모스코바에 있는 레닌그라드역(쌍트 페테르부르크 역)으로 갔다. 러시아는 역 이름을 종착지 지역 이름으로 짓는다고 한다. 말로는 열차로도 페테르부르크까지 8시간 정도 걸려야 하는데 고속열차이기 때문에 4시간이면 간다고 한다. 4시간이라도 도착 시간은 23시 50분이다. 1시에 잠자리에 들면 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득시글거린다는 소매치기를 피하여 뭉쳐 서있는 우리들의 모습이 러시아 사람들의 눈에는 좀 딱해 보였을 것이다.
이렇게 승객이 많고 큰 역사가 후생시설은 형편 없다. 러시아가 아직은 민중 위주가 아닌 관 위주라는 증거이다. 단체라 그런지 플랫폼으로 나가는 대기실로 입장했는데 화장실이 없다. 바람이 불 때마다 10도 아래로 내려간 추위가 여름 재킷 밑으로 파고 든다. 화장실이 있고 바람을 막아 줄 수 있는 대합실로 들어 가려니까 짐 검사를 다시 한다. 그리고 여권까지 검사한다. 이런 우여곡절을 참고 7를 넘었다. 러시아 특급열차를 타기 위해 가방을 다시 X-Ray검사를 받고 몸 수색을 당한 다음 8호차에 몸을 실었다. 자리에 앉자 마자 바로 잠에 떨어졌다. 페떼르부르크로 가는 동안 경관을 하나도 보지 못했다. 도시를 벗어나기 전에 잠에 빠졌기 때문이다.
23시 50분 인솔 가이드 임민정씨가 우리를 깨웠다. 15분 후면 페떼르부르그 역에 도착한다고 한다. 도착과 동시에 짐을 들고 내렸다. 역사에서 길고 긴 가방의 행렬은 흡사 피난민 같기도 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를 당하던 우리 민족의 모습이 이러했을까? 머나먼 이국에서 잠시 서글픔에 빠졌다. 그건 아니다. 우리는 지금 호화스런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다. 몇 시간 머물어 갈 호텔이라 그런지 냄새가 났다. 몸을 씻고 가방을 싸놓고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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