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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여행 3 - 화개장터, 토지 촬영 세트, 청학동 삼성궁,섬진강, 섬진강 매실가, 겁외사

느림보 이방주 2014. 3. 23. 22:14

2014. 3. 20.

 

지리산 여행 셋째날 -  화개장터, 토지 촬영 세트, 청학동 삼성궁,섬진강, 섬진강 매실가, 겁외사

 

지난 밤 살짝 뿌린 비에 흙비는 어느 정도 가신 것 같다. 하늘이 맑다. 푸르다. 하늘이 맑은 대신 기온이 뚝 떨어졌다. 여관에서 나와 바로 박경리 소설 <토지>를 원작으로 한 드라마 촬영지인 최참판댁으로 향했다. 이곳은 두 번째인데 정말로 옛날에 지주와 소작인 마을이 있던 것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면 드라마 촬영을 위한 세트임을 알 수 있다. 초가집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최참판댁이라는 기와집 건물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사진을 찍기 위해서 이 정도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은 대단한 발상이다. 최참판댁의 문간채, 별당, 안채, 중문, 사당, 솟을 대문, 사랑채, 초당, 행랑채 등 갖출 것을 다 갖추어 놓았다. 특히 최참판댁 마루에 앉아 굽이쳐 흐르는 섬진강이나 너를 악양의 들판을 바라보면 꼭 토지의 배경 그대로이다. 금방이라도 정자관을 쓴 최참판이 나올 것만 같다.

 

사람들이 출근하지 않을 정도로 이른 시간이라 마을은 썰렁하다. 이 드라마 세트를 마련하는데 누가 돈을 댔는지 모르지만, 하동 사람들은 이른바 최참판댁이라는 이 마을에서 부를 구하고자 한다. 화개 장터도 마찬가지이다. 화개장을 상설화 하는데는 많은 노력이 있었겠지만 역시 이 장터에 오는 사람들에게서 경제를 구한다. 지방차지제가 생긴 이후 어느 군수가 화개 장터나 토지 촬영 세트인 최참판댁 같은 것을 만들어 자기 고을로 전국의 관광객을 불러들여 그들의 주머니를 긁어내어 고을을 윤택하게 만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목민관이다. 이곳 경상도 하동, 전라도 구례가 인접하여 화개 장터에서 만나 매우 화목하게 지내는 것 같지만 암암리에 서로 시기하고 경쟁하는 가운데 이만큼 주민들의 삶이 향상되었다고 한다. 주요 경쟁의 근거로 섬진강의 관광자원화, 매실, 차, 지리산 관광자원 등이 있을 것이다. 그 바람에 하동 구례가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살만하게 되었다는 지역 주민의 말씀을 들었다. 그래서 지방자치가 필요한 것이다. 혹자는 지방 자치제도가 비효율적이라고 하지만 진정한 민주주의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고을 주민이 처음에는 군수나 시장을 비웃고 비판하고 반대도 만만찮았을 것이다. 그러나 목표가 건전하고 뚜렷하면 누가 말리랴. 그러므로 치밀한 계획과 성공에 대한 신념, 추진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당시의 군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사실 최참판댁으로 불리는 토지촬영장은 큰 감흥을 불러 일으키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참판댁이라고 하는 안채의 누마루에서 보이는 들판은 정말로 대지주의 비옥한 땅을 보여주는 듯했다. 멀리 구비쳐 흐르는 섬진강이 이 세트의 개연성을 더한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초가집은 세트로 알지만 이 최참판댁을 사실로 받아들인다. 심지어 최참판이라는 인물도 실제 인물일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소설은 엄연히 허구이다. 여기 누다락에 앉아 들판을 바라다 보고 있노라면 어느 사내인들 지주가 되어 보고 싶지 않았을까? 지주와 자본가를 무조건 악덕이고 불온한 세력이라고 경멸하는 이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여기 앉아 저 들판을 바라보면 그 불온 세력이 되어 싶은 마음이 일어날 것이다. 나도 여기서 장죽을 물고 마름을 호령하고 집사를 불러 창고를 열어 마을 사람에게 쌀을 두어 말씩 퍼주라고 호령하고 싶다. 예쁘고 젊은 계집종의 차 시중을 받으며 별당에 기첩을 거느리고 사는 삶을 다만 몇 달만이라도 살고 싶다. 여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수많은 계집종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호통치고 마을에 내려가면 '마님 마님'하면서 허리 굽히는 사내를 흘겨 보고 싶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것도 잠시 헛된 꿈일 따름이다. 사내들이여! 솔직해 지라! 그리고 자신의 그런 모습을 그런 삶을 상상이나 해보라. 

 

토지 촬영장으로 올라가는 길 양편에 가게가 즐비하다

물레방앗간 앞에서

참말 같은 기와 담

담 너머로 보이는 섬진강 변 비옥한 전답- 이런 지주가 되어 보았으면

신비스럽다던 청학동은 신비감은 없고 서당도 학원처럼 커다랗게 현수막을 걸어 광고하면서 고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어느 선비가 내게 오면 배울게 많으니 어서 오라고 자신을 광고할까? 선비라면 선비 정신을 제대로 가지고 있다면 그렇게는 못할 것이다. 다만 학문의 벗이 나를 찾아서 멀리서 스스로 찾아오면 또한 기쁠 따름이지 손짓하며 부른다고 찾아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가마다 붙어 있는 무슨무슨 서당이라는 표찰이 민망하다.  멀리서 바라보아 대도시 입시 학원 만큼이나 거대한 건물을 지어 놓고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만 지붕만 기와를 얹어 자본주의 사회의 학문이란 사업을 눈가리고 아옹하듯 감추고 있었다. 서당을 한 군데 들어 학동들의 생활 모습을 보소 싶었으나 더 실망하기 싫어 그냥 삼성궁으로 올라갔다.

 

성스럽다던 삼성궁은 마치 만화를 보는 것 같았다. 어떤 세계를 지향하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장난처럼 익살스럽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돌을 쌓아 힘겹게 만든 이 삼성궁이란 세계가 삼성을 오히려 희화하는 것은 아닐까 의구심마저 들었다. 나의 지나친 억측이었으면 오히려 다행일 것이다. 

 

그렇게 그리던 청학동에서 실망을 안고 내려왔다. 청학동은 그냥 앉아서 그 이름처럼 청학이 내려와 선비들과 함께 노니는 이상 세계라고 상상이나 하고 있는 것이 더 나을 뻔햇다. 구불구불 내리막길을 내려오는 데 배가 몹시 고프다. 생각해 보니 아직도 아침밥을 먹지 않은 것이다. 오후 1시가 다 되었는데 다음 골짜기에서 먹지 하면서 연신 미루던 게 점심 때도 지났다. 배가 고프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아내에게 마구 짜증을 내었다. 창학동의 실망이 시장기가 심하게 겹쳐 갑자기 치솟기 시작한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을 운전하는데 눈이 핑핑돈다. 

삼성궁 입구의 만화같은 구조물

돌담에 저렇게 절구나 맷돌을 끼워 넣은 것이 의미하는 민족적 철학이 뭘까

눈녹아 흐르는 아름다운 지리산인데

정말 그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대단한 공사

드디어 삼성궁- 산세가 기막히다. 그러나 작은 다리를 건너 궁이라는 곳으로 올라가는 것이 동화 같다.

 

하동 읍내로 들어가 어느 초등학교 앞에 있는 작은 식당으로 들어갔다. 차를 세우려 하자 나이 지긋한 주인 남자가 나와서 주차를 도와 준다. 이런 정도의 친절이라면 밥도 맛있을 것이다. '정식'이 6000원이다. 주인 남자 인심만큼 먹음직스럽다. 특히 쑥국이 좋다. 쑥을 많이 넣고 들깨 가루를 풀어 끓인 국이다. 속이 훈훈해진다. 가슴으로부터 짜증이 확 풀려나간다. 쑥이란 참을성만 시험하는 것이 아니라 짜증을 풀어주는 효험도 있는 모양이다. 배가 부르자 짜증 낸 것이 조금식 민망해지기 시작한다. 생선찜이 입맛을 돋운다. 노파는 더 친절하다. 안은 밖보다 더 깔끔하다. 

 

시장기가 해결되니 졸리다. 더 운전을 하지 못하겠다. 식곤증도 풀겸 하동여자고등학교 옆에 있다는 하동 송림을 찾아갔다. 소나무는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름 그대로 송림이다. 그러나 나는 송림보다 섬진강 너머의 매화마을이 더 눈에 들어왔다. 주차장이 넓은 것으로 봐서 평소에 찾아오는 이가 많은가 보다. 이 솔숲이 섬진강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을 막아 읍내 사람들을 먼지로부터 보호해 주었을 것이다. 솔밭을 돌며 정말 천천히 여유있게 흐르는 강을 바라보니 눈과 마음의 피로가 스러지는 듯했다. 섬진강이 좋은 것은 사람들이 최대한 건드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 흐르고 싶은 만큼만 흘러가고 저 가고 싶은 속도 대로만 흘러간다. 강은 이렇게 천천히 흘러가도 자연 그대로 두면 결국 바다에 도착할 것이다. 서두를 것도 경쟁할 것도 없어도 결국 도착지는 바다이다. 조금  늦는다고 뭐 어떠랴. 우리도 그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서두르고 비교하고 무한 경쟁하고, 밤새우고 새벽같이 일어나 일터로 가고------.  

 

화개 장터를 돌아보며  몇 가지 생활 필수품을 샀다. 그중에서 가장 잘 샀다고 생각하는 것이 작은 호미이다. 이제 부모님 산소에 쑥이나 억새는 다 뽑힐 것이다. 물건이 모두 수제품이라 싸기도 하고 질도 좋았다. 사는 과정이나 흥정하는 과정이나 사서 한 번 헛 사용을 해보는 것도 다 행위 예술이다. 재미있다. 정선장이 먹는 장터라면 화개장은 문화 예술 같은 장이다.

 

화개장터 노래비 

 북적이는 장터의 모습 - 정선장날이 생각난다.

 

화개 장터의 모습 크기에 비해 사람이 많다.

 

하동송림에서 바라본 섬진강대교

하동여고 옆에 있는 하동 송림

 

하동 송림을 슬쩍 지나 섬진강대교를 건너 섬진강 청매실 농원에 갔다. 관광버스나 승용차, 생선회 파는 트럭, 조개구이 파는 트럭이 뒤엉켜 난감하지 짝이 없다. 아내가 강력하게 희망해서 오기는 했지만 괜히 왔다 싶었다. 간신히 길가에 차를 세우고 언덕으로 올라가니 매화도 지천으로 피었고, 사람도 흥청망청이다. 흐느적거리는 걸음,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소리, 고함소리, 잘난 체하는  소리, 정부 비판하는 소리가 뒤엉켰다. 주변 산이 모두 허옇게 매화가 지천이다.  이런 것 한 그루를 얻으면 뜰에 심고 애지중지, 분에 심어 애지중지하는 선비들의 모습이 상상으로 떠오른다. 홍쌍리 매실가라는 데를 갔다. 정말 기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원들 대여섯이 나와서 매실 강정을 파는데 그것도 줄을 서서 사야 한다. 왜 이런데 나오면 5000원이 아깝지 않을까? 적십자회비 3000원은 살을 깎아내듯 아까운데 강정값 5000원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된다. 몇 봉지 샀다.

홍쌍리 매실가로 올라가는 포장도로- 힘있는 사람은 검정 승용차를 타고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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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쌍리 매실가의 이모저모

 

매실가에서 빠져 나오는데 가끔씩 소름이 끼칠정도로 사람들이 운전을 마구 한다. 몇 번이나 접촉할 뻔 했다. 나는 성철대종사 탄생지인 겁외사를 가자고 아내에게 말했다. 물론 또 사찰을 가는게 좀 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미안하기도 했다. 그래도 가기로 했다. 듣던 것보다 대단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스님의 탄생지에 절을 지어 기리는 조계종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화려하고 웅장하게 꾸며 놓지 않고 검소하고 소박하면서도 경건한 모습이 스님의 품격에 맞는다고 생각되었다. 바로 뒤에 고속도로가 마음에 걸렸다. 겁외사에서 나와 지리산 대원사로 가고 싶었으나 아내가 계곡에서 밤을 지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고, 민박이 있다고는 하나 잠자리를 믿을 수 없어 군청소재지인 산청으로 가기로 했다. 산청은 겁외사  바로 옆을 소리지르며 달리는 대진고속도로를 이용하면 쉽게 갈 수 있다.

 

성철 스님 탄생지 -겁외사

겁외사에서 산청까지는 16분 정도 걸렸다. 요금이 1600원이다. 막상 산청읍으로 들어 갔으나 생각보다 많이 작은 군청 소재지라 놀랐다. 지도에서 일러주는 여관이나 모텔을 찾았는데 보이지 않았다.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대로 찾아가도 여관은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가 겨우 찾아간 여관은 도저히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그냥 청주로 올라 갈까 생각하는 순간 멀리 산 중턱에 산청온천랜드라는 간판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차를 달려 언덕으로 올라갔다. 그래 가서 찜질방에서 자자. 그런데 가서 보니 숙박이 가능할 뿐 아니라 식당도 있어서 편리했다. 방은 5만원인데 온천이 무료란다. 그만해도 손해는 아닐 것 같다. 막상 들어가 보니 객실은 숙박이 목적이 아니라 가족탕인 듯했다. 깨끗하고 좋았다. 조금 요상한 기분이 들었다. 욕실로 통하는 유리문이 상서롭지 못하다. 욕실은 어는 호텔보다도 화려하고 좋았다. 그에 비하면 잠자는 방은 많이 떨어졌다.

 

같은 건물 아래층에 있는 식당에서 두루치기 정식을 먹었다. 식사하기 전에 우선 온천을 했는데 물이 깨끗하고 좋았다. 목욕하러 들어온 사람들도 별로 없고 탕에 물이 항상 조금씩 넘쳐서 물이 깨긋하다. 물은 부드럽고 따끈하다. 냉탕 온탕 열탕 약쑥탕이 있는데 수온이 조금씩 달라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몸의 피로를 풀었다. 특히 약쑥탕에 들어가니 하루의 피로가 약쑥탕에 스멀스멀 스며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40여분을 약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두루치기  정식은 7000원인데 반찬도 좋고 고기도 많이 주었다. 소주를 한 병 사서 한 잔씩 마셨다. 그러나 된장 맛은 별로였다. 된장 맛이 입에 맞지 않아 아침은 먹지 않기로 했다.

 

잠자리는 외풍이 좀 있고 방은 뜨거워서 이불을 덮을 수도 없고 안 덮을 수도 업서 어쩔 줄 몰랐다. 겨울이라면 감기에 걸리기 딱좋은 잠자리이다. 다 좋은데 잠자리는 불편했다. 그래도 이런 산골에서 이만한 잠자리가 황송할 뿐이었다. 방안에서 담배 냄새가 좀 났지만 아침에 온천 물에 다 씻낼 수 있으니 걱정할 것 없는 일이다. 아무튼 잘 자고 일어났다. 이제 구형왕릉을 거쳐 대원사를 갔다가 청주로 올라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