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생활과 일상/삶과 문학

작은 혁명

느림보 이방주 2014. 7. 4. 13:08

포항문학 41호 청탁 원고

 

작은 혁명

   

 

  청주고인쇄박물관에 들렀다. 한국수필작가회에서 문학기행을 오는 날이라 이 고장에 사는 회원으로 미리 돌아보고 제대로 안내하려는 생각에서였다. 먼저 바로 옆에 지난해에 개관한 청주시 금속활자주조전수관에 들렀다. 금속활자주조법을 체험으로 알고 보존과 전승을 위한 공간이다.

 

괴산 어떤 중학교에 잠시 근무할 때, 학교에서 금속활자주조 시연을 해주었던 학부모이자 중요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인 임인호 선생이 문득 생각났다. 그런데 선생의 부인이며 어머니 회장이던 유여사께서 조교로 일하고 있었다. 유여사는 단번에 나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대뜸 나는 까맣게 잊어버린 학부모 독후감 발표대회이야기를 꺼내며 감회 깊은 표정을 지었다.

선생님은 잘 모르셨겠지만 우리학교와 지역에는 작은 혁명과 마찬가지였어요.”

작은 혁명이란 말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벌써 7,8년 지난 일이지만 엊그제 일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나는 금속활자의 밀랍주조법 체험을 하는 공간이나 주물사주조법을 체험하는 공간을 돌아보면서 그분에게 주조 과정에 대한 설명이 듣고 싶었다. 그런데 그분은 당시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던 이야기, 독후감 발표회 이야기만 새김질하고 있었다.

 

청주시 지역 근무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 비교적 오지인 시골 중학교 근무를 희망한 것은 교육적 포부나 사명감 때문은 아니었다. 산수 좋은 곳에서 그냥 좀 쉬고 싶었다면 교사로서 양심에 벗어난 일이겠지만 그것은 사실이었다.

 

아이들은 골짜기를 흐르는 물처럼 맑고 순박했고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전교생이 전임교의 교사 수인 80명 정도밖에 안되어 도시 학교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폐교를 검토해야하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학생과 교직원을 모두 합해도 100명을 넘지 못하니 공부할 때나 밥 먹을 때나 한 가족이었다. 그러나 착하게 사는 것만으로 무한 경쟁을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세상은 만만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화목한 학교생활만으로 아이들의 미래가 준비되는 것도 아니다.

 

도서관에 가보았다. 아이들 5,6명이 서가를 서성이고 있었다. 읽고 싶은 책을 바로 골라내기에는 서가가 너무 어지럽다. 놀란 것은 도서관이 20년 전 상태에서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도서관을 현대화하는 것이 당국의 중요한 시책이었는데 그냥 그 자리이다. 교장선생님과 협의해서 도서관 구조 변경 계획을 도교육청에 제출하여 충분한 예산을 받아냈다.

 

폐기 대상 도서는 폐기하고, 잡지나 홍보물은 버리고, 열람대를 다시 만들고, 영상실, 교과서실, 만화방, 잡지방, 신간도서방, 인터넷검색 공간, 학교 역사관을 만들고, 도서관 수업을 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은 끝이 없었다. 청소년이 꼭 읽어야 할 신간도서도 1000여권을 보충하고, 모든 학교도서관을 인터넷으로 잇는 DLS(digital library system)에 연결하니 도시지역 어느 학교에도 뒤지지 않는 도서관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80명밖에 안 되는 작은 학교에 6500 여권의 장서를 지닌 도서관이 아까웠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책 읽는 학부모 모임이다. 희망을 받아 보니 65명 학부모 중에 25명이나 되었다회원들을 따로 모아 독서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나, 나나 그분들이나 시간이 없었다. 어머니회 여는 날 따로 모여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어떤 분은 학교 책을 대출할 수 없느냐고 했다. 반가웠다. 책을 읽고자 하는 시골의 엄마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곧 책 읽는 학부모회 회원 25명을 DLS에 회원으로 등록했다. 처음에는 대출이 몇몇 사람으로 한정되더니 조금씩 늘어났다. 이 모두가 회원들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대출 카드를 도서관에 비치하니 들에 오가다가도 편안하게 대출할 수 있었다. 대출과 반납이 익숙해지니 그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책을 읽는 것으로만 끝나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독후감 쓰기, 나아가서 문학 창작까지 욕심을 내 보았다. 회원들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했지만 불가능만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생각 끝에 나는 인터넷에 책 읽는 학부모 모임 카페를 개설했다. 생각보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엄마들이 많았다. 카페 회원 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거기서 조금씩 독서 감상을 공유하게 되었다. 인터넷 공간에서 독후감을 공유하는데 재미를 느끼게 되자 독서열이 달아올랐다. 어떤 엄마는 사과밭에서 일하다가 쉴 때마다 조금씩 읽거나 옥수수 가판대에서도 읽는다고 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가을 학교 축제 때 학생, 학부모, 교사가 함께 하는 독후감 발표회를 기획했다. 처음이니 커다란 성공을 기대하지 않고 시도했다. 독후감을 사람들 앞에서 발표할 수준에는 부족한 점이 있지만, 현재 상태를 인정하는 것이 성장의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모두가 숙제처럼 마음속에 걸고 다닌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좋은 독후감으로 선정되어 발표하고 싶은 욕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카페에 올라온 독후감들을 읽어보면 발견과 감동은 누구에 못지않으나 그것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은 어눌해 보였다. 덧 글을 붙여 문장쓰기 방법을 일러주었다. 독후감이 빠르게 매끄러워졌다. 거기서 5명을 선정하여 학생 5명과 함께 독후감 발표회에 참여시켰다. 생각보다 성황이었고 어떤 행사보다 감동이었다. 발표한 분들이나 발표 작품으로 선정되지 못한 분들이나 자신감을 갖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아름다운 고장에는 지금도 가을이면 골짜기마다 사과향이 가득하다. 길을 가다보면 사과나무 그늘이나 길가 옥수수 가판대에서 책을 읽는 여인들을 발견할 수 있다. 어려운 환경이 살림살이를 지배하기도 하지만 그 환경을 뚫고 일어서는 것은 인간의 의지이다. 나는 평소에 스스로 문인이라는 자부심으로 살았다. 그러나 문인을 그렇게 대단하게 여겨주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또한 내가 문인으로서 대중을 향해서 아름다운 향기를 내품어 줄 기회도 열의도 없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이런 독서운동이 문향을 세상에 내놓는 길이라는 작은 신념을 갖게 되었다.

 

매주 금요일에는 청주시 금속활자주조전수관에서 금속활자 주조 체험 활동을 한다고 한다. 한비야의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의 감동을 울먹이며 발표하던 유여사는 지금은 부군을 도와 금속활자주조 조교로 일하고 있다. 이제 나에게 금속활자주조법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다. 산수 좋은 곳에서 쉬는 것만으로 심신이 치유되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날마다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체험하는 것이 낡은 영혼을 치유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아울러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오늘날 문학을 할 수 있도록 바탕을 마련해준 금속활자의 연원을 배우는 것도 낡은 영혼에 작은 혁명을 가져오는 길이 아닐까 한다.

(20014.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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