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9일
제천 월악산 등산
▣ 산행 코스 : 수산리 - 보덕암 - 하봉 - 중봉 - 영봉 - 마애불 - 덕주사 - 송계 덕주골 야영장
▣ 거리 : 13km 6시간 20분
▣ 화요산악회가 안내하고 주관하는 산행
7시 30분, 체육관 좌측 계단 옆에 내가 타고 갈 동원 관광버스가 들어왔다. 배낭을 적재함에 싣고 내 좌석인 24번을 찾아가니 한 분이 앉아 있다. 그리고는 아는 회원이 없다. 지난 2일 인천 무의도 갈 때도 아는 회원이 없었는데 오늘도 그렇다. 다만 지난번에 인사를 나눈 회장과 몇 분 안면이 있는 분이 있다. 자리에 앉아 옆자리 회원과 인사를 나누었다. 바로 친해져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더구나 이효정 선생과도 안다고 해서 더 반가웠다. 토요산악회에서 나를 보았다고도 했다. 그렇다. 청주 사람끼리 다 알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이 폭염에 그 험한 월악산을 왜 가느냐고 말린다. 더구나 중동지방 호흡기증후군(MERS)이 창궐하는데 환갑이 훨씬 넘은 나이에 무리라고 한다. 그러나 나는 가야 한다. 언제까지 송계 계곡에서 올려다만 보고 말 것인가? 북바위산에서, 만수봉에서, 용마봉에서, 포함산에서, 어느 먼 산에서 바라보기만 하고 말 것인가? 언젠가 준비도 없이 아내와 함께 덕주사에서 마애불을 올라간다고 오르다가 마애불도 가지 못하고 도로 내려온 것이 전부이다. 단양 가는 길에 보덕암 아래 수산리에서 바라보면 그 우람한 위용을 볼 수 있다. 지난 달 북바위산을 오르다가 북바위에 앉아 바라보니 만수봉에서 덕주봉을 거쳐 월악 영봉에 이르는 산줄기의 용틀임이 가슴을 울령거리게 했다. 그래서 이 여름이 가기 전에 혼자라도 반드시 가려고 마음 먹고 있었다. 그런데 화요 산악회 카페에 이렇게 좋은 코스 산행 안내가 떴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신청했다.
한 3,4년전 토요산악회에서 안내하는 은티-마분봉-악휘봉-칠보산 산행에 동참했다가 다리에 쥐가 나서 고생한 경험이 있어 준비를 단단히 했다. 이온 음료, 에어파스, 포도당 소금을 준비하고 만약의 경우를 위해 근육이완제까지 준비했다. 그러나 그동안의 내가 운동을 해온 것이 있기에 큰 걱정은 하지 않았다. 우선 계단을 오르는 것은 누구보다 자신 있다. 다만 내리막길에서 무릎 걱정이 조금 되었다. 지난 4월 칠보산 산행에서 계단을 무리없이 나도 놀랄 만큼 쉬지 않고 올랐던 기억도 있다.
수산리에 도착해서 산행 준비를 하고 바로 출발했다. 9시 40분이었다. 보덕암까지는 가파른 시멘트 포장길이다. 발이나 다리가 가장 꺼리는 길이다. 그러나 좋은 길만 가는 것이 삶은 아니지 않은가? 가뭄에 땡볕이 시멘트의 화끈한 냄새를 실어다 얼굴에 팽개쳤다. 땀이 비오듯 한다. 벌써 다리가 팍팍해진다. 숨가쁘다. 나는 선두를 따라 가려고 하지도 않고 후미에 쳐지지도 않았다. 포장도로가 끝이 나고 산길로 접어드는 즈음에 바로 보덕암 아래라는 것을 알았다. 빠른 걸음으로 30분이 걸렸다. 여기서 물을 마시고 다시 출발하는 사진을 촬영하고 다시 출발한다. 나는 부담을 갖지 않으려고 뒤에 붙었다.
멀리 보이는 월악산 영봉
보덕암 아래에서 무사 산행을 다짐하며
갈 길은 더 가팔라졌지만 그늘이라 좋았다. 또 흙길이라 발이 아프지 않고 푸근해서 좋았다. 길가에 산딸기가 탐스럽게 익었다. 그 새곰새곰한 맛을 생각했지만 걸음을 아껴야 한다. 산꾼들이 아무도 거기 눈독을 들이지 않았다. 다만 산딸기 예쁘다는 소리만 치고 지나간다. 그렇지. 헛된 탐욕은 화를 부른다. 여성 회원들이 앞지른다. 보덕암 바로 아래에서 몇이 서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런데 그냥 지나치려다 보니 바로 여기서 물을 이용하여 저절로 목탁을 치도록 하는 다소 해학적이면서도 기지에 넘치는 장면을 발견했다. 쫄쫄쫄 흘러내린 물이 바가지에 가득 담겼다 쏟아지면 물스님은 손을 번쩍 들어 목탁을 친다. 참 기막히다. 나는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는 이것을 '물스님'이라 이름 붙여 주었다. 쉬지 않고 정진하며 깨달음을 재촉하는 목탁 소리를 내는 물스님은 바로 중생의 스승이다. 마음까지 경건해진다.
물스님의 정진
월악산 들머리 보덕암에서...
끊임없이 정진하는 물스님을 만났다.
하얀 바가지에 번뇌가 가득
쫄쫄쫄 합장 발원
무거운 번뇌 쏟아버리고
물스님은 손을 번쩍 들어 목탁을 친다
탁 타 타 타르르~~~
가늘고 여린 물스님은
다시 염불을 왼다
쫄 쫄 쫄 쪼르르
쫄 쫄 쫄 쪼르르
쫄 쫄 쫄 쪼르르 쫄
물스님 정진 그치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나도 빙그레 웃음이 난다.
보덕암 아래 물스님
나는 쉬지 않고 걸었다. 그래도 후미이다. 선두 주자들은 마치 고라니가 산 등성이를 넘어가듯 그렇게 힘차게 넘어가 버렸다. 나도 그런 때가 있었다. 여성회원 둘이서 쳐져 있고 바로 앞에는 남자 회원 두 명과 여성회원이 천천히 걷고 있다. 나는 그래도 주변을 돌아 보지 않고 걸었다. 걷는데는 아무 이상이 없다. 땀에 이미 옷이 다 졎어 버렸다. 그런데 뒤에 오던 여성 회원 한 분이 몹시 힘들어 보였다. 물어보니 천천히 갈테니 먼저 가란다. 그 때 앞에서 가던 남성회원 한 분이 자기가 책임질 테니 먼저 가라고 한다.
앞서 가는 이들은 더 앞으로 가고 뒤에 쳐진 이들은 더 쳐져서 갑자기 나는 혼자가 되었다. 그렇게 혼자서 한 시간을 걸었다. 그러나 회원들의 웃음 소리 이야기 소리가 계속 들렸다. 회원들이 모여서 쉬는 곳에서도 나는 쉬지 않았다. 그래서 앞지르다가 건각들이 앞서 가면 나는 나대로 천천히 갔다.
능선을 밟고 올라서자 어지러울 정도로 가물가물 산 아래 수산리가 보인다. 멀리 청풍호에는 내가 끼었다. 날이 가물어 바닥을 드러내고 있으니 불쌍해 보인다. 앞으로 하봉과 중봉이 보이고 그 너머로 언뜻언뜻 영봉이 얼굴을 보인다. 송계 소재지가 조감도를 보는 것 같다. 어지럽다. 능선길은 오르막길보다 쉽다. 나는 걸음을 빨리 했다. 종종 사다리도 나온다. 사다리에서 내려다 보거나 봉우리에서 봉우리를 건너가는 구름다리에서 내려다 보는 경치가 좋다. 월악은 그냥 월악이 아니었다. 북바위에 앉아 바라보던 월악을 이렇게 만나고 보니 감회가 새롭다. 정말 잘 왔다. 오기를 잘했다. 누군가 말했지. 갈까 말까 망설일 때는 그냥 가는 것으로 정하라고. 그 말이 딱 맞는다.
절경은 그냥 절경이 아니다. 바위는 바위대로 잘 생겼고, 그 잘 생긴 바위에 잘 어울리는 소나무 가지가 휘늘어졌다. 하늘로 치솟은 소나무는 그런 대로 멋이 있고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소나무는 그런대로 하늘 빛에 어울린다. 그런 소나무들은 대가 붉은 색이다. 활엽수는 제 대로 한몫 하고도 남는다. 거기에 4,50대 등산복 입은 여인들의 화려한 웃음소리가 어울린다. 자연은 인간과 어울릴 때 아름답고 인간은 자연에 의지할 때 인간답다. 여인은 이렇게 건강한 웃음으로 화장할 때 진정 아름답다.
절경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걸음을 늦추어 중봉에 도착했다. 중봉 마루에 선두가 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다. 땡볕인데 뜨겁지만은 않다. 가문 청풍호에서 일어난 바람이 송계 계곡의 남은 물에 식혀지고 이름 그대로 소나무가지에 향을 묻혀 월악으로 상승한다. 그래서 시원하다. 누군가 바람에 향까지 묻었다. 땀에 젖은 옷이 바로 마른다고 소리쳤다. 내가 상을 폈다. 밥이 달다. 천천히 꼭꼭 씹었다. 언제 월악에서 밥을 또 먹어 보겠는가. 씹고 또 씹었다.
가뭄에 목마른 청풍호
하봉, 중봉, 영봉
바위
송계리가 그림 같다
봉우리를 잇는 사다리
중봉에서 간소한 점심
밥을 먹고 바로 출발했다. 다른 이들은 이미 영봉으로 오르는 모습이 가물가물 보인다. 드디어 영봉에 올랐다. 여기서 덕주사에서 바로 올라온 B팀을 만났다. 우리는 일단 사진을 찍었다. 나도 체면을 불구하고 기다렸다 사진을 찍었다. 중국 황산에 올라가서 수많은 중국인들에 밀려 다른 이들 사진만 찍어 주다가 정작 나는 찍지 못하고 돌아왔던 일이 생각났다. 사진을 찍고 정말 영봉에서 산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월악산 영봉님 감사합니다.
느림보를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여기서 바라보니
북바위산 바위가 금방 손에 잡힐 듯 보이고
그 정상에 소나무 가지들이 보일 듯하고
용마봉 암벽이 훤하게 보인다.
박쥐봉 북바위산 용마봉이 만들어낸 송계의 계곡에는
사람들의 터전이 알록달록하다.
물 마른 청풍호도 이렇게 보기 좋은데
흥건하게 물이 괴면 얼마나 풍요롭게 보일까?
몇 번이나 올랐는지 만수봉이 발아래 보인다. 만수봉에서 이 쪽으로 달려오는 산줄기도 발 아래이다. 만수봉에서 철쭉을 실컷보고 용암봉에 내려와 점심을 먹으며 감탄했던 덕주봉과 그 산 능선들이 여기 바로 발 아래이다.
영봉에서 내려오면서 그 모든 산 줄기들을 바라 보았다. 내려오다가 헬기장이 있어 뒤돌아 보니 영봉이 우람하다. 금방이라고 굴러 내릴 것만 같고, 주변의 산들을 꽉 누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내려오는 길은 온통 계단이다. 수 많은 계단을 밟고 다리를 건너 마애불사까지 내려왔다.
영봉에서
내려오는 길
헬기장에서 영봉을 뒤로 하고
덕주봉 만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
마애불에 얽힌 전설이 애잔하다. 신라의 마지막 경애왕의 덕주 공주의 마지막이 생애가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그래도 여기쯤 이런 산중이라도 절을 짓고 불사를 일으켜 일생을 의탁할 수 있었던 것도 지금 정치인들이 정적을 대하는 것보다는 훨씬 인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서 망신을 주는 것도 아니고 인터넷에 오른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르는 체 여기서 수도하게 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당시로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산골이었겠지만 말이다. 그러나 경상도에서 넘어오는 하늘재가 바로 저기이고 하늘재 아래 미륵사가 바로 그 옆이니 두렵거나 외롭지는 않았을 것이다.
권력이란 다 그런 것이고 삶이란 다 그런 것이다. 마치 보덕암에서 힘들여 올라간 영봉도 거기서 영원히 살 수는 없으니 내려서야 하지 않겠는가? 인간 만사 영욕이 다 그런 것이다. 그래도 마애불을 바라보니 그 에술적 아름다움이나 종교적인 성스러움보다도 공주의 인간적 삶에 대한 연민이 앞선다. 그래서 대부분의 부처님이 미소를 짓는데 마애불은 웃음을 잃었는지도 모르겠다. 자비로운 웃음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눈물이 흐를 것만 같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서 죽어가는 예수를 안고 있는 마리아의 표정도 이럴까 싶다.
신라 마지막 덕주공주의 애환이 서린 마애불
힘겨운 무릎을 달래어 돌계단을 올라가 마애불 앞에 섰다. 나는 부처님께 참배하는 것을 잊고 마치 덕주공주에게 참배하듯 선채로 삼배를 올렸다. 그리고 한참 동안이나 그 앞에 서 있었다. 천년 신라의 역사와 왕건의 이야기가 이 골짜기에 펼쳐지는 듯했다.
덕주사까지는 돌계단이다. 왜 이렇게 힘들게 길을 만들어 놓았는지 알 수가 없다. 계단이 아닌 곳은 돌을 깔았다. 여기서 발목과 무릎이 온갖 괴로움을 다 당했다.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모양이다. 돌길 바로 옆 산 기슭에 오솔길이 나 있다. 그걸 봤으면서도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내가 가야 할 길이라는 곧은 마음을 버리지 않을 것처럼 그냥 돌길을 밟아 내려 갔다. 그러나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나도 그 길로 갈 수밖에 없었다. 덕주사에는 회원들이 몇이서 사진을 찍거나 안내판을 읽고 있었다. 몇 해전 아내와 왔을 때에는 대웅전만 덩그렇게 있더니 많은 전각들이 들어 섰고 정원도 잘 가꾸어졌다. 덕주공주의 음덕인가? 가뭄에 계곡물은 다 말랐다.
덕주산성이라고 성을 다시 쌓았는데 고증을 거치기나 했는지 조잡하기 이를데 없다. 우리나라 산성은 치졸한 복원이 다 가치를 훼손한다. 삼년 산성이 그렇고 계족산성이 그렇다. 왜 신라나 백제 산성을 그렇게 우람하게 쌓으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호점산성을 가보면 삼국시대의 산성들이 어떻게 남아 있어야 하는지 알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도 나 같은 소시민이 무엇을 알랴 하면서 야영장으로 내려 왔다. 야영장에는 이미 도착한 이들이 하산주를 준비하고 있었다. 나는 계곡에 내려가 차가운 물로 발목과 무릎을 달래고 온통 소금에 절어버린 머리를 감고 얼굴과 목에 땀을 씻었다.
하산주는 삼겹살과 함께 했다. 나는 컵으로 몇 잔 마시고 횡설수설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다. 잘난 체만 하지 않았으면 된다. 술마시고 잘난 체하는 치졸한 버릇이 내게 있어 산행의 뒷맛을 버리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돌아오는 길이 경쾌하다. 누군가 사진을 요렇게 이쁘게 찍어 준것을 보면 크게 잘난 체 하지는 않았나 보다.
하산주를 마시며
******* 여기 올린 사진은 청주 화요산악회 인터넷 카페에서 빌려다 올린 것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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