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4. 21.
지리산 여행 넷째날 - 지리산 대원사, 구형왕릉
지리산 대원사는 지도에서만 보아도 아름다운 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원사에서 지리산 제일봉인 천왕봉이 아주 가까워서 한 5시간 정도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산이 높으면서 계곡이 짧은 것으로 봐서 경사가 급한 계곡을 물이 소쿠라지며 흘러내릴 것 같았다. 그래서 대원사를 한 번 가리라 몇 번이고 마음 먹었다. 이 사찰을 이번 여행의 끝으로 삼은 것도 잘하면 이곳에서 하루쯤 머물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꼭 한 번 대원사에서 써리봉, 중봉을 거쳐 천왕봉을 다녀오는 산행을 해보고 싶었다.
지리산 대원사는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스님 수도 도량이다. 송광사, 해인사, 통도사, 백양사, 수덕사가 우리나라 5대 총림이라면, 덕숭산 수덕사, 계룡산 동학사, 지리산 대원사는 3대 비구니 스님 수도 도량이다. 대원사는 신라 진흥왕때(548)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 된 것을 조선시대 다시 세우고 1948년 여순반란 사건 당시 전소된 전각을 1955 만허당 법일 스님의 불사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고 한다.
여관에서 나와 아침 식사로 빵을 먹기로 하고 뚜레주르를 찾아 읍내를 돌았으나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파리바케트에 들어가 비싼 커피와 입에 맞지 않는 빵을 샀다. 커피를 마시고 빵을 한 쪽 먹었다. 모두 12500원이나 들었다. 해장국을 한 그릇씩 먹는 편이 더 나을 것을 그랬다고 생각했다. 대원사로 넘어가는 길은 높고 꼬불꼬불하다. 특히 대원사 계곡은 돌과 물과 바위 나무가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찻길 좁고 구비가 심해 한참씩 멈추면서 절경을 감상했다. 우거진 소나무와 참나무 사이로 보이는 폭포들이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수없이 아래로 떨어진다. 골짜기 안이 온통 자연의 교향악으로 가득하다. 대원사가 가까워지자 물은 더 소담하게 쏟아지고 나무는 더 하늘을 찌른다. 중간에 작은 주차장이 나왔다. 거기서 걸어가야 되는 걸로 알고 차를 세우고 걷기 시작했는데 다른 차들이 계속 올라가기에 다시 차를 몰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창을 여니 물소리는 가슴을 울리고 새소리는 영혼을 울린다. 그런데 그 작은 주차장에서 2km는 족히 되는 것 같았다.
대원사에 다다르니 아래에서 본 지리산의 새삼 모습이 달랐다. 산봉우리들은 동글동글하고 소나무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었다. 사찰이 있는 곳은 펑퍼짐하게 퍼져서 파란 하늘에서 깨끗하고 맑은 햇살을 쏟아 붓고 있었다. 마치 은총의 골짜기가 된 듯했다. 바라볼수록 더 아름답다. 절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이 더 자비롭고 은혜가 내린 것 같았다. 그런 골짜기에 있는 절은 아담하고 아름답다. 절도 깨끗하고 현판에 방장산 대원사라 되어 있어 여기 스님들은 모두 선녀 같은 분들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대웅전에 들어가니 목탁을 두드리며 석가모니불을 염불하는 여스님의 작은 어깨가 작고 애처롭게 보였다. 연세 많으신 스님 염불이 힘겹게 들렸다.
아내는 대웅전만 참배하는데 나는 원통보전에 들어갔다. 젊은 스님 한분이 염불을 하고 계셨다. 잠시 후에 대웅전에 계시던 스님이 들어 오셨다. 대웅전과 원통보전의 단청이 하도 아름다워서 이쪽 저쪽을 다니면서 계속 셔터를 누르면서도 사진 기술이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마당에 내려 서서 다시 바라보아도 아름답기 그지없다. 특히 단청이나 기와지붕이 주변 산봉우리와 잘 어울린다. 나는 절과 산의 아름다운 조화를 바라보느라 마당을 떠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밖에서 바라본 대원사의 아름다운 자태-방장산 대원사라는 현판이 보인다.
대웅전의 모습-창호의 문살의 참으로 아름답다
대웅전과 원통보전의 마주한 처마
대웅전 쪽에 바라본 전각들의 아름다운 배치
원통보전 쪽에서 바라본 절집의 아름다운 배치
원통보전의 전면- 현판 창호 주련이 모두 잘 어울린다
절에서 나와 유평마을, 외목마을로 이어지는 계곡으로 올라 갔다. 앞이 보이지 않는 계곡의 좁은 길로 계속 올라가 보았다. 길은 좁고 땅에 박힌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미끌미끌하고 절개지에서 흙과 돌이 떨어지기 시작 한다. 가끔씩 우수수 흙이 떨어진다. 그래도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물소리는 무섭도록 힘차게 울려 온다. 마치 '아주 오랜 옛날에 ~~~'하는 동화나 전설의 현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금방이라도 허연 수염이 모롱이에서 나타날 것 같았다. 외목 마을 입구까지 들어갔는데 길이 더욱 좁아지고 절개지에서 계속 돌이 떨어져서 이렇게 가다가는 끝을 잃어버릴 것 같아 차를 돌려 나왔다. 내려오는 길에 가끔씩 조금 넓은 곳에 차를 세우고 냇물 가운데 뚝 떨어져 있는 바윗돌 위에서 놀았다. 바위에 부딪혀 하얗게 부서지는 물과 흐르는 물을 가로 막느라 씻기고 마모된 바위덩이를 바라보기도 하고, 얼음처럼 차가운 물을 만져 보기도 하면서 어린 아이들처럼 놀았다. 물은 계곡의 모양에 따라 잠시 머물러 주변 경관을 거울처럼 담아보기도 하고, 급하게 아래로 내려 뛰기도 하고 바위에 덤벼들기도 하면서 자신이 갈 길을 거리낌없이 흘러간다.
대원사 계곡의 깨끗한 물과 바위
대원사 계곡의 아름다운 물
대원사 계곡 어지러운 산길을 돌고 돌아 다시 산청으로 넘어왔다. 지도에 나타난 구형왕릉에 잠시 들르기로 했다. 처음에는 부근에 허준의 스승인 유인태가 쓰던 샘물이 있다고 해서 꼭 들러보려고 한 것이다. 유인태 샘물을 가는 길목에 있는 구형왕릉을 들렀다가 오히려 샘물 가는 것을 생략하기로 했다. 구형왕릉은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릉이었다. 돌을 쌓아 만든 작은 피라밋형인데 그 규모가 사실 상당히 큰편이었다. 구형왕은 가락국 10대왕이다. 김유신의 할아버지인 김무력 장군의 아버지라고 한다. 그러므로 김유신의 증조부가 된다. 마지막으로 가락국을 신라에 합병하고 부근의 대원사에서 은거 생활을 했다는 말도 있다. 한 나라의 마지막 임금은 자의든 타의든 역사 변화의 한 계기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힘에 겨워 자신의 나라를 신라에게 내어주었겠지만 나라를 내어주고 절에 머물며 소일할 때 사나이의 마음이 얼마나 복잡했을까? 신라는 이렇게 해서 조금씩 천천히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가락국의 입장에서는 득과 실을 계산해 보아야 할 것이다.
능은 비스듬한 언덕에 돌로 쌓았는데 전면은 방형이고 후면은 둥그스름했다. 앞에서 보면 방형인 전면만 보이기 때문에 무덤을 네모난 방형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뒤쪽은 둥그스름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원뿔을 반으로 나누어 놓은 모양이라고 하는게 좋을 것이다. 약 7개 단 정도의 높이의 피라밋 형으로 쌓아 올리고 주변에 담을 둘렀다. 언덕을 이용해서 이렇게 만든 무덤이 우리 나라에 또 있을까? 또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넘기 위해 다리를 놓고 그 너머에 능을 만든 것은 어떤 이유일까? 풍수의 어떤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오늘날 가락국의 역사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백제 역사를 잃어버린 것만큼 가슴 아픈 일이다. 이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민족적 손실이다. 옛 권력자들은 한 나라를 병합하면 그 역사를 말살해 버렸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을까? 혁명을 하여 나라를 새롭게 통일했다고 하더라도 그 당시의 역사가 얼마나 소중한가? 권력이 조심해야 할 것이 역사의 전철이라고 한다면 오히려 멸망한 나라의 역사를 살피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역사를 고스란히 저장하는 것이 위정자의 의무이다. 최근의 노무현대통령 시절의 역사 삭제 문제로 나라가 한동안 떠들썩한 것도 따지고 보면 비슷한 일다. 과거의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을 따지는 것도 잘못이고 비판이 두려워 역사를 지우거나 왜곡하는 것도 문제이다. 역사 변화와 발전 그런 것에 대한 궁금증을 벗어버릴 수 없다. 그러는 나는 이제 집으로 무사히 돌아가기만 하면 된다.
입구에서 바라본 구형왕릉
가까이서 바라본 구형왕릉-전면에 문무인석이나 다른 구졸들은 후대에 이루어졌다.
구형왕릉에서 12시쯤 산청 나들목으로 들어가서 이제 청주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아내가 김제에 있는 모악산 금산사를 가보고 싶다고 한다. 금산사는 언젠가 모악산 등산을 하고 시간이 늦어 슬쩍 지나친 절이다. 전주로 가려면 지나는 길목이 아니기에 다시 전라도 땅을 들어가야 한다. 그래, 가보고 싶으면 가는 거지. 휴게소에서 점심을 때우고 전주로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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