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북유럽 일주 3 - 제 3일차 (7월 13일) 핀란드 삼림 지대, 시벨리우스 공원과 발틱해
새벽 3시에 깼다. 2 시간은 잔 것이다. 모자란 잠은 버스에서 채우면 된다. 누워 있었다. 4시에 기상하여 몸을 씻고 옷을 입었다. 5시에 로비에서 도시락을 받았다. 러시아 보리빵 1개, 샌드위치 1개, 오렌지 1개, 쥬스 1개, 요쿠르트 1개가 전부이다. 물도 한 병 있다. 아침 식사로 충분하다. 겸손한 아침 식사를 하고 로비에 나가 헬싱키로 가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5시 20분에 출발하여 쉬지 않고 달려 8시에 국경에 도착하여 출국 심사를 받았다.
페테르부르크에서 국경까지 오는 동안 우리나라로 치면 자동차 전용도로 쯤 되는 것으로 보인다. 2차선인데 중앙선이 있고 제법 넓은 갓길이 있다. 차는 우차선으로 달리다가 갓길로 가기도 하고 중앙선을 넘기도 한다. 교통량이 많지는 않지만 차는 갓길과 중앙선을 묘하게 넘나들면서 슬기롭게 운행을 한다. 우리나라의 황색선에 해당하는 중앙선은 흰색인데 넘을 수 있는 선은 점선으로 넘을 수 없는 선은 실선으로 표했다. 교통량이 적당하여 차가 밀리거나 주행에 불편함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도로 양쪽의 숲이다. 대개 붉은 소나무(적송)과 하얀 자작나무가 섞여 경쟁적으로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 어느 곳은 적송만 쫑곳하고 빽빽하게 하늘로 치솟고 있고 어느 곳은 하얀 자작나무만 같은 모양으로 빽빽하게 하늘로 치솟는다. 적송과 자작나무가 섞인 곳이 가장 아름다웠다. 자작나무는 불모지에 가까운 지역에 잘 맞는 줄 알았는데 이런 평지에서 잘 자라고 있다. 소나무가 마치 미루나무처럼 가늘고 곧게 하늘로 치솟아 오른 것은 처음이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산에 있는 적당히 구불구불 올라간 소나무가 제격인 것으로 생각했는데 여기서 잘 자란 소나무를 보니 여기서 살아야 할 소나무가 우리나라 산에 와서 객지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어쨌든 이렇게 풍요로운 삼림이 부럽다.
도로변에서 보이는 삼림
막장봉 주변에서 산이나 들이 내 것이 아닌게 다행이라 생각했는데 여기서는 이 풍성한 자연이 우리 것이 아닌 것이 아쉽기 짝이 없다. 아마도 막장봉 아래 것은 내 것은 아니지만 이미 우리 것이라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었나 보다.
미국에서 사막을 부러워했는데 트랙터로 갈아 엎고 밀 씨앗을 뿌리기만 하면 맛있는 빵을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이 초원이 더 부러웠다. 생산은 하지 못하더라도 산책이라도 할 수 있으면 오죽이나 좋을까? 그러나 이 도로를 달리는 차량은 러시아가 생산한 차보다 현대나 기아의 마크를 달고 달리는 차가 더 많다. 러시아의 핸드폰은 대개가 삼성이고 갤럭시를 쓰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다.
국경을 넘기 직전 공직 37년을 자랑하는 연세 많은 한 분이 화장실로 뛰어 갔는데 돌아오지 않는다. 운전기사가 쫓아가서야 천천히 걸어서 되돌아온다.
까다로운 출국 심사를 마치고 얼마쯤 달려 아주 손쉬운 입국 절차를 마쳤다. 러시아 국경을 넘어 핀란드로 가니 화장실조차 깔끔하다. 도로 양편도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도로와 입국장 모든 게 다르다. 도로 주변의 집들도 깔끔하다. 농장도 깨끗하게 정리되었다. 도로는 고속도로처럼 중앙 분리대가 있고 양쪽에 유채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국민소득과 정치 수준을 짐작할 만하다.
10시가 좀 넘어서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 도착했다.
핀란드를 스칸디나비아 삼국으로 아는 것은 잘못 이해한 것이다. 스칸디나비아 3국은 노르웨이, 스웨덴, 덴마크이다. 핀란드는 핀족이 사는 땅 즉 90% 이상이 아시아계 핀족인 나라이다. 약 80% 정도가 핀란드루터교를 신앙으로 하고 있다. 대부분 국민이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복이다. 그만큼 철학적 가치관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정신 교육은 교회에서 이루어진다. 더구나 공통된 신앙을 가졌다는 것은 더욱 행복이다. 이것도 핀란드가 복지에 정치 목표를 두고 있으면서 과다한 세금을 부과하고 빈부 차이를 최소화하는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핀란드는 루터교가 국교이며 국가에서 교회를 지원하고 사제를 공무원처럼 국가에서 임명한다고 한다. 따라서 종교세를 걷는 나라이다. 이곳은 연중 대부분이 겨울이다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이고 나머지는 여름이다. 우리 국민의 10분의 1도 안되는 500만 남짓한 국민이 우리 한반도의 1.5배 되는 비옥한 땅에 살고 있어서 국민 소득이 5만달러에 달한다고 한다. 그러니 평화로울 수밖에 없다. 여름에는 16시간 이상 낮이 계속되고 겨울에는 태양이 없는 낮이라고 하니 그런 점이 안타깝기는 하다.
푸른 삼림지대를 지나 도시로 접어 들었다. 아름다운 도시이다. 헬싱키 항에는 유람선이 크루즈와 요트가 정박되어 있다. 모스코바에서 본 것과 비슷한 유럽풍의 오래된 건물들이 즐비하다. 도로는 좁고 구불구불해서 마치 런던이나 파리 시가지를 연상하게 한다. 10세기부터 석조로 지은 건물들과 당시 도로를 그대로 보존 수리하면서 지탱하고 있다고 한다.
11시에 헬싱키 원로원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에는 무슨 국가적 행사가 열리고 있는지 우리의 관광을 방해하고 있었다. 우즈벤스키 사원, 원로원 건물이 보였다. 원로원은 지금 총리 집무실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광장에 특이하게 핀란드를 지배했던 러시아의 황제 알렉산드로 2세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알렉산드로 2세가 핀란드를 지배할 당시 가장 자유를 많이 주었다고 한다. 그럼 우리도 데라우치 총독시대의 3.1운동 이후 문화정책을 썼던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동상을 세워야 하는가? 생각의 차이이다.
원로원 광장에서
총리 집무실로 쓰고 있는 예 원로원 건물
핀란드인이 세운 알렛산더 2세의 동상
점심은 핀란드 현지 뷔페로 아주 배부르게 먹었다. 러시아에서의 굶주림을 여기서 채우려는 듯이----. 점심 식사 후에 마켓 광장을 돌았다. 아주 작은 시장이다. 우리 육거리 시장 규모도 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과일도 사고 기념품도 샀다.
마켓광장을 관광하고 나서 우즈벤스키 사원을 관광했다. 커다란 바위를 돌로 폭파하고 움푹 파인 자리에 동선으로 지붕을 잇고 교회로 활용하는 것이다. 내부로 들어가 보니 신비롭다. 매우 넓고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예배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점심으로 먹은 뷔페
마켓 광장
우즈벤스키 사원의 외부
우즈벤스키 사원의 천정-동선을 빙빙돌려 천정을 만들었다
우즈벤스키 사원의 내부
여기서 다시 버스를 타고 헬싱키의 마지막 여정인 시벨리우스 공원으로 갔다. 시벨리우스 공원은 핀란드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기 위해서 조성한 공원이라고 한다. 아름다운 발트해가 보이는 낮은 언덕에 조성된 공원에서는 수목과 아름다운 해변과 여유로운 사람들의 표정을 담고 있었다. 공원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벨리우스의 두상과 파이프오르간을 형상화한 조형물인 시벨리우스 기념비였다. 기념비는 파이프오르간 모양을 형상화하기도 했고 시벨리우스가 가장 사랑했던 자작나무 숲의 모양으로 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핀란드에서 볼 수 있는 오로라를 그렇게 사랑했다고도 한다. 이 기념비는 겨울에 바람이 불면 스스로 연주되어 소리를 낸다고 하니 이곳에 오면 시벨리우스의 작품을 들을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시벨리우스는 핀란드의 아름다움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작곡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소나무가 아름답고 산책나온 시민들의 모습은 하가롭기만 하다. '시벨리우스 음악공원' 우리나라에는 그만한 공원이 있을까? '우륵 음악공원' '박연 음악공원' '송강 정철의 문학공원' '세종대왕의 한글창제 공원' 같은 게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김유정 문학촌' '목성균 수필문학촌' 정말 가능할까? 올 가을엔 그걸 시작해야겠다. 이런 사고를 가진 핀란드인이 부럽다.
식민지 지배자였던 알렉산드로 2세의 동상을 세울 수 있는 시민들의 마음의 여유나 그걸 허용하는 정부의 포용심 같은 것은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지만 그 포용심만큼은 배워야 할 것이다.
시벨리우스 기념비
시벨리우스
이제 크루즈 여행이 시작된다. 배를 타러 스톡홀름으로 간다. 어떤 역사가 주어질 것인가? 오후 4시 20분, 헬싱키에서 고속도로로 투르크로 향한다. 투르크까지는 180km라 한다. 투르크는 우리나라의 인천항 정도 되는 수도권의 관문 항구이다. 투르크 대학는 핀란드에서 최초로 세운 대학인 것처럼 교육의 도시이기도 하다. 임민정 인솔 가이드는 투르크까지 시벨리우스작 바이올린 협주곡을 들려 주었다. 그래서 그가 품격 있는 여행 가이드임을 증명해 보여 주었고, 현지 시간 오후 4시 20분은 한국 시간으로 밤 10시 20분이라 우리를 잠에 빠져 들게 하기에 아주 좋았다. 그러나 바이올린 협주곡의 감동적인 선율이 폐부를 찌르는 듯하여 오히려 잠을 깨우는 기분이다.
나는 시벨리우스가 좋아했다는 여인의 살결처럼 하얗고 고운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면서 상념에 잠겼다. 자작나무 숲에 드문드문 보이는 소박한 전원 주택은 골프장도 가지고 있었다. 버스는 속도를 더하고 바이올린은 절정에 달하고 자작나무는 치맛자락에 감추어진 여인의 하얀 살결 같은 속살을 언듯언듯 보여주고 있었다. 붉은 소나무는 건장한 사내의 구릿빛 팔뚝처럼 힘이 넘친다. 핀란드나 스웨덴인 이 자작나무가 큰 자원이라고 한다. 드넓은 삼림에서 한편을 베어내면 처음 베어낸 곳을 또 벨 때가 되어 베어내고 심고 베어 내고 심는 일을 영원히 하면서 나라를 부강하게 하니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이 나라야 말로 공장을 지어 환경을 더럽힐 이유가 하나도 없는 나라이다.
자다 깨다 깨다 자다 또 일어나 자작나무 숲을 바라보다가 투르크항 도착 20분전이라는 방송을 듣고 잠이 완전히 깨었다. 가까운 휴게소에 들렀다. 정원에 꽃이 아름답다. 휴게소에서 많은 여행객들이 밥을 먹고 있다. 휴게소 식당인데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20분 여유를 주어 정원에 나와서 스트레칭을 했다. 휴게소에서 보이는 산야가 아름답다. 멀리 초원이 보이고 농가가 있다. 전원주택이 그렇게 평화롭게 보일 수가 없다. 인구 500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국토를 아름답게 가꾸어 낼 수가 있을까?
휴게소 식당
정원의 꽃
휴게소에서 보이는 전원
도로에서 보이는 삼림
20분 만에 6시쯤 투르크항에 도착했다. 거대한 호텔쯤으로 보이는 유람선이 정박해 있다. 기다리는 동안 아들과 보이스톡이라는 영상통화를 했다. 밤 1시라는데 아들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집 걱정이고 큰아버지 걱정이고 하지 말라고 한다. 고맙다. 손자가 보고 싶지만 깨우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합실에서 2시간을 기다려 8시쯤 객실로 입장이 되었다. 객실은 매우 깨끗하다. 좁기는 하지만 깨끗해서 좋다. 그리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다. 샤워시설도 되어 있고 침대가 4개나 된다.
실자라인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길이는 약 200m 너비는 35m 정도이며 침대가 2700개 정도 되어서 2800명 정도가 승선할 수 있다고 한다. 5층, 6층, 9층, 10층, 11층 은 객실이고, 3,4층은 자동차 7층은 식당 카지노 면세점, 12층 13층은 사우나와 갑판이다.
짐을 방에 놓고 선상 레스토랑으로 갔다. 선상 뷔페는 1인당 35유로이다. 45000원 정도이다. 비싼 밥이다. 과연 풍성하고 맛있었다.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아무리 먹어도 추가되는 비용이 없다. 맥주든 와인이든 음료수이든 추가되는 비용이 없다. 다만 시간 제한만 있을 뿐이다. 시간은 10시까지라고 한다. 음식도 육류, 바다 생선류, 아시아 음식 등 각양각색이다. 정말 호화스런 뷔페이다. 임민정씨의 말대로 열 접시를 목표로 도전했지만 와인 한 잔, 빵과 고기 한 접시, 연어와 바다 생선 한 접시로 마감했다. 아내가 과일을 갖다 주어서 과일도 몇 쪽 맛보았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소용없는 일이었다. 작은 접시에 고기 몇 점 포도주 한 잔이면 끝이다. 비싼 식사대를 생각해서 빵 맛을 골고루 보려고 했지만 불가능한 일이다. 배가 너무 부르면 배가 고플 때보다 오히려 더 괴롭다. 엷은 시장기가 있을 때의 쾌감도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지나친 포만감은 괴로움일 뿐이다. 배고픔과 배부름은 그 괴로움에서 보면 마찬가지이다. 슬픔과 기쁨도 결국 한 가지이다. 결국 한가지구나. 자꾸 집이 걱정된다. 아이들이 걱정되고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형님이 걱정이다.
저녁 시간은 음식 맛도 좋고 와인도 적당히 취하고 창밖에 보이는 경관도 이루 말할 수 없이 좋다.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배는 아주 느리게 가는 것 같지만 꽤나 속도는 있는 것이다. 대화는 무르익어간다. 삶의 일상에서 시작한 대화의 내용은 수학, 과학, 철학, 문학에까지 이르러 그칠 줄 모른다. 사람들은 다 객실로 들어가고 우리 네 쌍의 부부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른다. 이곳에서 8시부터 10시까지 지낸 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가족이 모두 함께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는 10층 갑판으로 올라갔다. 11시가 되어서야 바다 건너 섬으로 해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하늘이 붉고 구름이 붉은 비단에 잿빛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잿빛 그림은 어찌 보면 용이 아가리에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듯 하다가 금방 한 송이 커다란 부용화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은 더 붉고 찬란하게 섬 사이를 지나 바다에 빠진다. 빠지는 해는 더 붉고 바다는 더 찬란하다. 홍단은 어느새 잿빛이 되고 잿빛 구름은 어느새 붉고 엷은 비단이 된다. 결국 구름이 하나의 실루엣이 되어 울먹거리며 하늘 전체가 흐릿한 주황빛이 된다. 그 때서야 사람을 날려 버릴 것 같은 바람을 느꼈다. 레스토랑 안에서는 아주 느릿느릿한 것 같은 배는 13층 갑판에서 내려다보니 그 빠름을 종잡을 수 없다. 태양을 사이에 놓고 셔터를 누르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내일 5시 만남을 약속하고 각자 객실로 흩어졌다. 나는 2층 침대로 올라갔다. 그대로 잠에 떨어졌다.
우리가 타고 갈 실자 라인
선상 뷔페
오후 11시의 낙조
낙조
낙조
해가 진 다음 물든 바다
우리 타고 온 SILZA L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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